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김종직과 운명적으로 엮이는 유자광은 남원 땅에 살고 있었다
이 무렵, 김종직과 운명적으로 엮이는 유자광(柳子光)은 일곱 살의 나이로 전라도 남원 땅에 살고 있었다. 유자광은 세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경주부윤을 지낸 유규의 아들로 그의 생모 최씨는 노비의 신분이었다. 유규의 부인인 송씨의 몸종이었던 최씨는 민첩하게 일처리를 잘하여 송씨와 유규가 함께 마음에 들어 했다.
남원 땅에서 전해지는 유자광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유규가 우연히 낮잠을 자다가 백호(白虎)가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는 이 꿈이 대단한 인물을 낳게 할 영험한 태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의 방으로 건너가 꿈 이야기를 하고 합방을 원했지만 부인은 ‘대낮이라 망측하다’고 거절했다. 유규는 답답해하면서도 하릴없이 사랑방에 건너왔다. 마침 최씨가 사랑방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취하여 유자광을 얻었다. 당시 최씨는 30세의 나이였다.
부인 송씨는 병치레를 오래 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송씨가 돌아가자 최씨는 유자광을 비롯하여 삼 형제를 낳았다. 최씨는 유규의 사랑을 받았지만 노비의 신분이므로 정식 부인이 되지는 못하였다.
유자광은 여종의 몸에서 나왔으니 법에 의해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노비의 신세였다. 하지만 유규는 유자광을 아들로서 대했다. 이름에 집안의 항렬(行列) 자를 넣어지어 주고 자신이 기거하는 사랑채에 재웠다.
유자광은 어릴 적부터 영민하여 유규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는 그대로 암기해서 아버지를 놀라게 하였다. 어느 날 유규가 마을 뒷산의 깎아지른 듯 빼어난 바위를 감탄하면서 바라보니, 옆에서 어린 자광은 바위에게 말을 걸듯 시를 지었다.
바위야, 뿌리가 하늘로 내리었으니
너의 기세가 삼한을 누르는구나.
유규는 하늘을 향하여 우뚝 솟은 바위를 보고, 바위의 뿌리가 하늘에 박혀있다고 표현하는 어린 아들의 발상이 대견하여 몸을 번쩍 들어 안아주었다.
유규는 자광이 커가면서 글 읽기를 좋아하고, 학문의 자질이 보일수록 마음속에 근심이 쌓여갔다.
"아이가 학문을 좋아하는 것을 기뻐만 할 수 없으니.....”
유규는 유자광이 나랏 법에 엄연히 천민인데 한 집에 데리고 살면서 아들같이 키우기에는 사람들의 눈치도 보이고, 아들이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어 상처를 입을까 걱정도 되었다. 유규는 고민 끝에 유자광과 그의 어미가 살 집을 따로 마련해 주었다.
유규는 자주 집을 방문하였고, 올 때마다 넉넉하게 곡식과 재물을 챙겨주었다. 유자광은 서당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며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랐다.
유규가 오랜만에 집에 들르자, 서당을 다녀온 유자광은 아버지를 반기며 물었다.
"제가 몇 살이 되면 과거시험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유규는 한동안 대답을 못하다가, 이윽고 말했다.
"학문은 과거를 보아 출세나 부귀영화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유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들을 보며 힘주어 말했다.
"학문은 모름지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워서 군자가 되기 위해 힘써 익히는 것이다.”
유규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자광의 눈길을 애써 피했다.
유자광의 출생에 얽힌 꿈 이야기나 어릴 때 바위를 보고 시를 지었다는 일화는 남원 주변에서 말로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조선 사회를 지배했던 사림(士林)이 보는 유자광과 일반 백성들이 보는 유자광에 대한 평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