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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Nov 09. 2024

삼촌: 실제로는 삼촌을 지칭하지 않는 포괄적인 호칭

에세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삼촌이란 호칭은 무난하다. 아이들의 입에는 잘 안 붙는 어려운 발음인 것 같은데, 그래서 ‘탐턴’이라고 하던데, 어른들에게 삼촌은 여러 이해관계를 뭉뚱그려서 대충 모호하게 적당히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 중 하나다. 물론 이때 대개는 진짜 삼촌은 아니다. 이른바 삼촌들이란 다들 아버지라 부르기엔 애매하고, 애인이라 하기엔 나이가 많으며, 그냥 아저씨라 하기엔 왠지 모르게 정감 없는 나이대의 남자들이었다. ‘삼촌’이라는 단어 속엔 가깝지만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진짜 삼촌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삼촌이라 부를 수 있었다. 

이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혈연적인 의미의 이모라기보다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어머니라 하기엔 너무 남처럼 느껴지고, 그냥 ‘아줌마’라 하기엔 무례할 것 같은 여성들에게 붙일 수 있는 포괄적인 호칭이었다. 보통 여사장님에게 이모라 부르는 것이 당연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남자 사장님에게는 ‘삼촌’이라 부는 것 같지는 않다. 또 여사장님뿐 아니라 나이 있는 여종업원까지 포괄적으로 이모라 부르는데, 남자 종업원에게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남자 종업원은 젊은 사람이 많아서 그럴까? 이럴 때는 ‘저기요’라고 한다. 그냥 잠시 말이 샜다.      


어쨌든 이모나 삼촌이라는 단어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떠올리기보다는 그냥 편안하게 다가가기에 딱 맞았다. 따뜻함을 주는 듯하면서도 간섭받지 않는 적당한 선을 지켜주는 호칭이랄까.

교회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앙적으로는 영혼의 형제자매라지만, 때로는 적당한 호칭이 없거나 단순히 서로를 존중하고자 할 때도 쓸 수 있는 호칭이다. 엄격한 규율보다는 포근한 친밀감이 우선되는 교회 문화에서 이런 포괄적인 호칭들은 많은 관계를 포용하는 용도로 자리잡았다.

생각해보면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흔히 ‘선생님,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남발한다. 가게에서 손님을 부를 때 이름을 모르면 간단하게 손님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뭔가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이라고 높여 부르곤 한다. 더 나아가 상점에서는 손님이 중년 남성인 경우에 ‘사장님’이라 부르며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사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인 셈이다.    

  

그런데 ‘교수님’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범위가 너무 명확히 설정된 단어여서인지, 특정 계층만을 타깃으로 하는 느낌이라 그럴까? 반면 사장님은 어떤 직업, 신분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통용되기 때문에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형씨’처럼 다소 껄렁해 보이는 호칭도 있는데, 이는 아무에게나 포괄적으로 사용하기엔 자칫 무례하게 들릴 수 있어서 사용에 제한이 있다. 특히 어린 친구들에게 ‘형씨’라 부르면 왠지 거칠어 보이고, 거리감을 더 넓히는 호칭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나이 적절한 사람에게 부르더라도 시비가 붙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호칭을 부르는 사람 팔뚝에 용문신이라도 있다면, 시비 붙을 확률이 낮아지기는 한다. 이래저래 불편한 상황과 맞물릴 가능성이 높다. 그나저나 ‘어이, 아우씨’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형씨’라며 반어적으로 상대를 기 죽이려는 것인가?    

 

어쨌든 결국, 삼촌이나 이모라는 단어 정도가 묘한 애매함 속에서 우리 사이의 거리를 적당히 가늠하게 해주는 호칭인 듯하다. 큰 의미를 담지 않고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호칭. 친숙하면서도 무게감을 주지 않는 호칭. 그렇게 삼촌, 이모란 호칭은 우리 삶에서 일종의 편리한 완충지대 같은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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