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광은 조의제문 내용을 자구마다 해석하여 연산군에 고했다
김종직은 한 밤중에 답계역 객사에서 어린 왕을 추모하는 제문을 써내려 갔다.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본성(本性)을 주었으니
이 세상 어느 누가 삼강오륜을 모를 것인가.
중화(中華)라고 많이 주고 동이(東夷)라고 적게 주었을 것인가.
옛날에 있었다면 지금이라고 없겠는가.
동이 사람인 나는, 천 년이 지난 뒤에
삼가 초나라 회왕을 글로서 조문 하노라.’
김종직은 드러나지 않게 단종을 초나라 의제가 된 회왕으로 바꾸어, 초나라 회왕을 글로서 조문한다고 했다.
‘옛날 조룡(祖龍)이 포학하여
사해가 검붉은 피바다를 이루니
작고 큰 물고기들 살길 찾아 헤매었지
초나라 장수의 후예 항량(項梁)은 진승(陳勝) 따라 일어나
왕손을 찾아내 끊긴 제사 이어주었네.’
조룡은 진시황(秦始皇)을 가리켰다. 조(祖)는 시(始)와 같은 뜻이요 용(龍)은 임금의 상징이니, 시황(始皇)의 은어였다. 진시황이 포악하여 진승이 농민 반란을 주도했고, 그로 인해 군웅할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김종직은 이때 초나라의 장수 항량도 군사를 일으키고 초나라 왕실의 후예를 찾아 회왕으로 삼은 역사적 사실(史實)을 말하였다.
‘회왕은 의제(義帝)로, 하늘의 명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이 세상에 진실로 더 높은 이 없었다.
양흔낭탐(羊狠狼貪)이 관군을 마음대로 죽였구나.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안 했는가.
오호라!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이여! ’
김종직은 항량의 조카인 항우(項羽)를 가리켜 양흔낭탐, 즉 발끈하긴 양과 같고 탐욕은 이리와 같다고 묘사했다. 항우는 의제가 상장군으로 삼은 대장군 송의(宋儀)를 모반을 했다는 누명을 씌어 죽이고 상장군직을 차지하였는데, 수양대군이 멋대로 어린 왕을 보좌하는 김종서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 것을 비유한 것이었다. 진나라를 멸망시킨 항우는 회왕을 황제로 옹립하여 섭정으로 통치하다가 결국에는 잔혹하게 의제를 시해하고 말았다.
유자광은 중국의 역사와 은유로 가득한 조의제문 내용을 자구마다 해석하여 연산군에게 고했다.
연산 4년 7월 17일의 실록에 의하면, 유자광에게 조의제문의 해설을 들은 왕은 이 대목을 지적하며 신하들에게 조의제문의 대역무도함을 말하였다.
“김종직은 의제를 노산(魯山)에 비유한 것이다. 양흔낭탐하여 관군을 함부로 무찔렀다고 한 것은, 김종직이 양흔낭탐으로 세조를 가리키고, 관군을 함부로 무찌른 것으로 세조가 김종서를 벤 것을 비유한 것이다. 어찌 잡아다가 제부에 기름칠 아니했느냐고 한 것은, 종직이 노산이 왜 세조를 잡아버리지 못하고, 도리어 세조에게 죽었느냐 하는 것이다.”
김종직은 제문을 마무리했다.
‘배신한 자에게 끝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시니
하늘의 운은 기어코 틀어지고 말았네.
한스러워라 이 세상 언제나 끝이 나서
구천을 떠도는 왕의 영혼 쉬어보려나.
나의 충성된 마음 뜨거워 쇠와 돌을 뚫으니
홀연히 왕께서 내 꿈속에 들어오셨네.
자양(紫陽)의 노련한 필법(筆法)을 따라
이제 제문 짓고 술잔 부어 제사 올리니,
바라건대 영령이시여 부디 와서 흠향하소서.’
자양은 김종직이 받드는 주자의 별호로, ‘자양 필법'은 공자의 춘추필법과 같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들을 역사에 분명히 기록하여 사람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밝혀 세우는 역사 서술방식이었다.
김종직은 자양의 필법을 따른다는 말로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죽인 것을 글로써 나무라,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인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역사에 밝힌다는 뜻을 암시하였다.
연산 4년 7월 17일의 실록에 의하면, 임금이 이 대목을 신하들에게 설명하고,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이 글을 ‘충성스러운 분노’였다고 평가했다고 분노했다.
“자양(紫陽)의 노련한 필법을 따른다는 것은, 김종직이 주자(朱子)를 자처하여 《강목(綱目)》의 자양 필법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김일손이 그 글에 찬(贊)을 붙이기를 ‘충분(忠憤)으로 지었다’고 하였다.”
김종직은 비록 제대로 형식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제문을 올려 구천을 떠도는 어린 왕에게 애통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렸다.
김종직은 제사를 지낸 후 이 제문을 태우든지 하여 없애버려야 했는데, 왜 이것을 남겼을까?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