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기회를 얻다 (11)

남원사람들은 유자광 어미가 몸종이었다는 말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by 두류산

28장


유자광은 조정의 신하들이 병조정랑 자리를 두고 귀천과 존비의 명분을 심하게 따지는 것에 울화가 치밀었다. 궁궐 앞 육조거리에 있는 병조에 출근하면서 차마 내색하기도 싫은 껄끄러운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다. 병조의 동료들은 물론 하급관리들도 건성으로 인사하고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려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유자광은 병조는 물론 조정의 모든 관리들이 자신을 따돌리고 피하고 있는 현실을 느꼈다.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주상전하뿐이시다”

유자광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천하게 태어난 것을 어찌하겠나? 무를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허통이 되어 이제 과거 응시도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내가 할 도리는, 대과에 당당히 급제하여 조정의 신하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주상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유자광은 임금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심정으로 병조는 물론 조정의 누구라도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개의치 않고 병조정랑의 일에 매달렸다. 유자광은 또한 미천한 출신이라고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 과거시험을 준비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경전과 사서(史書)를 읽었다. 책의 주요 내용과 사례는 따로 적어두고, 대화나 글을 쓸 때 활용하였다.


유자광은 병조의 업무를 대체로 파악하고, 여진족과 싸우고 있는 조선군의 실태를 살피려 국경으로 달려갔다. 유자광은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전쟁의 승리를 위해 조정과 전선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유자광은 임금에게 아뢰었다.

“압록강 국경의 최전선 현장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여진족과 맞서는 군사들을 직접 만나서 기세를 올려주고 조정에서 지원해 주어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소서.”

세조는 유자광의 제의에 기뻐했다.

“지금까지 어느 병조정랑이 전쟁터까지 가서 무인들의 공을 살피고 사기를 올려준 예가 있던가? 과연 인재로다.”


유자광이 남만주의 여진족과 대치하는 전쟁터를 둘러보러 왔을 때, 명나라 군대와 연합한 조선의 군사는 총공격을 개시하여 여진족을 토벌하였다. 유자광은 조선의 군사가 세운 공을 확인하고 무인들을 격려하였다. 유자광은 조선의 군사가 여진을 무찌른 전공(戰功)이 명나라 장군을 통하여 중국의 조정에 제대로 보고가 되는지 의심이 들었다. 유자광은 전공을 기록한 문서와 함께 전리품으로 조선 군사가 참(斬)한 여진족의 귀를 잘라 공식적인 외교경로로 명나라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자광은 서울에 돌아오면서 명나라에 보낼 전리품인 여진족의 귀를 담은 궤짝을 가져왔다. 조정은 이 궤짝을 외교문서와 함께 명나라 조정에 보내 명나라와 공동전선을 편 조선군이 전공을 세웠음을 증거로 보여주었다. 명나라 헌종은 여진족 소탕에 공을 세운 조선의 장군들에게 은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병조정랑이 된 그해 12월에 유자광은 남원에서 모친이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았다.

갑사에서 겸사복으로, 겸사복에서 파적위와 팽배수를 지휘하는 장군으로, 그리고 병조정랑에 이르기까지 전례가 없는 출세를 하며 인생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순간에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얼자인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상처받고 좌절하는 것을 눈물로 지켜보던 분이었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효도는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풍수지탄은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을 하려고 하지만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유자광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고 삼년상을 치르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유자광은 붓을 들어 임금에게 사직상소를 올렸다.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오른 자리라고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그토록 반대하였던 조정의 신하들 면전에 병조정랑 벼슬을 보란 듯이 내던지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통쾌하였다.

‘나에게는 너희들이 그렇게 중히 여기는 벼슬보다 사람의 도리가 먼저다, 이놈들아!’


유자광의 사직상소를 읽은 세조는 병조정랑 자리로 빚어진 대간들의 끈질긴 반대가 새삼 상기되었다. 세조는 유자광의 사직을 허락하지 않고 자리를 비워두겠다고 했다.

유자광은 임금의 믿음과 배려에 감사하며 상소를 다시 올렸다.

"병조정랑은 중요한 자리이니 하루라도 비워둘 수 없다고 생각되옵니다. 더구나 어미의 병이 위독하여 세상을 뜰 것 같으니, 이번에 남원에 가면 3년 시묘(侍墓)를 한 뒤에나 돌아올 것 같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세조는 유자광이 벼슬에 연연하지 않음을 좋게 여겼다. 세조는 유자광이 아픈 어미에게 빨리 갈 수 있도록 좋은 말을 내려주고 어미를 위해 어의가 조제한 약을 내려주어 가지고 가게 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들은 유자광이 어미가 병이 들어 병조정랑 자리를 내던지고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천출이라고 모두 행실이 용렬하고 천박한 것만은 아니네, 그려. 자식의 도리가 벼슬보다 중요한 것도 알고......”

"사람의 도리를 아는 것을 보니, 비록 얼자라도 명문가의 피가 흘러서 그런가 보네.”

사간(司諫) 박안성도 유자광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계집종 출신의 어미가, 그것도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닌데, 병조정랑 자리를 지푸라기 대하듯이 툭툭 털어버릴 수 있다는 건가.’


세자가 부왕(父王)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려 내전에 들렸다. 세조가 세자를 보니, 아직 덜 여문 나이인 18세임에도 나라를 이끌 강단이 엿보였다. 임금은 유자광을 떠나보낸 후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던 터라, 세자에게 당부했다.

"인재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쓰기도 어렵다. 명심할 것은 출신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자는 부왕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이 되었다.

"유자광을 일컫는 말씀이시군요.”

임금은 세자를 듬직하게 느끼며 말했다.

"유자광은 뛰어난 인재이니 출신을 따지지 말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대사헌 유자환은 나를 위해 충성을 하였고, 동생 자광은 대를 이어 너를 위해 충성을 할 재목이다.”

세자는 부왕의 말을 새겨들었다.


유자광의 모친 최씨는 북방의 전쟁터로 향한다고 남원을 떠난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하고 당당히 돌아온 모습을 보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유규도 신분의 제약을 넘어선 아들의 성취에 대견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병이 들어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던 모친이 아들을 마주하니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임금이 내려주신 귀한 약을 먹고 기적처럼 몸이 좋아졌다. 유자광은 어머니의 놀라운 회복을 크게 기뻐하며 한성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유규는 유자광이 남원을 떠나기 전날 따로 불렀다.

"아들아, 너의 성취가 대견하다. 네가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이 천지같이 끝이 없으니, 마땅히 충절을 다해야 할 것이다.”

유자광은 부친이 자신을 ‘자광아'로 부르지 않고, ‘아들아’ 하고 불러줌에 감격하였다. 부친은 늘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으나 아들이라고 불러준 것은 처음이었다.

유규는 아들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하지만’ 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의 성취는 이미 사방에 적을 만들었을 것이다. 군자는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만, 소인배일수록 너를 배척하려고 할 것이다.”

유규는 아들이 그동안 조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을지 눈에 본 듯 환하여, 한숨을 쉬었다.

"네가 조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을지, 또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눈에 선하다. 너의 운명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참고 이겨내어야 한다. 공자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나를 높이면 자신은 낮아지고, 남을 높이면 스스로가 높아진다.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늘 겸손해야 한다.”

유자광은 아버지의 당부에,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목이 메었다. 유자광은 부친에게 큰 절을 올리며 하직 인사를 드렸다.


얼자 출신 유자광의 금의환향과 임금의 총애는 남원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유자광이 어미가 위독하다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야 한다고 하니, 나라님이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고 말렸다고 하더군.”

"그 귀한 벼슬을 내팽개치고 아픈 어미를 보러 왔다니 하늘이 내린 효자야!”

"임금이 빨리 다녀오라고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를 내려주고, 임금님만 치료하는 의원을 시켜 특효약을 만들어서 내려주었대. 궁궐의 신통한 약이 어미를 살린 것이야.”

유자광이 다녀간 후 남원 사람들은 유자광의 어미가 몸종이었다고 비웃는 말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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