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의 한복 도둑

by 별바라기

할머니 방에서 며칠 전 도랑에서 잡아 해감한 다슬기를 이쑤시개로 알맹이를 빼내는 작업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 우리 집은 다슬기 국을 끓여 먹을 예정인데 내가 기억하는 요리법은 된장 풀고 다슬기 삶은 국물에 뒤꼍에서 뜯은 아욱 잎을 잔뜩 넣고 애호박을 총총 채 썰고 청량고추도 몇 개 썰어 넣은 뒤 밀가루에 다슬기를 버물버물 버무려서 훅 하고 빠트리면 맛있는 다슬기 국이 될 것인데, 동생들도 집중해서 열심히 까고 있는 그 다슬기를 아까부터 나만 연신 주워 먹고 있으니 보다 못한 할머니는


"니 그만하고 나앉아라. 내일 아침 니 애비 먹을 것도 없겠어, 한 개 까고 두 개 묵고, 두 개 까고 네 개 묵고"


"에이 할머이는 내가 뭘 얼마나 먹는다고, 근데 아까부터 무슨 소리 안 들려?"


"마한년 또 딴소리하는 거 보래이"


할머니가 웃으며 눈을 흘기셨다.


"언니도 뭔 소리 들려? 아까부터 할머니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동생도 거들자 할머니는 상을 부엌으로 물리시고 장롱문을 조심조심 여셨다.


지금 나오는 가구들은 수납이 쉽게 칸막이가 되어 나오지만 할머니 방에 있던 자개농은 우리가 숨어 들어가도 괜찮을 만큼 큰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데 그 탓에 할머니는 상자와 보자기 보자기에 분류한 짐들을 묶어 쌓아 두셨었고 옷가지들과 고이 모셔둔 간식 봉다리들도 튀어나왔다.


"이 마한 것들을 우째믄 좋나? 얼른 가서 니 애비 오라 해라"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아빠를 불러왔다.


"야야 여다 쥐가 새끼를 놔놨다"


아빠가 방에 들어서자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며 할머니가 말씀하셨고, 동생과 나는 쥐라는 말에 뒷걸음질 치며 둘이 꼭 껴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아빠는 우리에게 큰 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뒤로 물러나 있으라 하셨고, 보따리들을 꺼낼 때마다 쥐가 갉아 놓은 옷감 조각들이 방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아빠가 양손으로 조심스레 꺼낸 할머니의 옷 위에는 엄지 손가락 한마디 만한 분홍색 쥐가 여섯 마리 있었고, 눈도 못 뜨고 조그만 게 소리를 내며 꼬물거리고 있는데 그냥 봐서는 쥐인지도 모를 판이었다. 아빠는 살펴보시더니 오늘 막 낳은 거 같다 하시고, 할머니는 구경하고 있는 내게 광에 가서 소주 짝에 있는 소주를 큰 놈으로 한 병들고 오라 하셨다.


"야야 이게 없어서 못 먹는 약이라고 하니 소주를 담궈보재이"


우리는 할머니의 그 말에 소리를 지르며 방에서 뛰쳐나왔고, 한참 뒤 보게 된 것은 할머니가 약초 술을 담그시는 전용병에 그 새끼 쥐 여섯 마리가 담겨 있는데, 우리는 징그럽기도 하지만 신기하기도 하여 할머니 방 문갑 위에 올려져 있는 약술을 구경하고 또 구경하고 있는데 더 큰 문제를 확인한 건 그다음이었다.


"이번 느 당고모 결혼식에 입고 갈라 했더니 쥐새끼가 다 쓸어놨네"


옷가지를 정리하시던 할머니 눈에 들어온 것은 아끼시던 한복을 어미쥐가 갉아 놓은 것이었다. 아빠는 어차피 쥐 오줌에 똥에 못 입으니 싹 다 불에 태워버리라고 하셨고, 큰 쥐가 또 들어와 저지레를 할 지 모르니 농을 들어내 벽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 덕분에 할머니 방은 대대적인 정비를 하게 되었고, 그냥 큰 장롱이라고 생각했던 할머니 방 자개장은 문짝을 떼고 분리를 하니 같은 모양의 장이 3개가 착 하고 붙어 있던 것이었다. 어린 나는 그것도 신기했고, 여섯마리의 새끼를 잃은 엄마 범인이 들어왔던 구멍을 발견한 아빠는 판자로 튼튼하게 막았다.


할머니는 몇 날 며칠을 나물을 뜯어 파신 으로 한복을 한 벌 마련하셨고, 당고모 결혼식에도 잘 다녀오셨다. 삼 형제의 맏며느리인 할머니는 당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동서들을 모시고 사셨던 분이라 시댁 행사에는 항상 성의를 다해 다녀오셨다. 옥색 빛에 소매에 고운 꽃이 수놓아졌던 할머니 한복은 아담한 할머니의 체격과 쪽진 머리, 하얀 고무신이 더해져 몸빼바지가 아닌 한복을 입은 고운 할머니가 나는 참 좋았다. 게다가 그렇게 잔치집에 다녀오실 때는 가족들이 먹을 떡이나 과일들을 챙겨 오셔서 나는 솔직히 할머니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기다려지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무신을 신고 그 무거운 짐들을 들고 오셨다고 생각을 하니 발바닥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마음이 아프다.


훗날 시간이 지나서 나는 엄마가 됐고, 그날 친정 김장에 동참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당신 한복이 없어졌다며, 그 많은 가족들 중 콕 찝은 나에게 가져갔냐고 물으셨다. 나는 내 어깨만큼 작은 할머니 한복이 이래 뚱뚱한 나에게 들어가겠냐며 농담으로 넘겼는데, 할머니는 계속해서 내게 한복을 내놓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떤 한복이냐 여쭈니 옥색 한복이라고 하시는데, 나는 그거 진즉에 할머니가 버렸다고 설명했지만 내 말을 일도 듣지 않으셔서, 나는 그 한복 내가 입으려고 가져갔고 다음에 똑같은 거로 한 벌 사다 드린다고 말씀드리자 니가 입으면 됐다시며 방에 들어가셨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때 할머니의 치매 초기를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결혼하기 3일 전까지 집에 머물렀던 나와 늘 농담 따먹기를 하고 때론 할머니와 손녀 사이가 아닌, 동무 같은 사이, 톰과 제리 같은 우리였기 때문에 내가 할머니의 치매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이후 가끔씩 들르는 친정행에 뵌 할머니는 팔 골절도 당하시고 기침도 많이 하셔서 병원에 입원도 하시며 그렇게 점점 더 주무시는 시간이 늘어났고, 가장 최종적으로 뵈었을 땐 깡 마른 고사리처럼 작아져 계셨다. 할머니 체온을 느낀 건 동생과 머리를 다듬어 드리고 목욕을 시켜 드린 것이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할머니는 남들이 연말 휴가에다 곧 다가 올 새해에 들떠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영면하셨고, 나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내가 사드린다 고 했던 그 옥색 한복. 나는 할머니에게 한복을 사드리지 못했다. 사실 그때 그런 약속을 했던 것도 나중에야 기억했다. 내가 브런치에 할머니와의 추억을 적고 있지만 글이란 게 참 묘한 것이 쓰다 보면 잊고 있던 더 많은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준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는 잊혀 버리고 말 할머니를 글을 통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의 손자와 증손자들이, 또 할머니란 존재에 대해서 추억하는 누군가가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맘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어린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해하고 있는 나를 보며 글이 주는 치유함을 체험하고 있다. 물론 밤마다 쓰는 글이라 내가 감성이 업 되는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


아 그리고 그 새끼쥐가 담겼던 약술은 이웃마을에 풍 맞은 아줌마가 드신다고 몇 만원에 팔렸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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