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

by 별바라기

내일 아침으로 예정된 할머니의 발인식을 앞두고 엄마가 조용히 부르시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씀 하시면서 할머니 방에 물건들을 미리 챙겨 놓으라 부탁하셨다. 나는 집으로 와 할머니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바늘귀를 꿰어 달라 하시면서 반쯤 걸쳐 쓰고 계시던 뿌연 돋보기안경, 그리고 식경이라 부르던 손바닥만 한 동그란 손거울, 평생 할머니의 뒤통수에 매달려 있던 색을 잃은 은비녀, 글은 읽으실 줄 몰랐으나 시간은 기가 막히게 보셔서 늘 손목을 지키고 있던 낡은 손목시계가 탁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할머니의 전대 주머니. 나는 그 주머니를 보는 순간 다시금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 입관식 때 하도 울어서 눈물이 다 메말랐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눈물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평생 할머니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빨간 주머니는 할머니가 손수 만드시고 수를 놓으신 지퍼 없는 주머니다. 멀리서 쳐다봐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빨간색의 주머니. 우리의 초등학생 시절 아침 등굣길에 할머니가 허리춤에 손만 갖다 대셔도 우리 사 남매의 가슴이 설레어지는 주머니였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잘 댕기 온나, 야나"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 손에 백 원씩 쥐여 주셨다. 우리는 그 백 원을 잃어버릴세라 손에 꼭 움켜쥐고 3킬로미터 떨어진 학교 앞 문구점엘 힘든지도 모르고 부리나케 달려갔고, 문구점 아줌마 손으로 동전이 넘겨질 때는 땀범벅이 된 꼬질꼬질한 손바닥 안에 있던 백 원짜리 동전은 뜨끈뜨끈하다 못해 뜨거운 채로 건네 졌고 손에서 떠나가는 동전이 아쉬운 듯 펼쳐진 손바닥은 금세 썰렁해졌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주머니가 매일매일 열리는 건 아니었다. 할머니의 경제력의 원천은 산에서 얻으신 약초와 산나물이었는데 그것들이 다듬어지고 삶기고 말리고 정리가 된 다음에 장에 가 팔리면 그때야 쪼그라진 할머니 주머니는 부풀어 올랐고, 할머니는 그럴 때 우리에게 용돈을 주셨다. 넉넉지 않은 시골집 살림에 부모님은 사 남매의 학비와 생활비로 늘 빠듯한 살림을 하셔야 했기에, 우리의 숨통을 가끔 틔워주는 건 할머니의 빨간 전대 주머니였다.


그 주머니가 이제 주인을 잃었다. 세월 속에 묻은 손때의 흔적. 반질반질해지고 투박해져 부드러움 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주머니는 할머니가 꿰매고 또 꿰매어 수선을 한 탓에 내가 어릴 적 보았던 주머니의 붉은 빛과 자수의 아름다움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게 빨갛고 커 보였던 주머니가 이렇게 작았었나? 생각하니 다시금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할머니 이불 밑에서 발견된 만 원짜리 몇 장. 언제 쓰시려고 이렇게 감춰 놓으셨는지? 누굴 주시려고 묻어 놓고 기다리셨는지 이제는 그 답을 들을 수가 없으니 또 눈물이 흘렀다.


할머닌 내가 첫아이를 낳아 친정서 산후조리를 할 때도 장에 다녀오시면 나에게 먹거리들을 사다 주시면서


"야나, 언나애미는 언나처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래야 몸이 돌아온다. 마이 먹어라. 그래야 젖도 잘 나온데이"


빽빽 악을 쓰며 팔다리를 흔들며 울고 있는 어린 증손자에게 곡괭이 쥐던 굳은살 가득한 손가락을 하나 쥐여주시며


"힘이 장살세, 이 할미는 힘이 없어 안아주지도 못해, 아 이미야 언나 운다."


방에 혼자 있는 줄 알고 빽빽 울던 아이는 증조할머니의 손가락 하나를 힘 있게 움켜쥐고도 더 크게 울었었고 시도 때도 없이 빽빽 울어대는 증손주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지애미 닮아서 목청이 좋네! 좋아"


할머니는 그 어린 증손자의 백일, 첫돌 상에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들을 올려주셨고 가끔 들르는 친정행에


"야나 꽈자 사무라"


하시며 아이에게 지폐 몇 장을 쥐여주시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연말이라고, 크리스마스라고 캐럴송 울려 퍼지며 들떠 있던 겨울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셨고, 봄이 되자 추워 보이던 산소에도 신생아 머리카락 자라듯이 파릇한 잔디가 올라왔다, 주인 잃은 할머니의 다래끼에는 박새 부부가 둥지를 틀고 5마리를 부화시켜 먹이고 이소 해서 떠나는 신기한 일도 생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큰 조카가 증조할머니 얘기를 하다 '야나할머니'란 표현을 했다. 나는 '어디 동화책이나 만화영화에 나오는 할머니 이름이 야나 인가보다, 나름 괜찮은 이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조카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할머니가 뭔가를 주실 때마다 "야나"하시며 주셔서 '야나할머니'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었다. 증조할머니를 관찰한 조카의 세심함.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나서야 증손주가 붙여준 예쁜 별명을 얻으셨다. 그 뒤로 우린 모두 할머니를 추억할 때마다 "야나할머니"라 부르게 되었다.


며칠 전 안부 전화 차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부인지 시끌시끌한 주변 소음에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간단히 안부만 전하고 끊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은 할머니의 친구분이셨고 우리 동네 최장 장수 어른이신 앞집 할머니가 102세의 나이로 영면하셔서 장례식장에서 일을 돕고 계셨다는 얘기였다. 할머니의 친구가 아직도 살아계셨다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 사는 딸네 집에서 오래 머무셔서 자주 뵐 순 없었지만 유독 하얗던 할머니의 피부와 연한 카디건을 입고 마당에 앉아 있으셨던 모습이 기억이 나고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 앞집 할머니네 밤마실도 가고 마당에 있던 대추도 따 먹고 했었던 기억도 있는데 그 할머니도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할머니도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태어나니 할머니가 계셨고, 결혼할 때까지 할머니랑 살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를 때까지 할머니는 내 곁에 계셨었다. 언제나 친정에 가면 할머니가 맞아주셨고 나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내가 좀 더 철이 들었더라면, 할머니한테 더 고운 옷도 사드리고 요새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들도 많은데 그런 것들도 드시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버이날을 맞아 주말에 다녀온 양가. 무슨 날이라고 숙제하듯 다녀왔는데 다녀오고 보니 한 달 전보다 조금 더 세월을 맞고 계신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기다려 줄 것 같았던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괜스레 맘이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