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광은 한명회의 오만함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1475년 성종 6년 11월, 조정은 임금의 친아버지를 종묘에 모시는 시기를 내년 1월로 정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이때 승정원의 출입문에 누군가가 대왕대비가 친정의 친족에게 특혜를 주었다고 비난하는 글을 붙였다. 승지들은 놀라서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익명으로 된 글은 부자(父子) 사이에도 말할 것이 못되기 때문에 곧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러나 신들이 본 것을 아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익명서가 찢어져 있어 전체 글은 알 수가 없으나 강자평이 진주 목사가 된 것은 대왕대비의 특명이라는 내용이 있었고, 또 윤사흔, 윤계겸 등의 이름 밑에 도적이라는 글자가 있었고, 많은 욕이 쓰여 있었습니다.”
"익명서는 법으로 묻지 않는 것이다. 보아서 쓸데없는 것은 태우는 것이 마땅하다.”
윤사흔은 대왕대비의 친정 동생이고, 윤계겸은 윤사흔의 아들이었다. 정희대비는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의 익명서 소동이 있었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생각했던 대로 임금을 적통으로 세우는 일이 마무리되는 내년 1월에 섭정을 끝내기로 결심하였다.
유자광은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한성에 복귀하였다. 사람들마다 훈구대신들과 한명회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훈구대신들의 재물 욕심은 끝이 없어서, 뇌물을 실은 수레가 대신들 집 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한명회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갈매기가 희롱하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압구정(押鷗亭)이라는 이름의 호화로운 별장을 지었습니다. 권세와 재물을 탐하여 놓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오로지 풍류만 즐기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세를 멀리하기는커녕, 한번 오른 직책은 비록 일이 하찮은 것이라도 내놓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낭관을 보내어 아뢸만한 일도 반드시 스스로 주상을 찾아가서 번거롭게 아뢰니, 주상 전하도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유자광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삼년상을 마치고 한양에 돌아왔는데, 시간이 멈춘 듯 예전 그대로구나.”
1476년 성종 7년 1월, 13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원상들과 대왕대비의 도움으로 정치를 하던 임금은 새해를 맞아 스무 살의 성년이 되었다. 성종은 친부(親父)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받들어 종묘에 모시고, 백관들과 함께 제사를 지냈다. 임금은 모든 의식을 마치고 조회를 열어 부묘에 종사한 신하들에게 상을 내리는 일에 대해 논의하였다.
대사간 정괄이 앞으로 나와 이조의 낭관들을 탄핵하였다.
“국가에서 선왕을 종묘에 모실 때면 집사가 된 사람에게는 매번 상으로 품계를 올려주었습니다. 이조의 낭관들이 이것을 바라고 이번 일의 집사(執事)에 자신들을 스스로 임명하였으니 염치의 도리를 잃은 일입니다.”
집사는 제사 때 제관을 도와 잔을 올리는 것을 거드는 등 제례의 진행을 도와주는 사람을 일컬었다.
임금은 원상들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이조의 낭관들이 다 집사가 되었는가?”
한명회가 앞으로 나와 답변을 올렸다.
“여러 부서의 관원으로는 집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회에 참석한 유자광은 한명회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이것은 임금을 속이는 것이다. 어찌 한두 명의 집사를 임명할 만한 관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시정잡배라 할지라도 아는 사실일진대, 공공연히 임금을 속이면서 아랫사람에게 아첨하여 칭찬을 받자는 것이 아닌가? 세상이 아는 사실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셈이니 지록위마(指鹿爲馬)나 다름없는 일이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고 함부로 권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의 아들인 이세 황제(二世皇帝) 때 승상 조고(趙高)는 황제의 자리를 노렸으나 여러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 두려웠다. 조고는 신하들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황제에게 바치면서 '이것은 말입니다'라고 하자, 이세 황제가 '말이 아니고 사슴이오'라고 말했다. 조고가 대신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떤 신하들은 말이라고 하며 조고의 뜻에 영합하고, 어떤 신하들은 사실대로 사슴이라고 답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자신을 따르지 않는 신하들이라 하여 암암리에 모두 숙청했다.
유자광은 임금의 총명을 흐리게 하는 한명회의 오만에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유자광은 조회에서 물러나오면서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3대째 공신이며 임금의 장인으로, 주상이 젊다고 깔보는 것인가.’
유자광은 집에 돌아와서도 조회에서 목격한 일로 입맛이 없었다. 비록 대간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나서서 한명회를 책망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대왕대비는 임금의 친부를 종묘에 모시는 일이 절차대로 모두 마치자, 결심한 대로 정무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처음에 주상이 어리고, 대신들이 나의 섭정을 굳이 청하므로, 내가 사양하지 못하였다. 매양 조심하여, 한 가지 일도 내 친족을 위한 것은 없었는데도, 지난번 익명서에 나를 지칭하였으니 실로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다. 정사를 맡는 것은 부인의 할 일이 아니고, 더구나 이제 주상께서 나이가 장성하고 학문도 성취되었으니 모든 정무를 홀로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임금은 대왕대비를 찾아가 여러 번 만류하였으나 대비는 듣지 않았다. 성종은 원상들인 원로대신들에게 당부했다.
"과인이 아무리 청해도 윤허하지 않으시니 정승들이 청하여보시오.”
임금의 당부를 들은 영의정 김국광과 좌의정 한명회가 함께 대왕대비를 찾아가 만류하였다.
"오늘날의 태평한 정치는 대왕대비의 힘이었습니다. 만약 정무에서 손을 떼신다면 종묘사직과 억조창생이 어찌 되겠습니까?”
"나의 결심은 경들에게 가부(可否)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요.”
임금은 도승지와 승지들을 불러서 말했다.
"지금 대비께서 과인에게 정사(政事)를 돌리려고 하므로, 거두어주시기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으셨다. 또한 정승들이 만류했으나 윤허하지 않으셨다. 경들은 가까이서 보필하는 사람이니 과인의 말을 그대로 아뢰어 다시 청해 보라.”
대왕대비가 승지들의 청마저 거절하자, 임금은 다시 대왕대비를 찾아 만류하였다.
"제가 만약 학문이 이미 성취되어 큰일을 결단할만하다면 여러 신하들이 당연히 저에게 정사를 돌려주기를 먼저 청했을 것입니다. 지금 정승들이 오히려 저에게 정사를 돌려주지 말도록 청하고 있으니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원컨대 이를 따르소서.”
대왕대비가 임금에게 말했다.
"주상께서 이미 내 뜻을 잘 알고 있소. 나는 지식이 적고 우매한 자질로써 국정에 참여했으니 역사에 오점을 남길까 두렵소. 지금부터는 주상이 혼자 결단하고 늙은 부인에게는 편안히 쉬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성종은 대왕대비의 뜻을 받들기로 마음을 정하고, 대신들을 불렀다.
임금은 먼저 도착하여 절하고 고개 숙여 엎드린 한명회에게 말했다.
"과인이 간절히 이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으셨어요. 어쩌면 좋을지 생각해 보시오.”
좌의정 한명회는 임금이 대왕대비의 결심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미 대신들을 모두 불렀으니, 대신들이 모두 대왕대비를 함께 찾아가 마음을 돌리시라고 청할 것입니다.”
성종은 얼굴이 붉어졌다.
"좌의정이 이미 왔으니 어찌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리겠소?”
한명회가 홀로 대비전(大妃殿)에 들려 청했다.
"우리 조정에서는 세종께서 승하하시고 문종께서 일찍 별세하셔서 노산군(魯山君)이 왕위에 오르니 나라의 일이 날로 그릇되므로 세조께서 나라를 평안하게 하셨으나 성삼문의 변고가 있었습니다. 예종 때에 이르러서는 남이의 난이 있었습니다. 주상께서 어린 나이로 즉위한 이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어진 정치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가 대왕대비께서 정사를 돌보신 힘이오니, 청컨대 정사를 돌려준다는 말씀은 거두어 주시옵소서.”
노산군은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받은 칭호였다.
"내가 이 마음을 가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때마침 중궁(中宮, 왕후의 높임말)이 불행하게 되어 머뭇거리면서 이제까지 이르게 되었다. 더구나 익명서에서 나를 지칭하니, 내 마음이 편안하겠는가? 경들의 말은 따를 수가 없다.”
대왕대비가 말한 중궁(中宮)의 불행은 한명회의 딸이기도 한 중전 한씨가 18세의 나이로 1년 전에 요절한 사실을 말했다.
한명회가 임금에게 돌아와서 대왕대비의 결심을 고하니, 성종은 도승지에게 한명회와 함께 가서 다시 청해보라고 명했다. 한명회는 도승지와 함께 대비전으로 가서 다시 청했다.
"아직 새로이 중궁(中宮)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찌 정사를 거두려고 하십니까? 만약 지금 정사에서 물러나신다면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살겠습니까? 신(臣)들도 어찌 예전처럼 궁궐에서 편안히 술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 마음을 가진 지가 오래되었다. 삼정승이 정무를 보좌하고 백관이 직무를 분담하고 있으니, 내가 어찌 쓸데없이 있겠는가?”
도승지 유지는 대비의 결심이 굳음에도 한명회가 계속 청하는 것을 보다가, 먼저 돌아와 임금에게 아뢰었다.
"대왕대비께서 고집하기를 이와 같이 하시니, 대비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좌의정이 대왕대비께 충분히 간절하게 청하였느냐?”
“상당군은 대비께서 정사에서 물러나신다면 백성들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였고, 그동안은 수시로 대궐에 들어와서 안심하고 술을 마셨는데, 장차는 안심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하며 간절히 마음을 돌리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임금은 도승지의 말에 안색이 변했다.
‘상당군의 말이 지나치지 않은가. 나를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는 것인가.’
(일러스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