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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29. 2024

흐린 날이 좋아...

아침에 안개가 끼면 기분이 좋다. 왠지 일찍 일어난 느낌도 들고, 좀 더 상쾌한 것 같기도 하고. 

이번주는 특별히 너무 바쁜 건 아닌데도 긴 한 주를 보낸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새로운 마음을 먹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우리 집 똥개와 함께 좀 더 오래 걷고, 아침의 짧은 명상을 했다. 

딱히 내방이 따로 있는 것도 서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귀에 이어 버드를 끼고 빗소리 유튜브를 들으며 아침 명상을 해봤는데, 반쯤 자는 것 같은 상태이기도 몽롱한 상태이기도 한데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는 내가 알던 친구, 오래된 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니 연령대가 나와 비슷했는데, 여기서 만나서 어울리게 되는 사람들은 나보다 최소 열 살 이상은 어린 친구들이다. 내가 일하는 곳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십 대이고, 수의사들조차 그중 제일 나이 많은 친구가 열 살쯤 어리다. 

어제는 내가 파트타임으로 있는 병원의 수의사와 오래간만에 저녁데이트를 했는데, 그 친구는 아마도 스무 살쯤은 더 어린 친구인 것 같다. 그래도 같이 병원 얘기와 사람 사는 얘기를 하다 보면, 어려서 얘기가 안된다 등의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랜 연애를 끝내고 최근에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는데도 가끔은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어 감사할 따름이기도 하다. 


가끔 드는 의문은 왜 부족한 내 영어로도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완벽한 나의 한국어로도 도무지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사람들 간의 대화는 말 그대로 주고받는 말인데, 가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외로운 사람들이어서 누군가에게 자신을 털어놓아야만 살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외로움과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대화 상대방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을 달래기 위해 남은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다 보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그들은 그들이 정말 원하는 인간관계에서 점점 더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만 하는 친구들이 살면서 한 명쯤은 생기곤 한다. 얼마간은 친구라는 우정의 틀로 버텨보려 하지만, 누군가의 감정의 배설구가 되는 일을 오랜 기간 좋아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걸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 한다는 걸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만화로 읽는 인문학'전집을 몇 년 전에 샀는데, 이제 점점 영어가 편한 큰딸은 읽을 생각을 안 하고, 영어밖에 모르는 둘째는 당연히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런 책들이 이제 내가 들고 읽기 시작했다. 

주식을 잘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만큼, 인간을 이해하는 정도로 어쩌면 실제 생활의 경제적인 부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는 동물을 치료하지만, 그들을 케어하는 인간을 이해하고 소통하지 못하면 나의 환자에  중요한 치료를 받게 할 수가 없다. 웃기지만 아픈 건 동물이지만, 그 상황을 이해시키고 진행하는 건 인간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형견이 많고, 노령의 대형견의 소형견종보다 대체로 관절염의 진행속도와 통증 정도가 심하다. 

그런 관절염에 대한 대화를 보호자와 하다 보면, 자신이 관절염이 있는 보호자들은 그것이 어는 정도의 통증인지 쉽게 이해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반려견의 상태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동물들의 통증에 대한 표현은 말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소한 걸음걸이의 차이, 자고 일어날 때의 자세, 이유 없는 헐떡거림(panting) 같은 미묘한 변화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결국 삶의 질을 결정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그런 이해는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내가 겪는 삶의 범위에서밖에 알 수 없다. 


어제 만난 수의사도 내게 사람들이 더 치료에 호응을 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갖고 있는지 묻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보호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만큼 내가 내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게 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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