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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축복

조선의 명신(名臣) 지(輊)자 할아버지가 아들의 결혼을 도왔다

by 두류산

아들 결혼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리자,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이 네 젊을 때 모습이랑 똑같더라. 네 결혼식 때 오징어 가면 쓰고 함 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네 아들 결혼이라니... 세월이 참 빠르다.”



수년 전, 아들이 교제 중인 사람의 성씨가 ‘버들류(柳) 씨’라는 말에 속으로 긴장했다. '혹시 동성동본은 아니겠지?' 그러나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두 사람이 좋다면 그게 무슨 상관인가. 법으로도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아들이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신부의 본관을 물었다. 아들은 모른다고 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동성동본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아니면 좋겠는데...’

혹시 신부가 동성동본이고 같은 지파라 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유씨 성은 신라시대 이후 천 년이 넘었고, 혹시 좌상공파라 해도 파의 시조가 이미 6백 년 전의 분이었으니 말이다.


다음 날, 아들이 “신부의 본관이 전주래요”라고 말했다.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베리 굳!"

그날 저녁, 산책 중에 아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수적인 시골 어른들은 같은 성씨 결혼을 불편하게 여길 수 있으니, 가족 중심의 작은 결혼식이 어떨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복받아야 할 두 사람이 이런 말, 저런 말 듣게 하기는 싫었다.


결혼 준비로 분주한 어느 날, 문득 오래전 <조선왕조실록>에서 읽었던 한 인물이 떠올랐다. 조선 성종대의 명신(名臣) 유지(柳輊) 할아버지였다. 그분의 어머니가 유씨였던 사실이 기억났다. 급히 조사를 해보니, 어머니는 전주 류씨였다.

‘문화 류씨 아버지와 전주 류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지 할아버지… 우리 아들 부부와 똑같은 인연이잖아!’

나는 무릎을 쳤다. 나는 이 소중한 사실을 형제와 친척들에게 공유하기 위해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큰아이의 결혼을 준비하며, 조선 초 활약하셨던 유지(柳輊) 할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29대조가 되시는 할아버지는 포천에 모셔져 있는 원(原)자 지(之)자 할아버지(중시조이신 좌상공 만(曼)자 수(殊)자 할아버지의 장남)의 증손이십니다. 할아버지는 성종을 도와 도승지, 경상도와 평안도 관찰사, 대사헌, 예조와 병조판서를 거치고 종1품 우찬성으로 재상을 지내셨습니다. 뛰어난 학식과 정직한 성품으로 성종대 선정(善政)에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그분의 부친은 유자미(柳自湄) 현감이시고, 어머니는 역시 현감의 따님인 전주 류씨였습니다. 수백 년 전, 문화 류씨와 전주 류씨가 만나 귀한 아들(유지 할아버지)을 낳았듯이, 다시 문화 류씨 아들과 본관이 전주인 류씨 신부가 만났습니다. 이는 시대를 넘어 윗대로부터 축복받는 깊은 인연이라 느껴집니다.”


글을 읽은 사촌 형제와 친척들이 “참 좋은 인연이다”, “할아버지의 축복을 받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준비해 주신 혼사 같다” 등의 격려 댓글을 달았다. 29대조 조부는 당대의 임금은 물론, 시대를 넘어 후손의 결혼까지도 돕고 계신 듯했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선조들을 모신 곳과 멀지 않은 포천 왕망산 기슭에 나란히 잠드신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 귀한 인연을 생전에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사진출처)

https://jeevankumar.com/2020/08/12/guidelines-for-healthy-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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