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친정집 산기슭엔 두릅나무와 개두릅나무 순이 자라고, 작년보다 키가 훨씬 더 자란 매실나무에는 가지가 휘도록 종알종알 매실 알이 달렸다.
"엄마 이렇게 순이 잘린 애들은 누구야?"
"가들? 잔대 싹이잖아"
"아 잔대 싹을 산에서만 봤지 마당에서 보니 이상하네, 뜯어 드신겨?"
"어제 식탁 위에 있던 그 퍼런 나물이 잔대 싹 데쳐 논거였잖아"
"걍 데쳐놓은 나물인 줄만알지 내가 싹까진 감별을 못해 엄마. 근데또 이래 만나니 반갑네. 더덕보다 더 좋아했던 게 잔대였는데"
"잔대가 달짝지근한기 맛은 좋지"
"니 이거 한 번 무 봐라"
"안 물래. 맛이 없을 거 같애"
"아니 무보고 더 달래지나 말고 함 무봐. 이건 산삼 하고도 안 바꾸는기여"
할머니가 주신 건 명태포를 찢듯 가늘게 찢어 놓은 더덕 뿌리를 닮았다.
"할머이 이건 뭔데 이래 달달한기 맛있어?"
"땍주뿌리여"
그렇게 딱주 뿌리 맛에 눈뜬 손녀는 산에 가신 할머니를 매일매일 기다렸다.
"할머이 오늘도 딱주 마이 캐 왔어?"
"그라믄 캐왔지. 을매나 캐왔나 니 함 볼래?"
할머니의 약초 전용 포대를 우르르 쏟아내자, 그 안에서 오만가지나물들과 약초 뿌리들이 나왔고 나는 여느 날과 같이 우선 생김새와 색이 닮아 있는 나물과 약초 뿌리들을 편을 갈랐다.그리고 할머니가 장에 내다 파시려고 실한 것들부터 챙기시고 남은 것들을 쪼그려 앉은 내 발 앞으로 툭툭 던져 주시면 하나둘 세며 바가지에 담았고, 한참을 그러다 보면 더덕인지 딱주인지 헷갈리기 시작해서 결국엔 한 뿌리 한뿌리 죄다 코를 킁킁 들이박고냄새를 맡아다시편을 가르는 수고를 겪어야 했다.
"이잉 딱 보믄 더덕인지 땍준지 알아야지 그걸 안즉도 모리나?"
"내가 약초 박사도 아니고 이걸 어케 다 알어"
"자꾸 들이다본나 그라믄 보일기여"
아무리 들어도 모를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바가지에 주워 담은 딱주 뿌리부터 꺼내 흙을 살살 털고 칼로 껍질을 쓱쓱 벗기자 이미 눈으로도 맛있는 뽀얀 뿌리가 나왔고 손으로 죽죽 찢어 곁에 대령 중이던 사발에 얌전하게 담아 두었다.
"이래 무믄 맛이 더 좋잖나”
할머니가 방에서 멸치 드실 때 애용하시는 고추장 통을 가지고 오셔 찢어 논 딱주 뿌리를 고추장에 쿡 찍어 드셨고, 나는 찍는 시늉만 하고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 딱주 뿌리가 잔대 뿌리라는 것을 일치시키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할머니의 밥상에 상추만큼이나 흔하게 올라왔던 딱주 나물과 딱주 뿌리들.
할머닌 이른 봄이 되면 연한 딱주순을 뜯어다 쌈을 싸서 드셨고, 싹이 더 크면 데쳐 드시고 어떨 땐 뿌리를 캐어 드시기도 했다. 할머니가 즐겨 드시고 좋아하시던 나물들의 공통점은 전부 쌉싸름한 맛이 나는 나물들이어서 내 입에는 맛이 없는 그저 쓴 나물이었기에 나는 그때마다 그 나물을 먹으면 어디에 좋냐고 물어보면 몸에 다 좋은 거라고,눈에 띄거든 애끼지 말고 부지런히 뜯어 무라는 당부를 잔소리처럼 하셨다.
그때는 색깔도 식감도 입맛도 맞지 않아서 강하게 거부했던 나물들. 그래도 딱주 뿌리는 달큼한 맛에 즐겨 먹었던 것이 그나마 지금은큰 위안으로 남아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딱주는여전히 산 구석구석에서 해마다 그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실하게 키웠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쌉싸름한 딱주싹은 지나던 노루나 고라니가 맛있게 뜯어먹고, 달큼한 뿌리는 멧돼지 부대가 맛있게 파먹었을 것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굳이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해마다 봄이 되면 마당에서 자라는 딱주 싹을 부모님이 챙겨드시니 더없이 다행이고, 세월이 암만 지나도 입맛은 대대손손 이렇게도 전해지는가 보다.
할머니를 따라 산에 오르며 보았던 약초와 나물들 그리고 꽃, 열매. 그 잎이 그 잎 같고, 그 나물이 그 나물 같은 까막눈이지만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자꾸 들여다보면 보일 거라는 말씀이 내 삶에 여운이 되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