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9)

월산대군은 이심원이 학문이 높고 심지가 굳으니 가까이 두고 쓰라고 권했다

by 두류산

9장


훤칠하고 수려한 용모를 한 선비가 이심원의 집을 찾았다. 추강(秋江) 남효온이었다. 남효온은 영의정을 지낸 개국공신 남재의 후손으로 명문가 자손답게 잘 자란 소나무처럼 우아한 모습을 지녔다.

이심원은 남효온을 반갑게 맞으며 손을 잡아끌며 방으로 인도했다. 두 사람은 스물두 살 동갑의 나이에 뜻도 맞아 자주 어울렸다. 이심원의 사랑방은 탁자는 물론 방바닥에도 책들이 펼쳐져 있었다.


방을 들어서며 남효온이 물었다.

“이 책들이 다 무엇인가?”

“향약집성방으로 약재에 관한 책이네.”

“아버님의 병이 재발하신 게군.”

“지난번에 고생하신 풍병에다가 갈증으로 물을 자주 찾으시는 소갈 증세까지 겹친듯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세.”


남효온은 펼쳐진 향약집성방 중 한 권을 들어 보며 말했다.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이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긍휼히 여겨 만드셨다는 약방 책이구먼. 그래, 아버님의 증세와 관련된 처방을 찾았는가?”

“그렇다네. 이 책은 수많은 병의 증세와 각각의 처방법이 들어있어서, 다행히 아버님 증세에 따른 처방을 찾아낼 수 있었네. 병을 고치는 약재는 물론 약재를 달이는 방법까지 적혀 있어 따로 옮겨 적고 있네.”

“아들의 정성이 이토록 지극하니 하늘도 감동하여 아버님도 곧 쾌차하실 것으로 믿네.”


남효온은 이심원이 펼쳐진 책에 표시를 하며 정리하는 것을 도우며 물었다.

“김종직 선생께서는 언제 한양으로 오시는가?”

남효온은 김종직의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이심원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을 수령의 임기가 다 되어가시니, 내년쯤이면 상경하실 것이네. 내가 서신을 써 줄 터이니 함양으로 내려가서 뵈어도 좋을 걸세. 좋은 스승을 뵈려면 천릿길이 먼 길이겠나?”


남효온은 아쉬워하며 말했다.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시니 먼 길은 떠날 수가 없네. 한성에 돌아오셔야지만 뵐 수가 있겠네.”

이심원은 스승도 남효온의 사람됨을 보면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효온은 일찍 남편을 잃고 아들을 헌신적으로 키운 아픈 어머니를 두고 오랫동안 집을 떠날 수는 없었다.


남효온은 화제를 옮겼다.

“효자께서 선비 최소하의 이야기는 들어보았는가?”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니,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어머니께 먹여 병을 낫게 했다던 경상도 사천의 효자 선비 아닌가.”

“충신은 효자의 집에서 구하라고 하였고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니 나라에서 큰 상을 내려야 할 것이야.”

“안 그래도 그 효자를 발탁하여 벼슬을 내리긴 하였는데, 직책이 전옥서(典獄署, 죄수를 관장하는 관서) 참봉이라 하더군.”


남효온은 실망하며 말했다.

“맹자는 어진 이를 제대로 쓰지 아니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고 했는데, 기껏 천리 밖 경상도에서 효행의 모범이라고 불러놓고, 감옥의 일을 맡아보게 하는 것인가.”

이심원이 남효온의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모든 행실의 근본인 효가 바르게 되면, 풍속이 어찌 바르게 되지 않을 것이며, 정치가 어찌 밝지 아니하겠는가?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주상께서 최소하를 가까이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할 것이네”


남효온은 이심원의 손을 잡고 격려했다.

“좋은 생각이네. 자네는 주상의 가까운 종친이 아닌가? 주상이 효의 표상인 최소하를 가까이에 두고 효를 생각하는 거울로 삼으시도록 권해보게나.”


남효온이 집을 떠난 후, 이심원은 바로 지필묵을 꺼내어 붓을 들어 임금에게 아뢰었다.

"주상께서는 널리 초야에 있는 어진 사람을 찾아, 경상도 사천의 효자 최소하가 부름을 받아 전옥서 참봉에 제수되었습니다. 신이 듣건대 인(仁)을 행하는 근본은 효도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합니다. 최소하를 특별히 경연관에 임명하여 아침저녁으로 경연에 입시하게 하여 그 행실을 듣고 사람됨을 보면, 성덕(聖德)에 어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겠습니까? 경전에 이르기를, ‘어진 이를 보고도 등용하지 아니하고, 등용하되 제대로 쓰지 아니하는 것은 태만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성종은 종친인 이심원의 상소를 읽고 원상들과 의논했다. 원상들은 이심원의 의견에 부정적이었다.

"최소하가 비록 어머니에게 효도한 뛰어난 행실이 있을지라도 재주와 덕이 경연관이 되기에 적합한지 알 수가 없으니, 심원의 말을 따를 수 없습니다.”

임금이 원상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효자라고 불러놓고, 심원의 말대로 벼슬이 전옥서 참봉은 아닌 듯하오.”

신숙주가 의견을 내었다.

"당장 경영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어려우니, 다른 관청으로 옮겨서 써보고, 마땅한지를 시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종은 신숙주의 의견을 따랐다.


성종은 비록 이심원의 의견을 곧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임금을 성군(聖君)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하였다. 임금이 종친들을 궁궐에 불러 위로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모두 호피(虎皮)를 1장씩을 하사할 때, 특별히 이심원에게는 자신에게 올린 상소를 칭찬하며 말안장 한 벌을 별도로 내려주었다.

성종의 형님인 월산대군은 이심원이 종친뿐만 아니라 신진 선비들 중에서도 학문이 높고 심지가 굳으니 가까이 두고 쓰라고 성종에게 권했다. 성종은 이심원에게 궁궐의 조회에 참석하게 하여, 나라의 일을 의논할 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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