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가 수레에 도전하다 (3)

한명회가 말한 바는 신하의 입에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by 두류산

3장


성종은 어지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맑게 하고 싶었다. 내관에게 명해 함양에서 공물로 올린 지리산 기슭에서 키운 작설차를 내오게 했다. 작설차는 갓 돋아 나온 차나무의 새싹을 따서 만든 차로, 생김새가 참새의 혀(雀舌)와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임금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아 입으로 가져갔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찻잔의 온기와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임금은 뜨거운 차를 천천히 음미하여 마시며, 내관에게 도승지에게도 차를 내리게 하였다.

도승지 유지가 차를 받아 들며 감사하자, 임금은 속에 있는 말을 했다.

“정승들이 나를 못 믿는 것인가?”

유지는 당황하며 변명하였다.

“상당군이 대비의 마음을 돌리려고 여러 번 나섰다가, 실언을 한듯합니다.”

유지는 임금이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음을 보고, 찻잔을 든 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임금은 친정체제가 되면, 그동안 강력했던 원상들과 훈구대신들의 권세를 어떤 식으로 다스려야 할지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친정 제제를 맞았다 하더라도 어찌 훈구대신들을 멀리할 수야 있겠는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왕도정치를 펼쳐 대동사회를 구현하자면, 뜻을 모아서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 임금의 마음은 유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임금은 차가 식도록 다시 생각에 잠겼다.

‘훈구대신들의 권세를 제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임금의 뜻을 거역한다고 하여 대신들을 내치거나 엄히 죄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법가의 폭압정치로 어떻게 왕도정치를 이룰 수 있겠나.....’


다음날 성종은 경연을 마치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생각에 잠긴 듯 앉아있었다. 임금의 오랜 침묵은 신하들의 가슴을 짓눌러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성종은 짐짓 침통한 어조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왕대비께서 과인에게 정사를 돌려주려고 하는데 과인이 청해도 듣지 않으시므로 대신들로 하여금 이를 청하게 하였다. 좌의정이 대왕대비를 찾아가 지금 정사를 돌려준다면 동방의 신민(臣民)을 버리는 것이라 말하고, 또 대궐에 와서도 믿고 의지할 곳이 없으니, 술 한 잔도 편안히 마실 수도 없다고까지 하면서 만류하였다. 이토록 간절히 청했으나 대왕대비께서 허가하지 않으므로, 과인도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입시한 신하들은 임금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헤아렸다. 젊은 임금은 말을 이었다.

“대비께 청할 때 한 말은 정승들이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임금이 정승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신하들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성종은 숨소리를 죽이며 듣고 있는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을 토해내었다.

“과인이 매일같이 조심하여 힘쓰더라도 여러 가지 일에 어찌 잘못된 판단이 없겠는가? 경들은 각기 마음을 다하여 과인이 미치지 못한 점을 보좌하라.”

성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곤룡포 자락을 털고 경연장을 나가자, 신하들은 눈을 크게 뜨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경연장을 빠져나온 사간원 정언(正言) 이세광은 곧바로 승정원에 들렸다. 이세광은 할아버지 우의정 이인손과 아버지 병조판서 이극배의 배경으로 문음으로 벼슬길에 올랐다가, 지난해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 6품인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었다. 이세광은 장인인 현석규를 찾아 물었다.

“오늘 경연에서 주상께서 정승들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대비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는 과정에서 상당군이 지나친 말을 많이 한 것이다.”


이세광은 장인을 떠보았다.

“주상께서 장인이기도 하신 정승을 어떻게 나무라겠습니까? 이 일은 대간들이 나서야 할 일입니다.”

“그건 사간원이나 사헌부에서 의논해서 할 일이야.”

이세광은 승지인 장인이 강하게 부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이세광은 사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대사간 정괄을 찾았다.

“경연에서 주상이 하신 말씀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승들이 주상을 믿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간원이 나서서 상당군을 탄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간원 전체의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세.”

정괄은 이세광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간원들이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결정을 미루었다.

경연에서 돌아온 사헌부 관리들도 임금의 말을 전하며 대사헌 윤계겸에게 제의했다.

“사헌부가 연명하여 상당군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야 합니다.”

대왕대비의 친정 조카이며 우의정 윤사흔의 아들이기도 한 윤계겸은 최고의 권세가인 한명회를 직접 거론하며 탄핵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지난번 본부에서 상당군을 공격하다가 전부 좌천되지 않았는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네.”

“이 일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입니다. 한명회의 오만한 말에 대해 어떻게든 사헌부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조정의 관리들 모두가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이번 일은 일단 나에게 맡기게”


대사헌 윤계겸은 사헌부 단독으로 상소를 올리는 것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대사헌은 사간원을 찾아 대사간에게 두 사람이 함께 임금을 알현하여 아뢰자고 제의하였다. 영의정 정창손의 아들인 대사간 정괄은 윤계겸의 제안에 솔직히 말했다.

“상대가 좌의정 대감이니, 사헌부와 사간원 양사(兩司)가 힘을 합해야 안전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상당군은 아버님에게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어려워하는 분이시니 자식의 입장에서 이름을 거론하며 탄핵하기는 어렵습니다.”

윤계겸도 근심을 담아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아버님을 생각하면 상당군을 탄핵하기는 곤혹스러운 일이요.”


정괄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하나의 제안을 했다.

“사간원에서 내일 정언 이세광이 본부의 일을 주상께 보고하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때 대사헌께서도 보고가 예정되어있으니, 이세광이 말을 꺼내면 그때 적당히 거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사(兩司)의 장관이 함께 탄핵을 하는 것보다 무게감이 덜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다음날 사간원 정언 이세광이 대사헌 윤계겸과 함께 임금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대왕대비께서 전하에게 정사를 되돌리시더라도, 종묘와 사직과 백성을 어찌 버리는 것이 되겠으며, 어찌 편안하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겠습니까? 한명회는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망령된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청컨대 국문하게 하소서.”

"정승의 말은 다만 대비의 마음을 돌리려고 한 것뿐인데 무슨 다른 마음이 있었겠는가?”


윤계겸은 이세광의 말을 거들지도 못하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윤계겸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주상께서 다른 마음이 있었겠는가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오히려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이 아닌가.’

대사헌은 궁궐의 뜰에서 부친을 만나 임금을 만났던 일을 전했다. 우의정 윤사흔은 임금의 말에 가시가 있음을 직감했다.

“내가 주상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겠다.”


윤사흔은 어전을 물러나와 한명회를 찾았다. 한명회에게 대간이 탄핵한 일과 임금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어전에 나아갔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명회는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입은 화를 부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으니, 말을 줄였어야 했는데......”


한명회는 윤사흔의 말을 듣고 바로 임금에게 나아가 자신 때문에 조정이 동요하고 있음을 사죄하였다. 성종이 고개 숙여 엎드린 노대신(老大臣)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경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임금은 승지에게 명하여 한명회에게 음식을 대접하여 보내게 하였다.


사헌부 관리들은 한명회가 임금에게 나아가 사죄했으나, 도리어 술상을 받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기가 불편했다.

“일이 이렇게 마무리되어서는 안 될 것이야.”

사헌부 관리들은 뜻을 모아 함께 상소를 올렸다.

"대왕대비께서 정사를 돌리시는 것은 실로 신민(臣民)의 희망에 합당한 것인데도, 한명회가 말한 바는 신하의 입에서 마땅히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명회는 전하가 아직 장성하지 않다고 여기는지? 학문이 성취되지 않다고 여기는지? 만기(萬機, 여러 가지 정사)를 혼자서 결단할 수 없다고 여기는지? 어찌 그의 말이 이와 같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국문하여 처벌하소서.”


사간원도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말이란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마음이 없고서야 말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명회는 삼조(三朝, 세 임금)를 두루 섬기어서 벼슬이 삼공(三公)에 있으므로 어찌 빈말을 하였겠습니까. 원컨대 사유를 국문하여 여러 사람의 의혹을 풀어주소서.”




(일러스트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15090200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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