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도 소녀였다

by 별바라기

이번 주에도 어린 조카를 데리고 캠핑을 떠난 여동생에게서 카톡과 사진이 도착했다.


- 모햐? 우린 떡 멍 중


- 좋겠다 꿀꺽, 근디 고기는 우째고 떡을?


- 노노 입가심


- 부럽, 담엔 나도


- 님이 나라만 구하러 다니지 않는다면


- ㅋㅋㅋ


동생은 가끔씩 함께 캠핑을 가지 않겠냐며 물어 온다. 그런데 마치 작정하고 거절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때마다 기가 막히게 갈 수 없는 이유가 생겨 동행하지 못하고 서로의 중간지점인 갯벌에서 만나 바지락 대신 자갈을 캐는, 도시 아이에서 정글북의 모글리 같이 변해가는 조카 덕분에 웃다 돌아온다.


나와 두 살 터울인 동생은 친구들 대비 늦은 출산에 나이 든 엄마 티를 내지 않아야 한다며 본인 가꿈에 열심이고, 또 그 덕분인지 언젠가 남대문 시장엘 갔는데 "이모야" 하고 나를 부른 동생의 호칭에 우리를 자매간이 아닌 진짜 이모와 조카 사이로 보는 상인이 있어 나는 진심으로 성질이 났었다.

동생은 가끔 국토 종단할 기세로 장거리 운전을 하며 아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일에도 열심인데, 그 덕분인지 영민한 조카는 안동휴게소 에는 탈 모양을 한 빵이 있고 본인이 좋아하는 델리만쥬 집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차멀미로 자는 줄만 알았는데 녀석은 뒷좌석에 매달린 카시트에 앉아 엄마가 최고 속도로 달린 속도계의 숫자를 기억해 친정아버지 생신으로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제보를 하여 동생은 가족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리는 조카에게 잘했다며 앞으로도 엄마를 계속 감시해 이모들에 게 말해주라고 특별교육을 시켰는데 한참 뒤 동생에게 전해 들은 얘기론 조카가 자는척 하며 속도계를 보기도 하고 감시 때문인지 예전 대비 잠을 덜 잔다 해서 또 한 번 웃었다.


"계신가요?"


동생들과 마당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데 대문간으로 누군가 들어서고 계셨다.

연둣빛 나는 재킷에 까만 바지, 그리고 까만 신발을 신고 파마기가 묻어 있는 짧은 커트 머리를 하신 여자분이 마당으로 들오셨는데 분명 얼굴과 목소리는 할머니인데 복장은 우리 할머니와 달라 충격이었다. 낯선 그분을 살피며 자연스레 그분의 손에 들려 있는 하얀 끈으로 묶인 빨간 상자가 보였고 그 상자는 우리 동네 가겟방에서는 볼 수 없고 학교가 있는 맛나상회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가 너무너무 동경하던 선물 과자세트였다. 나는 빨간 상자를 보는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고 큰길에서 첫 집인 우리 집에 오셔서 다른 집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누르며, 제발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이시길 기도했다.


"안녕하세요? 근데 누구세요?"


"나?"


할머니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누구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당황하신 듯 나를 물끄러미 보셨다.


"네가 몇째니?"


"둘째요"


"기저귀 차고 있을 때 봤는데 많이 컸구나. 할머니 어렸을 적 하고 똑 닮았네, 집에 어른들 계시고?"


"할머니는 산에 가셨는데 배낭을 메고 가신 건 아니니 먼산에 가신 건 아닐 거예요. 그리고 아빠랑 엄마는 밭에 가셨어요. 그리고 언니는 방학 소집일이라 학교에 갔고요"


"그럼 너희들끼리만 집에 있는 거야?"


"네"


"자 이거 동생들하고 나눠 먹어라"


할머니가 건네신 묵직한 빨간 상자를 받은 나는 기쁘면 눈물이 난다는 말을 그때 이미 이해했던 것 같다. 덩달아 곁에 있던 두 동생들의 반짝 거리는 눈들도 내가 들고 있는 상자에 꽂혀 있었다.


"고맙습니다."


동생들과 나는 인사를 드린 뒤 상자를 마루에 내려놓자 할머니가 또 물으셨다.


"왜 동생들이랑 과자 안 먹니?"


"어른들이 보셔야 먹을 수 있어요"


나의 대답에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셨다.


"어디가 할머니 방이야?"


빨간 상자를 받은 후 모든 경계가 풀린 나는 정체도 모르는 할머니를 방으로 안내해 드렸다.


정체도 모르는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 사진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시며 웃고 계셨다. 그리곤 할머니 옷장에서 옷을 골라 입고 나오셨는데 흙마당에서 논 탓에 꼬질꼬질해진 동생들을 부르시더니 세수를 시켜 주시고 빨랫줄에 널려 있는 수건으로 말끔히 닦아 주시는 것이 마치 처음부터 우리 가족이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근데 할머니, 할머니는 누구세요?"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쩔수 없이 여쭤보았다.


"나? 나는 너의 이모할머니지"


"이모할머니요?"


퍼뜩 촌수 계산이 되지 않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할머니가 웃으셨다.


"나는 너희 할머니 언니야"


"우와! 할머니한테 언니가 있대"


놀랐던 나는 동생들을 향해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내어 버렸고, 이모할머니는 그런 내가 웃기는지 호호호 웃으셨다.


"아이고야 성님, 이게 누구래요?"


다래끼를 어깨에 메고 토끼풀 자루를 절룩거리는 다리로 끌고 오시던 할머니가 자루를 마당에 내려놓으시고 뛰 듯이 오셔서 이모할머니의 두 손을 덥석 잡으셨다.


"아니 기별이라도 넣고 오믄 집에서 바래고 있었을 낀데 어찌 이리 오싰대요?"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에 놀람과 반가움이 담긴 할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두분은 서로 눈물을 글썽이며 한참이나 손을 잡고 계셨다. 어린 나의 눈에도 보이는 반가움의 몸짓들에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는데 할머니는 눈물을 참고 계셨는지 손등으로 콧물을 훔치셨다.


점심때가 넘어서 아빠의 경운기가 마당에 들어선 소리가 났다. 나는 쏜살같이 바깥 마당으로 뛰어 나갔고 경운기 시동이 채 꺼지기도 전에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 우리 집에 이모할머니가 왔어. 할머니한테 언니가 있대"


경운기 엔진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어진 마당엔 순간 정적이 흘렀고 나의 목소리는 그 정적을 깨고 마당에 퍼져 나갔다. 경운기에 싣고 온 밭에서 딴 호박과 늙은 오이를 챙기시던 엄마가 내 얘길 듣고 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그 뒤를 쪼르르 따라갔다.


"이모님 오셨어요? 이 더운 날 먼길을 어떻게 오셨어요?"

경운기 소리에 마당으로 나오신 이모할머니 두 손을 엄마가 잡으며 인사를 드렸다.


"질부 잘 지냈어? 더운데 애들 키우랴 살림하랴 고생이 많지?"


이모할머니는 엄마 손등을 당신의 손으로 토닥토닥해 주시며 물으셨고


"고생은요 무슨. 이리 오실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해 놓고 기다렸을 텐데, 얼른 상 차릴게요"


"아니야 천천히 먹어도 되니 서두르지 않아도 돼"


엄마는 경운기에 두고 온 호박과 늙은 오이를 갖고 부엌으로 급하게 가셨고 부엌에선 또각또각 칼질 소리와 익숙한 호박전 부쳐지는 소리, 늙은 오이가 볶아지는 냄새, 된장찌개의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점심을 먹은 뒤 아빠는 밭에 가셔서 옥수수를 꺾어 오셨고 가마솥에 옥수수 쪄지는 냄새가 집을 휘휘 감았다.


"이렇게 금방 꺾어 쪄 먹는 옥수수 맛은 어디서도 흉내를 못내"


이모할머니가 흡족해하시며 옥수수를 드시니


"성님 두고두고 많이 드시"


"하하하 이 사람아 먹는데 한계가 있지 어찌 소처럼 계속 먹기만 하겠어"


할머니의 말에 이모할머니가 웃으셨다.


"물 좀 끓여줘"


아빠의 주문에 엄마는 주전자에 물을 끓이셨다.


"아빠 더운데 뜨거운 물은 모할라고?"


"닭 잡을 거야"


"히잉 너무 불쌍하잖아"


"불쌍한 사람은 안 먹으면 되지"


"고기가 먹고는 싶은데 그래도 불쌍해"


"암탉들이랑 작은 닭들을 너무 괴롭히고 시끄러워서 잡으려고 했던 닭이야"


아빠는 엄마가 가져다준 뜨거운 물을 닭에게 붓고 털을 뽑기 시작하셨다.


"니가 벌거지를 많이 줘서 살이 엄청 붙었네"


아빠가 털이 다 벗겨진 커다란 닭을 내게 번쩍 들어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저녁에 우리는 엄마가 특별 솜씨를 발휘해서 끓인 닭곰탕을 아주 맛있게 먹었고 모깃불을 피우고 마당 구석에 있는 들마루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윙윙 바람이 방향을 틀 때마다 들마루 위로 넘어오는 모깃불 때문에 나는 이따금씩 재채기가 나왔고, 언니는 아까부터 나에게 북두칠성 자리를 계속 설명을 해 주고 있지만 내 눈에는 뭐가 별 자린지 도대체가 보이질 않고, 언니는 내 시력이나 뇌 중 하나에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들마루 위에 우리 자매처럼 할머니 방에도 자매가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와 웃음소리가 밤새 도록 들려왔다.


마당에서 들리는 도란거리는 얘기 소리에 잠이 깬 나는 밖으로 나갔다. 이모할머니는 토끼장 앞에 쪼그리고 앉으셔서 '쇽쇽쇽쇽' 소리를 내며 아침식사 중인 어미 토끼에게 풀을 계속 넣어주고 계시고, 할머니는 토끼집에 들어가셔서 수북히 쌓인 똥을 삽으로 퍼내고 계셨다. 두 분은 24시간을 그림자처럼 함께 하셨는데 할머니가 새벽같이 산에 오르셔서 뜯어온 나물을 함께 다듬기도 하시고 마른 약초를 분류해 끈으로 묶고 콩밭에 나가셔서 김을 매기도 하시면서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날들을 보내셨고, 일주일 뒤 뒤 당신의 생활지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날 이모할머니가 우리 집을 떠나시는 게 너무 슬펐고 할머니를 따라 대구란 곳에 가보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 일곱식구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탄 이모할머니는 손수건을 쥔 손을 흔들며 떠나셨는데 그 때 나는 동화 '시골쥐와 서울쥐' 떠올랐다.


오늘도 할머닌 지정석에서 조용히 나물을 다듬고 계시길래 다가가 눈치를 살폈다.


"할머이 왜 기운이가 없어?"


"기운이 읍어 비나?"


"응, 이모 할머이 가시고 할머이가 안웃자네"


"인제 보믄 언제 또 볼라나 그래그라지"


"그라믄 이번엔 할머이가 이모할머이 집에 가믄 되잖아"


"니가 얼른 커서 델따 줄래? 대구까진 할미가 못 찾아가"


"대에구? 엄청 머네. 내가 크믄 꼭 델따 주께"


"참말이제? 꼭 델따 준나"


"알겠어. 근데 그건 커서고 지금은 뭐 해주까?"


"우스운 소리 좀 해보래이"


할머니는 그 말씀을 하시곤 벌써부터 소리 내어 웃으셨다.


"할머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웃으면 우뜨케"


"마한 것, 니가 웃기서 그래"



"하이, 스토커 퇴근하는 길이신가?"


퇴근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으며 하는 말이다.


"내가 왜 스토커야?"


"매일 같이 똑같은 시간에 전화하니 스토커지"


"맞나?"


동생은 본인이 말을 하고도 웃기는지 킥킥거렸다.

나는 여느 날과 똑같이 조카가 오늘도 유치원에서 급식을 두 번 먹었는지, 삼각관계인 그녀들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연찮게 생긴 눈 다래끼 때문에 졸지에 한쪽 눈에 쌍꺼풀이 생겨버린 조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남은 눈 마저 눈 다래끼를 키워 보라는 주문을 하고 새롭게 업데이트된 친정 소식들듣고 전화를 끊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계단에서 하늘에 닿겠다고 뛰는 조카

젊었을 땐 정인이, 결혼해선 배필이, 늙어선 동기간이 최고라는 말을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하셨었다. 그리고 우리 사 남매에게 항상 당부하시던 말씀이 있으셨는데 '싸우지 말고 살아라. 세상에 동기간이 최고다.'였다.


그 여름날의 일주일. 자매가 평생 기억하는 서로의 모습은 곱고 보드라운 피부를 가진 웃음 많은 소녀였을텐데 현실은 입가의 웃음 주름도 틀니 때문에 변해버렸고, 살아 있는 동안에 한 번 더 만나기를 소망하며 살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를 대구에 모셔다 드린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 다행히 아버지가 장만하신 파란 중고 트럭을 타고 할머니는 당신의 동생인 외삼촌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셔서 이모할머니를 다시 만나셨는데, 그 만남은 자매가 지상에서 갖은 마지막 시간이었고 또 보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마지막 약속이었다.




요즘 부모님께 참 감사하고 있다. 1남 3녀 중 둘째인 나는 언니도 있고 여동생도 있고 남동생도 있고 진짜 포지션이 최고다. 어릴 적 자전거를 태워줄 수 있는 오빠까지 있다면 정말 완벽하다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어쩌면 내가 그 오빠 역할을 하기 위해 동생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다녔는지도 모르지만 부모님께서 내게 참 귀한 인생의 평생 친구인 피붙이를 주셨다는 것에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새삼 감사하고 있다.

내 자전거에 매달려 학교를 가던 동생들은 나를 자동차에 태워 여행도 함께 가고, 나에게 항상 뭔가를 가르쳐 주려 했던 수재인 언니는 지금도 나와 우리 아이들의 든든한 상담사겸 후원자로 요긴한 정보와 용돈을 하사(?)하고 있다.


동생의 카톡 사진 한 장이 몰고 온 감사의 쓰나미. 캠핑에 함께 가서 떡을 떼며 얘기를 나눴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새삼 내가 참 행복한 소녀였고 지금도 그 행복한 갬성 소녀로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 오늘이다. 언젠가 우리 자매들도 할머니와 이모할머니처럼 거동이 불편해져 서로를 그리워하는 그런 시간이 오겠지만 동기간이 최고라는 할머니 말씀은 불변진리로 기억 될 것 같다.

이전 03화야나할머니의 간절했던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