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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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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Sep 12. 2024

손자와 특별한 2박 3일

  월요일 밤 11시 50분.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며 지난 2박 3일을 떠올린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번진다.


 토요일 새벽 6시. 눈을 뜨면서 2박 3일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지난밤에 챙겨둔 여행 가방을 마무리해야 했다. 양치도구, 잠옷, 양말... 준비물 리스트를 보고 다 챙겼는지 확인했다. 아내와 나는 각각 여행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누군가 보면 좋은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손녀가 태어날 예정으로, 온 집안이 비상사태였다. 평창 숲 그늘에서 보낼 여름휴가 계획은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며느리는 손녀 출생을 앞두고 우리 부부와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산부인과 병원과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4주 동안, 두 살이 채 안 된 손자를 돌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 부부는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주말 담당이 되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어린이집을 열지 않기 때문에 종일 손자와 함께했다. 한여름의 폭염으로 낮에는 집에 머물며 놀이를 했다. 아내는 인간 미끄럼틀, 박스에 태워 부엌과 식탁, 화장실을 오가는 버스놀이, 얇은 담요에 눕혀 흔드는 그네 타기를 개발하여 아이를 즐겁게 했다. 나는 공위에 올라앉은 아이를 위로 들어 올리는 점프점프 놀이와 발밑으로 빠져나가기, 책 읽어주기를 하며 놀았다. 


 해가 지고 날씨가 선선해지면 손자에게 모기장 옷을 입혀 놀이터에 나갔다. 손자가 모기에 물리면 알레르기 반응으로 자국이 크게 부풀기 때문이다. 아내는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모기가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손자는 시소, 말타기, 미끄럼틀, 그네 타기를 하며 지치지 않고 놀았다. 


 놀이터에 한낮의 열기가 남아 있으면 전철을 타고 손자가 가장 좋아하는 기차 타기 놀이를 했다. 백화점이 있는 역에 내려 유아코너에 가서 피아노 건반을 밟으며 음악소리를 내고, 사람 몸집의 곰돌이와 미키마우스랑 인사를 하고,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손자가 귀엽게 마스크를 쓴 채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전철에 오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월요일은 손자가 어린이집에 간다.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3시 반까지 6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아내는 빨래나 설거지 등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나는 집필하고 있는 소설의 초고를 꺼내어 본다. 점심 먹고 낮잠도 한숨 잘 수 있다. 손자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면 아이가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활짝 웃는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손자는 과일을 좋아한다. 수박, 복숭아, 참외, 바나나...... 할머니가 잘게 잘라주면 작은 과일 그릇을 들고 앉아 포크나 손으로 과일을 야무지게 먹는다. 빈 그릇을 들고 “더 주세요.” 하고,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세 번째가 되면 아내가 “이제 마지막이다”라고 말하면 손자는 알아듣고 과일 먹기를 끝낸다. 아내는 “과일을 좋아하는 건 할아버지, 아빠에 이어 3대가 똑같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손자는 1년 11개월이 되었다. 이제 문장으로 말한다. “수박 주세요”, “안아 주세요.” "기차 타러 가요."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어찌 이렇게 말을 잘할까. 아빠가 하는 운동이나 춤 동작도 포인트를 잡아 그대로 따라 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손자를 돌보는 일에는 쉽지 않은 순간도 있다. 밥 먹이기와 잠재우기다. 할머니가 준비한 밥과 김, 잘게 썰은 고기, 흰 살 생선, 맵지 않게 씻어 희게 된 김치, 콩나물, 미역국...... 내가 젓가락으로 집어 주거나, 아이가 포크와 숟가락으로 먹거나 한다. 대개 반은 먹다가 흘리거나 뱉는다. 


 며느리와 아들이 말하길, 보통 밤 8시 반쯤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곧장 잠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할 때는 다르다.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한 지 두 시간이 지난 10시 40분이 되어도 잠들지 않는다. 월요일 밤 삼촌이 왔을 때는 흥분해서 아예 잘 생각을 안 했다.


 2박 3일의 일정이 끝나고 작별 인사를 하면 손자가 “가지 마!”하고 외친다. “또 올게”라고 말하면 “같이 가!”하며 따라나선다. 아빠가 “또, 오세요” 하고 바이바이 하라고 하니, 손자는 알아듣고 아빠랑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작별인사를 한다. 쿨하게 인사하는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하루 종일 손자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지금쯤 잠이 들었을까, 안 깨고 잘 잤을까, 깨어서 엄마를 찾지는 않았을까, 어린이집에는 잘 갔을까..... 엄마가 오랜만에 갓난아이를 안고 나타나면 여동생을 어떻게 대할까도 궁금하다. 


 아내에게 물었다.

 “언제 아이가 제일 예쁘던가?”

 “전부 예쁘지.”

 나는 제일 예쁜 순간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목욕 후 수건으로 닦아줄 때, 흥에 겨워 춤출 때, 그리고 잠잘 때.”

 내 생각과 같다.  


 손자의 모습과 행동에서 옛적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보고 있어도, 떨어져 생각만 해도 행복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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