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락커'라는 단어는 어딘가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끝말잇기의 결과로 뽑힌 단어라서 그런지, 어색함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락커'를 떠올리자마자, 머릿속엔 자연스레 록 음악을 하는 사람, 즉 '록커'가 떠오른다. 무언가 강렬하고도 독특한 이미지의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온 셈이다. 하지만 잠깐, 맞춤법이 틀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락커’보다는 ‘록커’가 맞는 듯하다. 사실 '하드락'보다는 '하드록'이, '락'보다는 '록'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맞춤법에 맞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문득 얼마 전, '팔로워'의 표준 외래어 표기가 '폴로어'라는 걸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이 떠오른다. 폴로어라니. 뉴스에서조차 잘 쓰지 않는 이 표기가 마치 '락커'와 '록커' 사이에서 맞춤법을 따질 때의 기분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행히도 '록커'는 그 정도 충격을 주지는 않는다. '락커'라고 해도, '하드락'이라고 해도 그리 큰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위안이랄까. 다만 발음과 표기 사이에서 느껴지는 작은 간극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본다. 혹시 이 '락커'가 음악인이어야만 할까? 아니면 더 직관적으로는 철제 '락커(locker)'일까? 락커는 단어의 첫인상부터 다의적이어서, 음악인이 아니라 잠시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그저 물건을 담아두는 공간일 수도 있다. 그 락커는 단순히 물건을 넣어두는 철제 공간일 수도 있다. 작고 튼튼한 철제 락커, 한정된 공간 안에 딱히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떠도는 사람의 소지품을 담아내는 방식.
이러한 락커는 단순한 짐 보관함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작은 물건 하나하나가 그 안에 들어가면, 그곳이 곧 그 사람의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방인들, 애매한 존재감을 띠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락커일지도 모르겠다. 좁은 공간 안에 머무르지만 어디에도 확고히 속하지 않는 모습. 그게 바로 락커의 본질일 수도 있다. 이럴 때면 '락커'는 물건을 쓸데없이 많이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락커 속에 담겨 있는 소지품들은 각자의 생활과 취향을 묻어나게 하고, 락커 그 자체가 누군가의 일상이나 속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동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꼭 필요한 물품을 넣어두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표준 발음의 문제를 넘어서, '락커'라는 단어가 누구를, 무엇을 지칭하느냐 하는 것으로 이동한다.
한편, 이 락커라는 단어가 락카, 즉 스프레이 페인트로도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철없던 아이들이 벽에다 '삼촌들 물러가라'고 락카로 낙서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 보니 락카(페인트)라는 단어는 뭔가를 숨기거나, 감추거나, 아니면 꾸미는 도구이기도 하다. 벽에 락카를 칠하듯이, 인물들의 단면을 나타내는 작은 요소로 락카가 사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록커, 락커, 그리고 락카.’
그 발음과 의미는 점점 넓어지고, 그 안에 담긴 이미지와 감정의 결도 점점 복잡해진다. 결국 이 단어는 어디에나 쓸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단어의 쓰임새가 명확히 구별지을 수 있기에, 처음부터 초점을 명확히 맞춘다면 다의어 중 하나를 통하여 단어가 의미하는 바로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락커’를 택하여 삼촌들의 물품을 상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