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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할머니네 외양간 소의 정체

오빠 소 이야기

by 별바라기

저녁을 먹고 청소기를 돌리려는데 거실 바닥에 작은 아이가 앙꼬옆에 누워 등이 따시다며 감탄하고 있었다.


"밥 먹고 바로 누움 소 된다."


"엄마 얼마나 다행이야 돼지 되지 않아서"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었다.





"이잉 밥 묵고 그래 바로 누움 소 된데이"


"할머이 거짓말이지?"


"이잉 누가 거짓부랭이라 하대? 내 말이 맞나 아니나 느 애비한테 가 물어본나"


나는 아빠한테 쪼르르 달려갔다.


"아빠 아빠 밥 먹고 바로 누우믄 소 돼?"


"니 아직까지 그걸 몰랐나?"


아빠의 말에 심장이 덜컹, 바짝 겁을 먹었다.


"그럼 저 소죽 간에 소는 누가 된 건데?"


"엄마가 말 안 해 주드나? 저 소 니 오빠 자네. 그래서 맨날 엄마 엄마하고 울잖아"


아빠 표정이 너무도 진지해서 나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이 저 소가 우리 오빠래"


"인제 알겠나? 그라니 내하고 니 애비하고 만날 천날 따시게 소죽끼리 미기지"


나는 소죽 간의 소가 오빠인 것도 충격이었지만 곧 소가 될지도 모를 나의 운명이었다.


"할머이 밥 먹고 몇 번 자믄 소 되는데?"


"및 번이 어딨어. 게으르고 이 안 닦고 자고 막 살믄 그냥 되는 날에 휙 되는 기지"


"그럼 소는 언제 사람으로 변하는데?"


"젤 큰 보름달이 뜨는 날 내 대신 소가 될 사람이 나타나믄 바꿔치기 하는기여. 인자 니가 소 되고 니 오래비가 고만 올라는 갑다."


나는 평소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빠 대신 내가 소가 되고 싶은 맘은 병아리 오줌만큼도 없었다.




"누가 자꾸 소통에 지푸래기를 느 주나?"


할머니가 역정 내시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이 내가 줬어"


"이 마한 것, 니 오래비도 밥 먹고 쉴 시간이 있으야지. 먹지도 않는걸 자꾸 느 준다고 묵나?"


나는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날름날름 긴 혀로 자꾸만 나에게 침을 묻히는 오빠소가 밉기는커녕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 뒤로 밥만 먹으면 눕는 나에게 식구들이 짠 듯이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니 동상 오늘밤에 소 될라 나부다."


"어 언니 이제 소죽 간서 자는 거야?"


나는 천근만근인 눈꺼풀을 추켜올리며 악착 같이 이를 닦았다.




그 소 타령을 자그마치 40년도 더 지난 지금 작은 아이에게 하고 있는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진짜 소가 오빠라고 믿었던 순수했던 꼬마와 그 꼬마를 놀리는데 혼연일체가 되었던 가족들, 그리도 초저녁 잠을 이기지 못해 매일 저녁을 굶고 자고 씻지 못하고 자니 늘 푸석하고 버짐 가득한 얼굴과 머리엔 부스럼이, 충치가 생긴 습관을 고쳐주고자 하셨던 어른들의 소 이야기는 좋은 습관 대신 웃픈(웃기고도 슬픈) 추억을 남겨 놓았다.


사실 그때 나는 소가 진짜 오빠라고 믿었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소 콧잔등을 쓸어주며 오빠라고 불렀었는데 신기하게도 소는 마치 알아 들었다는 듯이 "음머" 하며 대답도 해 주는 바람에 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소 엉덩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소똥 딱지들을 제거해 주고 싶었지만 특히나 소를 무서워했기에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오빠소는 예쁜 황송아지를 낳았었는데 왜 그때도 성별 의심은커녕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의심을 못했을까? 엄마소도 참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청소기를 미는데 걸리적거리는 작은 아이에게


"일어나. 그러다 너 진짜 소 된다."


"엄마 돼지만 아니면 돼. 소는 땡큐지"


그러게나. 나도 돼지보단 소가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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