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세계에서 만난 말
이거 말랑말랑해, 좀 먹을래?
오랜만에 만난 쌍둥이 누나들에게 조카가 도넛을 건네며 하는 말에 가족들이 모두 웃어버렸다. 늦게 말이 트인 조카의 말이 반갑기도 했지만, 아의 말에는 어른들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특유의 힘이 있다. 아이의 말은 어른들의 몽글몽글하게 해 준다. 그렇기에 아이의 말 한마디에 온 가족의 귀가 모이고 아이가 내뱉는 한마디가 가족의 어록이 된다.
아이의 말은 아이의 세계를 투명하게 반사해 낸다. 거친 세상과 척박한 환경을 마주하며 사는 어른들의 마음은 그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치유받는다.
아이들의 말은 솔직하고 투명하다. 그 솔직함은 좋으면 웃는 것이고 사랑하면 주고 싶은 것이다. 그 예쁜 마음이 고스란히 따라 나온다.
세상의 때가 묻어 있지 않고 계산 없이 사랑하며 의례 하는 형식적인 말도 인사치레도 없다. 말에 가시가 들어갈 이유도 없고, 오해도 의심도 없다. 악의도 없지만 선의도 없다. 어떤 의도가 들어가지 않은 마음 그대로의 말로 어른을 행복하게 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그 언어는 때로는 사랑스럽지만 때로는 심오하기까지 하다. 거짓이 없고, 덧붙여지는 말도 덜어내는 말도 없는 아이의 언어는 진실하고 깨끗하여 어른의 말을 거두어들인다. 아이의 세계가 만들어낸 언어는 듣는 사람의 마음의 지도를 바꾸어놓는다.
아이의 말이 듣기 좋은 건 단순히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 만들어낸 귀여움과 억양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세계로 회귀하면서 느끼는 이슬 같은 맑음 때문이다. 나도 알았던 세계, 나도 살았던 그 세계를 아이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면서 아직도 거기에 있는 그 투명한 세계를 아프게 조우하는 것이다.
크는 게 아깝다. 천천히 자라라.
조카가 이 세상을 살면서 잃게 될 그 순수의 세계가 아쉽다. 아이는 자라면서 조금씩 이 세계와 멀어지고 어른이 만들어놓은 세상으로 걸어오겠지. 아이의 세계를 지켜주지 못할 어른이 할 수 있는 말은 이루어지지 않을 빈 말뿐이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무슨 말을 하게 될까. 너의 세계를 너무 일찍 내려놓지 않기를. 너의 세계가 조금 더 단단하게 너를 붙잡아 주기를. 무력한 어른의 기원이 바람처럼 서성거린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미래가 자라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투명하고 순수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 아이들이 언어의 세계가 바뀌지 않고 유지되기를 바라기에는 세상이 너무 삭막해졌지만,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다부진 마음을 어른들이 갖기를 소망해 본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더 많은 신뢰와 사랑과 인간다움이 통용되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아이들의 순수함이 유치함으로 치부되지 않는 세상을 살 수 있기를 바람 해본다.
저기 봐봐, 해가 나오고 있어.
조카가 새벽같이 일어나 온 방을 다니며 가족들을 깨운다. 함박웃음을 내미는 조카의 얼굴이 가족들의 얼굴에 전염된다. 누구 하나 짜증이 없다. 아이가 펼친 세계에는 그런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해 같고 보름달 같은 아이의 세계에서 모두들 기분 좋게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