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대신이 권세를 잡은 지가 20년이니, 고인 물은 썩는 법입니다
조정 관리들은 한명회를 탄핵하며 금기를 깨트리려 한 사헌부 관리들의 기상과 절개를 칭찬하면서도, 원상들과 한명회가 가진 권세를 새삼 실감했다.
“사헌부 대간이 한명회를 공격하니, 아예 사헌부 전체가 통째로 쫓겨나는구나!”
임금은 승지 유지를 따로 불러 명했다.
“이조에 명하여 대간들을 외직에는 내보내지 말게 하라. 곧 다시 중용하리라.”
임사홍은 이번 일로 성균관의 교수로 좌천되었다. 벼슬에 오른 후,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다가 처음으로 좌절을 맛본 것이었다.
임사홍은 몸은 성균관에 있으면서 애당초 유생들을 잘 가르치고자 하는 진지한 마음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다시 왕을 가까이 대하는 직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궁리로 가득했다.
유자광은 호위무사 박성간의 고변 이후 몸을 낮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김순성과 한명회의 일을 지켜보니 마음이 격동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임금이 이제 성년이 거의 되셨는데 원상제가 왜 필요하며, 한명회가 저렇게 사직을 앞세워 어린 임금과 늙은 대비를 겁박해도 되는 것인가? 사헌부의 대간들을 모두 바꾸게 했는데, 사간원의 대간들은 뭐하는 자들이며, 또 조정의 신하들은 왜 한마디도 말을 못 하는가?”
유자광은 방을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한명회로 인해 대간은 있으나마나 하고, 조정의 신하들도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이는 조정의 관리들이 한명회의 권세와 위세에 겁을 내기 때문이다.”
유자광은 사랑채 마당으로 나와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중국 역사에도 황후의 아버지로서 끝까지 무사할 수 있었던 사람이 열에 한두 명도 없었다. 이는 권세에 빌붙어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유자광은 조정과 왕권에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한명회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더 큰 우환이 될 수도 있으니, 지금 한명회를 꺾어놓아야 한다!”
유자광은 궁궐 쪽을 향하여 선 채로 아뢰었다.
“어리석은 신(臣)은 미천한 출신으로 출세하였으므로,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을 말함으로써 전하께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하, 지금 한명회의 죄를 다스려야 나라가 굳건해집니다.”
유자광이 실성한 사람처럼 어두운 하늘을 향해 중얼거리는데, 남원에서 아버지 유규가 돌아가셨다는 급한 전갈이 왔다. 유자광은 놀라, 급히 궁궐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알렸다. 조정은 지중추부사 유규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조회를 폐하였다.
유자광은 바로 남원에 달려가 아버지의 유언대로 <주자가례>대로 장례를 치르고, 무덤가에서 3년 시묘(侍墓) 살이에 들어갔다. 이로서 유자광과 한명회의 격돌은 후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1474년 성종 5년 초여름, 한양의 김종직 제자들은 함께 모여 축하연을 벌였다. 이번 과거에 동문 6명이나 급제를 한 것이었다.
김종직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도학(道學)을 공부한다는 뿌듯한 마음에 학문이면 학문, 문장이면 문장 모두 다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이인형이 세조 14년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한 뒤로, 채수가 예종 1년, 김흔이 성종 2년의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하여 세 번 연속으로 과거에 1등으로 급제를 하였다.
지난 과거에 함양출신 표연말이 합격하였고, 이번 과거에 지난 과거에 장원급제한 김흔의 형님인 김심을 비롯하여 조위, 유호인, 정석견, 정성근 등 6명이 대거 합격하였다. 김종직이 가르친 제자가 많지도 않은데, 과거 급제자 33명 중 2할 정도가 뽑힌 것이었다.
이심원은 가슴이 벅차고 자랑스러워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과거 합격자들과 한양에 사는 제자들을 증조할아버지인 효령대군이 소유한 정자인 희우정(喜雨亭)에 초대하여 축하연을 벌였다.
희우정은 세종대왕이 이름을 지어 준 정자였다. 세종대왕은 형님인 효령대군이 마포의 강변에 마련한 정자를 방문하였을 때, 때마침 가뭄으로 기다리던 비가 내려 매우 기뻐하며 가뭄 끝에 반가운 비(喜雨)를 보는 정자라 하여 ‘희우정(喜雨亭)'이라고 정자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제자들이 희우정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니 강 위에 떠있는 장삿배와 고깃배들 뒤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싱그러운 초여름의 강바람이 탁 트인 정자에 불어와 몸도 마음도 상쾌하였다. 제자들이 이심원에게 말했다.
“주계 덕택에 장안에서 최고가는 정자에서 절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네.”
이심원이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증조부도 태허(太虛)를 비롯한 스승님의 제자들이 이번에 많이 합격하였음을 알고 기쁘게 생각하셨습니다.”
태허는 김종직의 처남이며 제자인 조위(曺偉)의 자(字)인데 이심원과 동갑으로 친하게 지냈다. 조위는 원상의 한 사람으로 당시 조정의 실세였던 조석문의 조카였다. 성종은 조위가 급제하자, 조석문에게 술을 내려 주며 축하하였고, 축하연에 이심원이 증조부인 효령대군을 모시고 참석하기도 하였다.
모인 제자들은 김종직의 문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요즘 스승님의 제자가 되고 싶으니 줄을 놓아 달라는 부탁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 모릅니다.”
“나도 그 부탁을 받고, 스승이 천릿길인 함양에 계시니 조정에 다시 복귀하면 소개해 주겠다고 물리쳤다네.”
제자들은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제자들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한강의 수려한 경치를 굽어보며 유쾌하게 즐기는 가운데 김흔이 몸을 숙이며 김심에게 말했다.
“형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심은 동생이 과거에 먼저 붙어 늘 미안해하던 것을 잘 아는 터라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는 형이나 벼슬은 후배이니 앞으로 잘 부탁하네.”
제자들과 김흔은 김심의 말에 모두 웃었다.
젊은 선비들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조정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훈구대신들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김흔은 원상들의 무능과 탐오를 보고 들은 대로 입에 올리며 희롱하였다.
“대개의 훈구대신들은 아무런 재능이 없으면서도 세조 때 반린부익(攀鱗附翼)으로 용의 비늘과 봉황의 날개를 붙잡아 공신이 되고 그 덕으로 지금까지 높은 벼슬을 하고 있습니다. 조정에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궁궐에 오가며 별다른 정책을 건의하는 것도 없이 녹(祿)을 받고 지내니 정승이 저런 것인가 싶습니다.”
반린부익은 용의 비늘을 붙잡거나 봉황의 날개에 매달려서 출세했다는 뜻으로, 한나라 고조인 유방을 따르던 소하, 한신, 장량, 번쾌 등은 모두 비천한 출신이었으나 유방을 따라 봉기한 후 불과 몇 년 만에 모두 제후가 됐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었다.
벼슬길에 오른 다른 제자들도 김흔의 말을 거들었다.
“자신의 아들과 사위들, 심지어 친척들과 지인들까지 온갖 특혜를 주는 일 외는 딱히 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니, 그들에게 어찌 나라를 위한 계책을 내기를 기대하겠습니까.”
“이조판서였던 한계미를 보세요. 군자 같은 모습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속으로는 간사하여, 무릇 그가 천거하여 올린 사람들은 친척이나 지인이 아니면, 돈으로 청탁한 자였습니다. 대간이 이를 알고, 여러 번 탄핵하여 결국 파직이 되었습니다만, 실로 훈구대신들의 치졸한 행실을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사헌부 지평인 채수도 재상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판하였다.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으로 영의정까지 지냈던 정인지는 재물을 좋아하여 수만 석이 되었는데도 이웃 사람의 집까지 빼앗아 원성이 자자하고, 원상 최항은 사위를 볼 때 인품은 안 따지고 집에 재물이 많은지만 따졌다 하고, 양성지는 아예 별호가 동전 냄새 풍기는 '동취(銅臭)'라고 불리니, 나랏일만 근심하고 재물에는 초연한 그런 대신들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김흔은 원상들이 임금을 기다리는 자리에서 감히 음담패설을 입에 올리던 일을 전하였다.
“하루는 경연에 전하가 나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원상인 김질과 윤자운이 평양 기생이 예쁘고 못난 것을 서로 평하고, 기생들을 희롱한 일을 말하였습니다. 크게 웃으며 서로 자랑하는 것을 보니 역겨워서 토하고 싶었습니다. 참고 그 자리에 있으려니 머리에 힘줄이 돋을 지경이었습니다.”
제자들 중에 제일 연장자인 김맹성이 한탄하며 말했다.
“지금 나라에서는 가뭄의 재해가 있어 백성이 굶주리는데, 원상들은 재해를 구제하고 백성을 구휼하기를 생각기는커녕 음담패설이나 입에 담고, 더 많은 재물을 모으기에만 관심을 가지니, 장차 이 나라의 장래는 어찌 될꼬?”
김맹성이 탄식하며 말을 잇지 못하니, 정석견이 거들었다.
“그들은 높은 벼슬로 녹봉도 충분히 받을 것인데 왜 그렇게 재물욕심이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심원이 외삼촌인 채수에게 도발하듯 말했다.
“사헌부 지평의 역할을 소홀히 하시는 것 아닙니까? 훈구대신들이 재물을 탐하여 꺼림이 없이 행동하면 바로 전하에게 아뢰어 조정의 기풍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인형이 웃으며, 채수를 위해 말했다.
“안 그래도 채 지평이 경연에서 주상 앞에서 훈구대신들을 크게 나무랐다네.”
이심원이 외삼촌에게 뭐라고 하였는지 그대로 말해보라고 하자, 채수는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어 마치 주상이 앞에 계신 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고려 말에 선비의 기풍이 크게 무너졌었는데, 세종 때에 이르러 다시 떨치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조 때 이후로 기강이 없어져서 훈구대신들이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탐오하고 절제를 모르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이심원이 감탄을 하며 물었다.
“그랬더니 주상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상께서는 탄식을 하시며 ‘지금의 선비의 기상이 예전만 못하니, 과인도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고 하셨네. 그래서 내가 아뢰기를 지금이라도 대신들이 방자하게 꺼림이 없이 행동하면, 바로 죄를 물어 이러한 조짐의 싹을 자르소서!’ 하였다네.”
제자들은 채수의 말을 듣고 유쾌하게 웃었으나 뒷맛이 씁쓸했다. 대비와 어린 임금이 아홉 명의 원상들에게 의지하여 정치를 하고 있는데, 어찌 그들을 쉽게 처벌할 수 있겠는가.
이심원이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고인 물은 썩는 법입니다. 훈구대신들이 공신이 되어 조정을 차지한 지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조선을 왕도정치가 구현되는 대동사회로 만들려면 훈구대신들이 모두 관직에서 물러나고, 스승님이 말씀하신 대로 조정에 맑은 물로 새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서로 술을 권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자, 조위가 유호인에게 말했다.
“일전에 나에게 보여준 과거 보러 올 때 스승님이 써주신 시를 동문들에게도 알려주게나.”
유호인이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함양에서 한양으로 과거 길을 떠나려고 관아에 들려 스승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염려하며 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스승님이 격려하시며 지어주신 글입니다.”
유호인이 품에서 꺼내어 펼쳐 보이는 시의 제목을 보니 ‘유호인이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가다’였다. 유호인은 낭랑히 시를 읽었다.
“천둥과 번개가 봄추위를 깔보며
온갖 벌레가 알에서 깨기도 전에 두렵게 하니
진흙 속의 승천하지 않은 용을 일으킬 징조라.”
제자들이 스승의 시를 듣고 감탄하였다.
“스승님은 제자의 합격을 기원하시고 또 예언까지 하셨네.”
제자들은 천리 밖에 있는 스승을 느끼고 그리워하였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