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은 은밀히 쓴 제문으로 훗날 끔찍한 일을 겪을 줄 상상도 못 했다
1456년 세조 2년 6월.
김종직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집현전 학자들이 어린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수레로 찢겨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김종직은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존경해 온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이 희생을 당했다는 소식에 숨이 막혔다.
김종직은 연이어 황당하고 허탈한 소식들을 들었다. 단종이 복위 운동의 여파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귀양을 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도 폐서인이 되어 종묘에서 위패가 철거되고 왕후의 무덤인 소릉(昭陵)이 파괴된 채 방치되어 있다고 했다.
1457년 세조 3년 10월.
김종직은 경산의 향교에 가는 길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지난번 단종이 영월에 귀양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침내 그곳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사약을 내렸다’, ‘목을 매어 죽게 했다’, ‘시신을 강물에 던졌다’는 등 여러 가지 풍설이 난무하였다.
김종직은 통곡을 하면서 걷다가 탈진하여 경산에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 답계역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답계역은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학산리에 있었다.
김종직은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누웠지만, 어린 임금의 원통한 죽음에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성균관 유생 시절 종로에서 뵈었던 현덕왕후의 위패를 문묘에 모시고 돌아오는 단종의 행렬이 생각났다.
전전반측(輾轉反側), 잠자리에서 뒤척이고 있는데 눈앞에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이 나타났다.
김종직은 꿈인 듯 생시인 듯 놀라 물었다.
"뉘, 뉘시옵니까?”
"나는 초나라 회왕(懷王)이다. 초패왕 항우에게 살해되어 강에 잠겼다."
김종직은 놀라 손을 휘저으며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꿈에 나타난 귀신을 생각해 보았다.
‘회왕은 중국의 남방 초(楚) 나라 사람이고 나는 동이(東夷) 사람으로, 서로 떨어진 거리는 만여 리가 넘고 세월 또한 천 년이 넘었는데, 꿈속에 나타나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역사를 상고해 보니, 자신이 아는 한 회왕을 살해하여 강에 던졌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 강에 잠겨있다고 했을까? 혹시 항우가 사람을 시켜 격살하고 그 시신을 몰래 물에다 던져버린 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생각 끝에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단종의 억울한 영혼이 구천(九泉)을 헤매다 나의 꿈에 회왕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종직은 어린 왕이 원통한 죽음으로 떠도는 귀신이 된 것에 가슴이 아팠다. 어린 왕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고, 저승길을 편하게 해 드리는 조문을 작성하여 홀로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김종직은 단종의 원통한 죽음을 위로하려면 세조의 불의함을 비난해야 하고, 이 글이 빌미가 되면 멸족의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김종직은 묘수를 발휘했다. 억울하게 죽은 역사 속의 중국 황제를 조문하는 척하면서 원통하게 죽은 어린 선왕께 올리는 제문으로 넋을 위로해 드리기로 했다.
김종직은 이날 밤 답계역 객사에서 중국의 역사와 은유로 은밀히 쓰고자 하는 제문이 훗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끔찍한 사화(士禍)를 초래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