사위가 쓰는 장모의 치매일기
치매환자의 가장 비극적인 현실은
기억이 자꾸만 사라져 간다는 사실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사라진 기억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
우리가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기억의 소멸 현상은 있다.
그것을 건망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아! 참! 내가 깜빡했다!"라며
기억해 내지 못한 사실을 인지하고 실수를 인정하지만
치매 환자는 그렇지 않다.
아예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기억 자체가 존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치매환자와 일반인을 구분하는
가장 분명한 차이점으로 본다.
내가 그랬던가?
내가 잊어버렸던가?라는
표현 자체를 쓸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을 때
내가 왜 이곳에다 놓아두었지?
전혀 기억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치매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
하지만
기억은 없지만
아! 내가 실수로 이곳에 놓아두었나 보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가 있다면
일단 그것은
치매가 아니거나
치매라 할지라도 아주 초기라고 보면 된다.
물론
여기서의 치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치매라고 보면 된다.
암튼...
2급 중증 치매를 겪고 있는 장모님의 머릿속 세상은
완벽 그 자체만 남아있다.
장모님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든 기억에 실수나 건망증은 없다.
당신에게는 완벽한 장모님만 존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장모님의 현재 상태는
자녀들의 배고픔을 알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완벽한 어머니의 존재
날이 어두워지면
밖에 나간 자녀들이 돌아오지 않아 애를 태우는
완벽한 어머니의 존재
몸에 추위를 느껴
추위가 해소될 때까지
옷을 껴입어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여인의 존재
볼일이 급하니
화장실을 간 것이고
생리적 욕구를 해소한
정상적인 행위를 한 여인일 뿐이다.
어제 저녁에는
좋아하시는 김가루를 드렸다.
밥에 김가루를 넣으시더니
맛나게 비비신다.
그러고는
키친타월을 펼쳐놓고 비빈 밥을 펼쳐 놓으신다.
밥을 고루 펼쳐 깔으신 후
도시락 접듯이
이쁘게 사각형으로 말아 접으신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집에 갖고 가서 드실 거란다.
좋아하는 김가루 밥을 집에 가서 드시려는
행복한 주부의 존재
장모님의 기억에
불확실한 기억은 없다.
부정적인 기억도 없다.
안 되는 일도 없다.
생각하면 행동해야 하고
행동엔 주저함이 없는 장모님
그분의 모습은
저물어 가는 황혼의
힘없고 영혼 없는
나약한 치매를 겪고 있는 노인이 아니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목적이 있으며
계획이 있는 여인네의 모습인 것이다.
단지 현실과 자신의 기억을 맞출 능력이 없을 뿐인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 도대체 왜 이러세요 정신 차리세요"라는 표현은
옳지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이 정상인 치매환자에게
자꾸만 잘못되었다고 고치려 든다면
그건 그분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의 삶에 장모를 끼어다 맞추려는 것이니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원하는 목적도 달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확히 그분이 어느 세계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 것인지
어떤 기억의 세계로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내가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장모의 얼굴에
안도감과 미소가 베여있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세계로
억지로 끌어들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장모님에게 남아있는 기억을 소중히 하고
장모님의 남아있는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지만
장모님은
현재를 바라보고
과거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그에게 남아있는 기억을 소중히 하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정성스러운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장모님의 모든 행동은
그가 살아왔던 소중한 과거의 그 어느 날의 기억인 것이다.
아직은 그 기억이 남아있고
우리 모두는 이 남아있는 장모님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아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결국 다 없어질 기억이지만
그분은
그 남아있는 기억을
끌어내어 누리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끌어낼 여유가 없는
정신없는 미래의 삶을
살고 있다는 차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