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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토히 Jan 10. 2024

언어는 좋은 취미입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우리에게 영어가 어렵듯, 그들에게도 한국어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어와 영어의 발음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에게 ‘R’ 발음이 어렵듯이, 외국인들에겐 한국어 ‘ㄹ’ 발음이 쉽지 않다.


발음을 정확하게 익히는데 빠르면 3개월이 걸린다. 외국어를 좀 배워본 사람의 경우다. 우리에겐 너무 쉬운 한국어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선 모든 자음과 모음을 새로 익혀야 하니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하지만 체감상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는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취미로써의 언어

어마어마한 공부량이 그 이유였을까? 사실 공부하는 시간으로 따진다면 한국만큼 진심인 나라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까지 영어를 거의 의무적으로 교육한다. 사교육비로 친다면 당당하게 세계 1위를 하는 나라니,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누구나 영어를 잘해야 마땅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난 그 이유를 우리는 순전히 ‘즐기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영어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혹은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즉, 점수가 목적이라는 뜻이다. 재미로 영어를 배운다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다. 반면에,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취미로써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고, 노래 가사의 의미를 알고 싶어 언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았다.


점수 1점이 절실한 와중에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배우기 위해 일단 좋아해야 한다. 그러니 언어 자체에 집착할 게 아니라 ‘문화’를 더욱 눈여겨봐야 한다. 언어는 단순히 문자 체계를 습득하고 내 언어를 그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상대 문화를 이해해야만 그 언어를 제대로 습득할 수 있다.


시험 점수가 발목을 잡는다

시험 점수가 필요해서 해야만 하는 사람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저 ‘학습 방법’으로 추천하지 않을 뿐이다. 언어를 좋아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시험 준비는 따로 하면 된다. 시험에만 의존한다면 실력은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자신감이 떨어진다.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면 괜찮을까? 오히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영어를 내뱉기가 두렵다. 주변에선 ‘너 영어 잘하니까 해봐.’라는 말을 자주 들을 텐데, 실력이 탄로 나는 게 두려워 더욱 입을 닫게 된다.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군생활 때, 서울대 출신 후임이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다른 한국계 미국인 후임이 있었는데, 대화를 해보라는 선임들의 요구에도 서울대 출신 후임은 절대 영어를 하지 않았다. 주변의 기대와 판단하려는 제스처가 부담스러웠을 거다. 내 경우, 매일 그 후임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엉성하고 초라한 문장들이었지만 그 후임은 잘 받아줬고 틀린 게 있으면 고쳐줬다. 잃을 게 없던 나는 그렇게 영어를 시작했고, 자신감을 얻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당연히 내 영어 실력은 서울대 후임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요점은 가끔은 점수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거다. 무식하고 용감해야 빨리 배우고 성장한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 영어 학습의 대단한 동기가 없었음에도, 그냥 부딪히고 도전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무식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지식이 없다는 뜻이다. 없으면 이제부터 채우면 된다. 전혀 나쁠 게 없다. 아는 게 전혀 없는가? 아주 좋은 시작이다. 지금부터 야무지게 배우면 된다. 반면에, 높은 점수로 인해 지식 대신 자만심이 채워진 상태라면 오히려 문제다.


그 예로, 성인 회화 영어학원에서 일하는 영국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의견에 따르면 영어를 모르는 학생이 점수가 높은 학생보다 오히려 가르치기 쉬웠다고 한다. 점수가 높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영어를 안다는 생각에 교정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전적 정의는 맞지만 실제 대화에서 어색한 단어나 문장을 지적하면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알면 언어를 잘하는 걸까? ‘차 키 좀 찾아줘’라는 말 대신에 ‘차마의 열쇠를 색출함에 원조를 구하오.’라고 외국인이 말한다면 교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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