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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07. 2024

반달, 꽃에 닿았다 #5-1

그림 소설: 빌드업 & 콜라주


♬ 을의 미소와 말

꽃잎의 향기 같다는 ‘을’의 미소를 지었다. 낮에는 열심히 일했다. 아침부터 지루하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눈이 자주 충혈 됐다.

삶은 견디는 거라며 은밀하게 가라앉은 감정의 찌꺼기를 모른 척하다, 어느 날 문득 꽃가루 알레르기처럼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올라왔다. 그립다는 감정을 여태껏 의지로 잠재울 수 있었다고 말하던 때에도, 언제든 복병처럼 도사리는 감정의 기복을 온전히 통제할 순 없었다.


“에이취!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웃고 있는 게 아니랍니다. 누가 봐도 웃고 있는 거 같지는 않다고요?”






에이취

에이취


재채기를 하기 시작하면 한 번에 끝나는 일은 드물었다. 콧물이 흐르면 휴지로 닦았다. 온 몸을 들썩이며 다시 재채기를 하면서, 주위 눈치를 보았다. 앗수르의 맹렬한 대군처럼 내 몸에서 빠져나갔으며, 연이어 다리우스 황제의 정복군처럼 가슴을 치는 그 무언가로 잠시 얼얼했다. 유별나지 않은 마음과 달리 몸이 유별남을 들킨 것 같은 기분으로 부끄러워졌다. 피동형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재빨리 훔쳤다.






사장님께서는 낭만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런 추억은 하품 나올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어째서 연애를 안 하냐는데, 엄마에게도 듣지 않는 잔소리를 사장에게 듣는다. 그렇다고 그걸 온전히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랬다가는 파국의 래디컬한 신념으로 낙인 찍힐 게 뻔했다.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고립을 감당하였다.

억지로 말을 짜내기보다는 눌변인 것이 나았다. 린스로 윤기를 낸 머리처럼 감각이 좋은 말로 벼린 정서적인 표현을 잘 선택한 덕분에, 하여튼 완벽한 균형감 지닌 말을 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애초에 자신이 없다면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 편이 때때로 타인에게도 은혜롭다. 괜히 기탄없이 말하려다가 실수로 억 소리 날 비밀을 누설할 염려도 적다. 말실수를 한 것인지 계속적으로 복기해보는 부담도 덜하다. 실수를 하고 나면 찜찜했다.






엇! 뭐여 이거?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반응에 대해 남자들은 당황했다.


울 애기보다 못한 담력을 가지고 이때는 어찌 당당하게 사내임을 드러내던지 지루한 자들은 원래 목소리라도 크게 내려는 법이다. 만사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기 덩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여자의 별명은 ‘엇 나가면 안 된다’였다. 정확히 하자면 그녀의 별명은 ‘엇’이었던 셈이다. 엇나감이 생기면 마을에 나쁜 일이 생긴다는 농담이었으므로, 여전히 여자를 농담으로 기억하였지만, 농담이 아니기도 했다. 겨자를 입에 문 것처럼 쉽사리 눈물이 잔뜩 고이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들판을 누비던 은색 갈기 휘날리는 백마가 꽃밭을 지날 때 을지문덕 같은 소녀가 힘차게 날아올라 ‘이빠이’ 우렁차게

‘으리야앗!’

이라며 말에게 ‘을이야’라고 주지시켜 주었다.






어쩌면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러자 말은, 여자는 기막히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였고, 햇살이 느껴졌다. 그렇다. 그런 순간을 상상한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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