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Part2 (53~60F)
글쓰기 외전: 스타일 Part2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27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53~60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창작 노트: 대화로 하지 않고 인터뷰 영상 구어체로 하는 이유
대화로 하지 않고 인터뷰 영상을 나누는 방식을 주로 택하는 이유를 들자면, 일단 서로가 교감하고 충돌하는 장면을 없애기 위한 것. 거기서 생기는 정서적 반응을 생략함으로써 피드백 과정을 단순화하려는 것으로, 무엇보다 둘이 말하는 게 많아질 경우 어떤 논의와 이야기의 방향성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데 이를 최소화하는 역할도 한다.
쏠리지 않고 균형감을 잡으려면 그 충돌과 교감 과정을 되짚고 정돈하는 과정이 필요해질 경우가 많은데, 그럴수록 복잡해진다. 그걸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할 때만 둘을 교감하게 하는 중재자의 설정이 있어야 하는데, 다큐멘터리 인터뷰 스타일이 그랬다. 물론 둘이 같은 프레임에 넣기도 하지만서도. 드물다.
“다큐 인터뷰로 상상하니, 하나의 삼행시 콜라주 형식 내에서 인문적이든 소설적이든 다 이질감이 없긴 하네. 다큐가 복이네. 다, Q!”
“심지어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는데, 웃겼으면 하는 지나친 바람이 있죠.”
“정말로 지나친 바람이로군요. 그럼에도 아멘.”
◑ 창작 노트: 번호글 형식의 구어체로 세상을 인식하기 (2022년 기준)
번호글은 구어체로 풀어내는 여러 상상이 이야기든 논리적 방식이든 잡담처럼 섞이면서 여러 입장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적절할 듯하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주장을 하기보다는 주장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걸 선호하는데 그런 방식에 최적인 듯하다. 삼행시나 놀이글과는 다른 걸 드러내기 좋을 듯하다.
현재로선 번호글의 경우 ‘가상다큐 인터뷰 동영상 미편집본’ 형식으로만 고정하려고 한다. 에세이든 소설 문체든 모두 가능하겠지만서도, 심지어 교양서 문체도 가능하겠지만서도, 되도록 하나로 스테레오타입을 잡아 보자는 목적으로, 메타적이고 구어체적인 인터뷰 미편집본 방식으로만 고집해보려고 한다. 말에서는 평론적, 잡담적, 산문적 요소들이 좀 자연스럽게 섞인다.
말은 하나의 인물 안으로 모든 배경과 사건이 흡수된 뒤 발화되는 방식이라서, 후일담이나 말하기 형식이 지닌 한계로도 언급될 수 있는데, 즉 소설이 작가의 권한에 따라 현재 진행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설정할 수 있지만, 인터뷰로 말을 한다면 이미 종료된 사건에 대한 코멘트일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부정확한 진실을 미화하거나 주관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첫 번째 방식이고 한계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행위이다.
즉 소설 등에서 상황을 절제하여 보여주거나 작가의 전지적 시점으로 진술할 때는 객관적이기 어렵더라도 객관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 합의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마련인데, 이건 주체에서 우주로 나아가서 전체를 목도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어렵더라도 작가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객관적 상황을 연출하여 하나의 세계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반면 인터뷰하는 발화자로 모든 순간이 흡수된 뒤에 말할 때는 그 발화자의 수준을 알아야 하고, 그 진위 여부를 끊임없이 염두에 두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분명히 인지한다면 우리가 부정확한 주관에 입각한 진술을 하고 있음을 합의하고 ‘그럼에도 말하여질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시민으로서의 한계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정보수용자이며,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개인으로서의 한계인 셈이다. 그래서 사실을 정확하게 체크하려 한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판단하려 하고, 거대한 불순물을 숨 쉬듯 뱉어 내면서도, 우리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인지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그저 세상을 내 안으로 들여놓고, 나의 부정확성과 대치하며 내 안에서 싸운다. 나는 세상에 대해 끝내 온전히 말할 수 없지만,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쯤은 있다고 조심스럽게 읊조린다. 여러 가능성에 관하여.
번호글 쓰면서 느끼는 건데, 주장의 배치나 아이디어 추출 방식, 분량 면에서 그 작법이 복잡하다면, 과연 시민적 글쓰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구어체는 그렇다 해도, 이런 번호글 형식을 따라하기 쉬울까?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냥, 내 글 쓰는 것에서는 최적화할 수 있으니, 일단 그것에 집중하자. 시민의 참여를 말하기 전에 나의 개성부터 확립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사실 그조차 쉽지 않다. 내가 바로 서면 자연스럽게 남들에게도 눈에 띌 것이다.
그나저나 창작 면에서 쉬운 거로는 삼행시와 놀이글 형식이 최적화되었다.
“‘모큐멘터리 인터뷰 동영상 미편집본’이라는 형식은 구어체이고, 그건 곧 발화자가 현재 시점에 있을 때 사건을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서사를 진행하는 데에 제한적인 면이 있어요. 미래를 논한다면 음모론이나 몽상을 말하는 것일 테고, 과거를 언급한다면 후일담으로 비칠 수도 있어요. 또 그 발화자들이 지적 수준을 담보하는 전문가만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그 발화의 수준과 한계를 감안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죠. 마치 1인칭 화자의 발언은 세계를 제한적으로 해석하여 보이는 것이듯이요.
저는 인터뷰이가 아마추어 또는 딜레탕트, 오타쿠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형식이 드러나기 좋은 현재 시점을 유지하는 것도 검토했어요. 그러면서 메이킹 필름 혹은 창작 구상 노트의 형식으로 흘러가되, 뉴스픽션 등으로 콜라주를 검토했고요. 메타픽션적이라고 해야겠죠? 메타에세이적이거나요.
이런 형식으로는 역사물이나 SF를 온전하게 설정하기는 어려워요. 어떤 식으로든 현재로 끌고 와야 하죠. 발화자가 발화하는 시간으로요. 직접 과거에서 발언하는 것이나 미래에서 발언하는 경우라면 다큐에서 재연하는 설정에서나 가능하겠죠. 실제로는 미래의 인물이나 과거의 인물이 되어서 발화할 수 없는 것이죠. 특히 미래의 사건과 그것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사후에 진술하는 설정이라면 미래 시점으로 두고 찍을 수가 없기에 애초에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모큐멘터리로만 성립을 하죠. 발화자의 현재 시점으로 모든 게 모인 다음에야 비로소 발화되니까요.
그래서 미래 시점의 이야기를 쓸 때는 그때를 배경으로 다큐를 찍거나 비슷한 어떤 형식을 다룬다고 가정해야 하죠. 좀 번거로워지는 부분이죠. (웃음) 쉽게 쓰려고 했는데 말이죠.”
“그런 설정을 굳이 해주어야만 목격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죠. 안 그러고 현재에 발화자가 미래의 이야기를 마치 일어난 것처럼 확정하고 말한다면 이건 그냥 몽상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것을 찍는 다큐란 사실 예언자의 다큐나 음모론 정도밖에 없죠. 심지어 음모론 다큐 역시 매우 그럴싸한 근거를 과거에서 찾아서 들고 예측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거치잖아요. 과거로부터 추출한 미미한 단서지만요.
그것에 좀 더 현실성을 부여하려면 결국 발화자의 발화 시점이 최대한 사건과 가깝고 가급적 사건 발생 이후여야 하죠. 그리고 인터뷰 발화 시점 자체가 가장 나중에 일어나는 일이고요. 그게 다큐 형식이 현재의 시간에서만 원활하게 작동되는 이유죠.
그러고 나니 사건 발생 후의 보도 형식인 뉴스, 조금 더 확장해서 미래의 뉴스라는 점에서 허구인 뉴스픽션도 함께 떠오르긴 했어요. 그것과 맞물려서 뭔가를 도모해볼까 하다가 그 지점에서는 무기한 뒤로 밀렸죠. 바빴거든요. (웃음) 솔직히 번호글 자체에 약간의 의문을 품기도 했고요. 그러니 거기서 맞물려 나오는 형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시들해졌죠.
사실 뉴스픽션은 그냥 일반적인 NIE나 픽션 신문 제작하기 등의 학교 과제를 달리 표현한 것이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 뉴스픽션만으로 구성된 신문 형식의 단행본을 만들고 그 뉴스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당시의 풍경을 알게 되고, 또 세태뿐 아니라 주요 사건과 그 인물을 감지하게 되는 방식을 잠깐, 아주 잠깐 고민했어요. 번호글로 다큐적인 이야기를 메인으로 세우고, 뉴스픽션으로 받쳐주는 구성인 것이죠. 삼행시 대신에요.
뉴스픽션 콜라주로 불러 볼게요. 정말로 바텀업 방식으로 뉴스픽션을 창작하고 거기서 메인 테마를 번호글로 뽑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톱다운으로 먼저 번호글을 만들고 더 깊이 말할 수 없는 배경 설정을 뉴스픽션으로 받쳐주는 방식일 수도 있고요. 어쩐지 삼행시보다 결도 잘 맞고, 톱다운 이후에 뽑아내도 배경을 강화해 주는 역할을 하니 장식적이지도 않을 듯했어요. 그러나 삼행시를 놓아두고 처음부터 다 작성해야 한다는 당장의 번거로움이 있었죠. (웃음)”
“여하튼 뉴스픽션의 지점은 본격적인 실천이 없이 구상으로만 스케치를 한 것이죠. (웃음) 종종 전혀 다른 맥락에서 변죽처럼 울리던 아이디어가 나중에 이런 식으로 흘러 들어와서는 조합의 가능성을 검토할 만한 덩치로 커져 있기는 하죠. 대개 그런 경우엔 가벼운 구상 차원에 머물고 말지만요.”
“사실 구어체 자체도 낭독극 대본의 유튜브 활용을 고민하면서 시작된 것이죠. 뉴스픽션은 구상에 그쳤지만, 구어체의 경우엔 낭독극 대본 창작이 좌초된 뒤에, 결국 번호글로 다시 호출되었고요. 서랍에서 잠자던 아이디어는 계속 잠자다가 사장될 수도 있겠지만, 다시 깨어날 수도 있어요. 낭독극 대본 때문에 필연적으로 따라붙은 구어체 설정이 대표적인 사례죠.
사실 놀이글에서도 구어체로 경어체 등을 주로 활용했기 때문에 거기부터 구어체를 끌어왔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조금 더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구어체를 확장하여 활용한다는 점에서 낭독극 대본이 적절한 선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낭독극의 구어체는 번호글 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놀이글 문체에 관해 조금 더 말해 보자면, 놀이글은 이상하게 자꾸만 ‘~습니다’ 체로 굳어져서, 이 장르의 글만 쓰면 나도 모르게 ‘~습니다’ 하고 있었어요. 특별히 그렇게 써야 하는 것은 아닌데, 상호 반응을 가상으로 설정하다 보니 마치 상대에게 말을 걸듯이 서간체라고도 할 수 있을 그런 말투를 쓰고 있었죠. 그게 굳어 버리니 나중에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경어체든 반말이든 구어체를 활용할 때가 많았죠. 간혹 내면으로 침잠하는 일기 형태로 놀이글을 쓸 때나 간헐적으로 평서형 문어체 문장을 사용했고요. 아무래도 내향으로 닫히는 느낌은 ‘~다’라고 쓸 때 강해지니까요. 그러다 낭독극 대본에서는 필연적으로 유튜브 낭독을 구상하며 ‘~습니다’란 경어체이자 구어체를 썼죠.”
“번호글(박스글)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가장 많이 활용해보고 싶은 게 낭독극적인 요소였어요. 처음에는 대화체, 독백체 등등을 생각했죠. 낭독극보다는 인물끼리의 상호 반응을 제한하면서요. 조금 더 각 인물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말을 중심으로 하면, 에피소드가 말 속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어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진술하는 식이 되죠. 제한된 시선끼리 충돌하고 서로의 지적 수준까지 고려하면 어디에 손을 들어줄지 모르게 되는 상황도 발생해요. 독자도 인물의 신뢰도를 살피며 판단을 유보하면서 좀 느슨한 여백이 생기는 거죠, 그런 특성 덕분에 삼행시편이 숨쉴 공간이 생길 것 같았어요. 반면 게으르게 다루면 그냥 콩트의 줄거리를 말로 풀어가는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