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의 누에

by 별바라기

"야야 누가 있나?"


"할머이 나 여 있다."


할머니가 마당에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리어카 한가득 뽕잎을 싣고 오셨다.


"할머이 누에 밥 줄라고?"


"오이야 니 뽕 이파리 좀 따 줄래?"


우리 집 문간방에는 누에 대가족이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돈을 버실 목적으로 시작하신 일인데 누에들이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매일 같이 뽕잎을 따다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넣어주셨고, 반공일인 오늘 우리가 오후에 여유진 걸 아시는 할머닌 낫질을 해오신 뽕잎 작업을 도와 달라고 하셨다.


나와 동생들은 우선 갑바천을 해가 들지 않는 마당 그늘에다 널따랗게 펴고 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한참 동안 앉아 있을 만한 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주차된 리어카에서 한 무더기의 뽕나무 가지들을 조심스레 내려 가지가지마다 붙어 있는 뽕잎을 딴 뒤 줄기를 한 방향으로 차곡차곡 포개서 할머니 앞에 있는 커다란 대나무 소쿠리에 차곡차곡 담아 놓으면 할머니는 어린누에들이 먹을 뽕잎은 작두로 잘게 잘게 으셨고, 큰 누에들이 먹을 뽕잎은 가마니에 차곡차곡 담으셨다.


동생들과 나는 노래도 부르고 싸움질한 친구들 얘기도 하며 뽕잎 따는 시간을 나름 즐겼는데, 특히나 '똑, 똑, 똑' 경쾌한 소리를 내며 가지에서 떨어지는 뽕잎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를 돕는 것도 있었지만, 6월이 되면 까맣게 익어 가는 오디를 따먹는 재미가 있었다. 노동의 대가보다는 사은품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우리를 위해 할머니는 일부러 먼 산까지 가셔서 오디가 많이 달린 가지들을 잘라 오셨다.

2022년 6월 11일의 뽕나무 가지

문제는 엄마의 감시였다. 평소 배앓이를 자주 했던 나는 생오디를 많이 먹으면 설사를 했고, 엄마는 생것을 잘 못 먹으면 회충이 생긴다는 공포를 심어주며 못 먹게 했지만, 그 시절 나와 동생들의 입엔 그 달콤한 오디가 지금의 마카롱만큼 달고 맛있는 열매였다. 단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나무의 상태에 따라 오디에 진딧물이 달려 있기도 했는데 가끔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노린재가 붙어 있는 것을 모르고 입에 집어넣었다가 웩웩거리며 다 뱉어 버리고 입을 헹궈야 하는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누에는 문간방에서 자랐는데 아빠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누에의 침대를 보며 나도 침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방은 어둡고 눅눅했고 문을 열면 뽕잎 냄새가 쓰나미처럼 덮쳐 왔는데, 나물을 널어 말리 듯 누에들도 그렇게 층층이 채반마다 펼쳐져 있었고, 뽕잎을 넣어주면 사각사각 갉아먹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마치 '쏴아' 하고 여름날의 세찬 소나기가 오는 소리 같아서 가끔 그 방문이 열릴 때 들리는 소리는 무서울 때도 있었다.


호기심은 동네 제일가라 해도 뒤처지지 않았으나 그에 비해 겁도 많았던 나는 그 방에 들어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꺼려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엄마가 그 방에 들어가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셨다. 방의 온도를 지키는 일도 중요했고 혹시나 문이 열린 사이 고양이나 쥐가 들어가는 것도 조심해야 했기에 엄마는 아예 잠방으론 발길도 주지 말라고 경고하셨고, 한날 완전 격하게 싫어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는 밭에 가다가 동네 안쪽에 사는 미자언니네 아줌마가 아기를 업고 신작로까지 나온 걸 보고 반가운 맘에 쫓아가 인사를 나누고 등에 업힌 아기도 얼마나 컸나 하며 보셨는데, 아기 얼굴과 입 주변이 온통 초록색 투성이어서 아기한테 죽을 먹였냐고 물으셨다. 아줌마의 대답은 젖먹인지 얼마 안 됐고 재우려고 걷고 있다는 것이었고, 엄마는 들고 있던 수건으로 아이의 입가를 닦아 주고 꼭 쥔 아기 손도 펼쳐서 닦아 주다가 아기 손가락 사이에 껴있는 하얀 뭔가가 누에 껍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셨다.


열심히 닦던 그 초록색의 정체가 소화되고 있던 뽕잎의 흔적임을 알게 된 엄마는 시골분이지만 순간 충격에 비위가 상해서 토가 나오려고 했지만 아줌마가 놀랄 거 같아서, 아기가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서 꾹 참고 마저 수건으로 싹 닦아준 다음 도랑으로 가셔서 손을 씻고 수건을 싹싹 빨고서야 밭으로 가셨고, 아줌마가 아기를 업고 잠방에 들어가 일하던 그 시간에 누에가 아기 손에 붙은 건지, 아기가 누에를 잡은 건지는 몰라도 아기는 쭉쭉쭉 빨다가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졌다는 상황을 그날 저녁 우리에게 설명하시면서 잠방엔 얼씬도 말라고, 혹여나 할머니가 막내를 업고 잠방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 막으라고, 특히 나에게 막내를 잘 지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누에는 많이 먹어서 그런지 몸이 쑥쑥 커졌고 똥도 많이 쌌는데 할머니와 아빠는 먹다 남은 뽕잎과 똥을 치워주는 작업을 열심히 하셨다. 우글우글 거리는 누에를 삶은 고사리 만지듯 손으로 듬뿍듬뿍 집어 채반에서 채반으로 옮기다 보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어쩌다 밟힌 누에는 배가 터지기도 했고, 서로 대롱대롱 매달려 고무줄처럼 엉켜 있었는데 나는 누에의 촉촉한 감촉과 꼬물거림, 그리고 배에 있는 수많은 점.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눈이 너무도 징그러웠다. 그리고 더 싫었던 것은 할아버지도 그 누에를 약이라며 가끔씩 꿀꺽 삼키셨는데, 당뇨 때문에 드셨다고는 이해를 하지만 건조된 누에도 아니고 생누에를, 그게 정말 효과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누에는 잠을 잘 때 벌을 서 듯 몸을 세운채 서서 잠을 잔다. 더 이상 커지지 않는 누에가 잠을 자면 이젠 다 큰 거라고 할머니는 고치 만들 준비를 하라고 누에섶에 올려주셨고 누에는 기가 막히게 할머니 맘을 안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실을 토하여 동글동글 본인을 보호할 집을 만들었다.


할머니는 나방이 나오기 전에 누에고치를 바쳐야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누에들이 고치를 만들기 시작하면 엄청 바빠지셨다. 잠을 자는 횟수에 따라 고치가 될 준비를 하는 녀석들을 부지런히 가려내셨고, 누에섶에 올려주시는 걸 놓치지 않으시려 어두운 방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서서 작업을 하셨다.


오늘은 누에고치를 바치는 날. 할머니는 깨끗한 자루에 누에고치들을 바가지로 퍼 담으시고 아빠와 함께 면에 가셨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보며 예쁜 실이 되어 돌아오라고 인사하며 할머니가 탄 경운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큰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파리똥 같은 누에씨를 종이컵에 5알 담아 왔다.

나는 그 누에씨가 '과연 부화를 할 것인가?'를 걱정하면서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들여다보았고, 그 간절한 기다림을 알아서였을까? 누에씨가 개미누에가 되었다. 나는 시골에서 따다 놓은 뽕잎을 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쫑쫑 썰어서 먹는 족족 부지런히 넣어 주었고 혹여나 응가로 인해 병이 들지 않을까 걱정되어 부지런히 치워주었다. 다행히 누에는 탈 없이 쑥쑥 자랐다. 한 잠 서서 자고, 두잠 서서 자고, 세잠 서서 자고, 네 잠 서서 자더니 고치가 될 준비를 하기에 나는 종이를 잘라 모양만 흉내 낸 누에섶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부터 누에가 실을 뽑아내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고치가 만들어져 있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저 뽕잎 밖에 넣어준 게 없었는데 이렇게 고치가 되는 준비를 하는 누에가 너무도 신기하고 기특했고, 어린날에 잠방 누에섶 칸칸이 붙어 있던 고치들을 한 개 한 개 정성을 들여 떼어내시며 누에들에게 장하다 칭찬하시던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이제야 못생긴 누에를 칭찬하던 할머니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 누에고치를 살펴보던 나는 희미하게 고치 한구석에 누런 빛이 묻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살피다 보니 점점 더 색이 짙어지면서 고치가 녹으며 구멍이 생겨 아침엔 그 안에서 나방이 빠져나와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방의 탈출 모습은 우리 식구가 모두 잠든 밤에 일어나서 볼 수가 없었고, 또 며칠이 지나 나방은 아침 엄청 많은 누에씨를 뿌려 놓았는데, 나는 파리똥 같은 누에씨를 데리고 긴 겨울을 날 자신이 없어서 아이의 방과 후 선생님께 누에씨를 보내드렸다.



무슨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이듬해부터는 동네 사람들이 누에를 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따 먹을 수 있는 오디는 엄청 늘어났고, 나는 절대 오디를 먹지 않은 듯 입을 싹싹 닦고 집에 들어갔지만 입술과 혓바닥, 손에 묻어 있는 오디즙의 흔적 때문에 엄마한테 들켜 또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누에들이 사라진 잠방은 몇 날 며칠 환기를 시킨 뒤 아빠가 사 오신 도배지와 장판으로 새롭게 변신해 처음으로 나는 나만의 방이 생겼다. 그 방에서 자던 첫날밤, 이부자리에 누워 코까지 이불을 덮고 눈만 내놓은 나는 혹시나 방에 남아있는 누에가 있지는 않은지 방구석 구석을 살펴야 했다. 도배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누에 같이 보이기도 했고, 귀에는 뽕잎을 먹는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쓰나미 뽕잎 냄새도 계속 나는 것 같아서 그 뒤로 며칠밤을 전깃불을 끄지 못하고 잠이 들었는데 결국엔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엄마한테 야단을 맞았었다.


아이 덕분에 누에를 기르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니, 나는 더 이상 나를 쳐다보는 누에의 눈도 꿀렁꿀렁한 몸매와 피부의 촉감도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누에가 한 응가를 치우며


"세상에 이렇게 예쁜 응가가 있을까? 꽃 모양 같아"


격한 감탄을 하며 나는 남편을 놀리려 손바닥에 누에를 한 마리 올려서 슬그머니 다가갔다.

평상시에 횟집에서 나오는 번데기만 봐도 닭살이 돋고, 관광지나 등산로 입구에서 맡게 되는 번데기탕 냄새에 질색을 하는 남편은 내가 펼친 손바닥을 보더니 기겁을 하며 달아났고 나는 낄낄거리고 웃으며


"나 전문적으로 누에를 쳐도 될 거 같지 않아?"


남편을 대신해 큰아이의 대답이 격하게 날아왔다.


"나 그럼 엄마하고 안 놀아"


나는 진짜 도시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다. 전학을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고, 지하철을 타보는 게 소원이었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어 보는 소박한 꿈을 꿨던 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른이 되어서야 그 일들을 체험해서 좀 늦은 감도 있지만 그래도 시골에서 살았던 추억이 현재 나의 삶에 정말 큰 삶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요즘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나에게 뼛속까지 스며져 있는 수렵과 채집의 피, 1차 산업에 최적화되어 있는 나의 모든 에너지는 아무래도 할머니의 유전자 소인이 아닐까? 할머니의 삶을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맛보고, 매도 맞고 그렇게 자랐지만 이렇게 추억의 보따리 보따리를 열어 이야기를 쓸 수 있음에 다행이고 감사한 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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