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2일 토요일 을사년 무인월 임술일 음력 1월 25일
대학생 때 몇 년 정도 책상이 없는 삶을 산 적 있다. 내 방은 침대와 옷장, 서랍, 그리고 디지털 피아노로 인해 가득 차 있었다. 거실에 있던 나의 오래된 삼익피아노 GX-300H를 버린다고 하길래 잘 치지도 않으면서 괜히 아까워서 내 방에 들여놓은 게 원인이기는 했다. 어차피 노트북도 학교에 두고 다니고 과제도 학교에서 처리하고 오니 책상 정도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때로는 뚜껑을 닫아놓은 피아노를 책상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기울어져 있는 데다가 가로로만 길고 세로로는 짧은 공간이라 쾌적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쓸 만했다.
방이 좁고 답답하다고 느낀 이후로 가구를 덜어내기로 했다. 그렇게 디지털 피아노...가 아닌 침대를 치웠다. 언제부터인가 매트리스의 과도한 푹신거림이 불편하다고 느껴져 바닥에 적당한 두께의 요를 깔고 자는 게 더 편하더라. 아마 초등학생 때부터 쓰던 침대 매트리스가 점점 탄성을 잃어가며 그렇게 된 것 아닐까 싶다. 하여간 침대를 없앤 후에도 한동안 책상을 방에 들여오지 않았다. 집에 있기 싫다고 1교시 수업이 없어도 아침 일찍 나가 학생회관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학교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밤 열 시쯤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던 시절에는 어차피 방에서 잠만 자니까 문제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그럴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시기의 학교 시험 중에는 Zoom으로 자신의 모습과 책상이 잘 나오게 화면을 배치하여 시험 감독을 하는 과목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책상이 없잖아? 화면에 잘 나오게 배치하는 건 둘째치고 시험을 어떤 환경에서 봐야 하지? 과제고 뭐고 다 집에서 해야 하게 되면서 최소한의 공간을 차지하는 좌식 노트북 거치대를 장만했지만, 그것은 시험을 볼 만한 환경은 못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책상을 들여올 생각은 안 하고 서랍 윗면을 책상 대용으로 사용했다. 시험 감독용으로 바닥에 세워놓고 쓰는 핸드폰 거치대도 구입했는데, 그건 그 이후로도 그럭저럭 잘 쓰고 있다. 사실 거실 구석 냉장고 옆에 끼여 있는 접이식 좌식 책상을 가져다 써도 됐겠지만, 왠지 그 녀석을 방에 들여오고 싶지는 않았다.
내 방에 책상을 다시 들여놓은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의 일이다. 사촌으로부터 물려받아 초등학생 때부터 쓰던 나의 h형 책상을 분리해서 책장과 서랍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책상 판때기를 그래도 버리지 않고 피아노 뒤편에 세워서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1~2년쯤 전에 그것을 다시 조립하면서 몇 년 만에 내 방에 책상이 다시 생겼다. 다만 여전히 바닥에서 생활할 때가 더 많을 뿐이다. 책상과 함께 쓸 의자를 따로 장만하지 않고 피아노 의자를 끌어다 쓴 시점에 이미 책상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데스크톱 작업을 해야 하거나 종이에 무언가를 써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책상으로 잘 안 올라가게 되더라. 최근 몇 개월 사이에는 그 용도로 게임도 추가되었지만, 일상적인 용도로는 책상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책상이 없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