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에 적힌, 싱거운 전설에 관하여

산문

by 희원이

[목차: 황반변성의 별빛]

1부. 노동: 구조적 불평등

(생략)

2부. 결핍: 삶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고

(생략)

3부. 몽상: 잠깐 넌지시 엿보다가

♬ 낡은 책에 적힌, 싱거운 전설에 관하여

♬ 없어진다는 것

♬ 아무것도 아닌 채로 고독사 하여도

♬ 꿈속의 그대들이 보고 싶으나 모든 게 낯설었다

♬ 통제할 수 없는 꿈들을 부단히 품었던

♬ 너의 점프는 우리의 희망이 되고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만화적 산문입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IMG_2506.PNG 3부. 몽상: 잠깐 넌지시 엿보다가


잠- 잠하던 그가 오랜 만에

깐- 족거렸다.


넌- 대체 머리가 있는 거냐며, 그걸 꼭 경험해봐야 아는 거냐며

지- 겹도록 놀려댈 때 써먹던

시- 시콜콜한 레퍼토리를 풀어놓았다.


엿- 먹으라고!

보- 란 듯이 반박해보고 싶지만,

다- 지난 싸움에는 흥이 나질 않았다.

가- 엾게도 여전히 노을 저무는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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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책에 적힌, 싱거운 전설에 관하여


남자는 언젠가 도서관에서 빌린 민담집 같은 것에서 출처 모를 전설 하나를 인상깊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텔레비전조차 없는 집에서 쓸쓸히 시간을 죽이려면 역시 책이 필요했고 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죠. 그런 시절에는 괴담이든, 설화든, 전설이든 개의치 않고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기도 하였는데, 그런 정보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정보도 이상한 마력으로 들러붙어서 얼어버릴 때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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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을 파고들어 견고한 성벽을 세우고는 도무지 잊히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이야기는 기이한 권위를 띠게 됩니다. 별 이야기가 아님에도 말이죠. 정말이지 딱히 신비롭지도 않은 그저 아이디어 파편에 불과한 발상이었을 뿐인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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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하늘에 띤 별빛이 사람들의 영혼이라는 식의 이야기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영혼이 촛불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 순간에는 밤하늘에 피는 별빛이 신의 촛불이라는 발상이 제법 시적이라고 느꼈을 뿐입니다. 끝간데없이 어두운 우주 공간에서 쓸쓸한 진공의 공포를 밝히면서도 기이한 낭만성의 근원인 별빛이 신의 촛불이라는 건 어쩐지 그래도 괜찮을 듯하였습니다.

그 별빛을 지상의 공간에 옮겨놓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일 뿐이었죠. 책에 담긴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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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솟은 나무가 어느 순간 공기의 흐름을 밀어내며 원래의 높이와는 상관없이 신의 촛불에 닿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면, 그 순간 나무의 위로 오르든, 나무를 베어내든 나무의 꼭대기에 붙은 불씨를 잡아채서는, 원하는 공간으로 들어가 불씨를 모시라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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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이 없었던 곳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그곳이 만일 당신의 보금자리라면 그 효력은 더욱 강해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불씨를 보관하여 키우고는 그리운 자를 생각하면, 그 자가 그곳으로 며칠 안에 찾아온다는 것이었죠. 산 사람으로 오든 영혼으로 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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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오랜 만에 북적이는 인기척으로 가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홀로 산책을 하였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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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따라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의 숲을 보며, 나무 베는 상상을 하였다고는 했죠. 하늘에서 촛불이 옮겨붙는 상상은 그다지 즐겁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조금은 간절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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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들과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인 없는 신발이 여전히 주인 없는 채로 있었고,

부재한 사람들의 사진이 걸린 방에서 밤늦게 잠들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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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촛불을 두고 산책길을 걷는 꿈을 꾸었다고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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