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좋지만

차마 비를 맞을 수는 없어서

by 아무

우산을 들고 빗소리를 들으며 걷습니다.

비는 나를 적시지 못합니다.

잔잔하게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좋지만

차마 비를 맞을 수는 없네요.


세게 내리는 않는 비는 오다 말다를 반복하고,

나는 우산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합니다.


비는 나를 적시려 하고

나는 계속 우산 속으로 피하지요.


비와 숨바꼭질을 하듯 길을 걸으며

이리 어긋나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한 마음이 다른 마음을 잔잔하게 두드릴 때가 있지요. 하지만 그 두드림에 설레면서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사정이 있기도 합니다.


타닥타닥, 우산에 부딪히는 여린 빗줄기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그 우산을 내려지기를 기대할 겁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어쩐지 쉽지가 않습니다.


비 한번 맞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냐만은,

비를 맞아 열이 나면 어쩌나요?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요?

내일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요?

병이 나아 간신히 문 밖으로 나왔는데

나를 적신 비는 오간데 없고 해만 쨍쨍 내리쬐면 어쩌나요?


우산을 받쳐든 사람의 마음도 타닥거리는 빗소리만큼이나

애가 탈지도 모르는 일이죠.


사랑에 충분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커다란 우산을 마음에 드리우고 살아갑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비가 그칠 것을 먼저 염려하죠.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에 설레면서도 비를 향해 가슴을 펴지 못합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마음은 상처받지 않는데 온 힘을 쓰기 마련입니다.

쉽게 우산을 내리지 못한 이들의 마음과 사정은 열리지 않는 견고한 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랑에 서툰 사람은 비를 싫어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성이 되어 버린 우산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는 것뿐입니다.

내리는 비에 손을 내밀었다가도 그새 비가 그칠까 두려워 손을 거둡니다.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모두가 사랑에 풍족하게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사랑의 허기가 무뎌진 채로 우산을 받치고 걷는 사람들, 안타까운 얼굴을 우산에 가린 채 오늘도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우산을 꼭 쥐고 걸어갑니다. 급할 것 없는 하루 중에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상처받지 않은 하루는 사랑하지 않은 하루로 남게 되겠죠. 옷깃으로 가슴을 여미는 건 쌀쌀해진 날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계절의 끝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타닥타닥, 비는 여전히 우산을 두드립니다.


하루가 저물어져 가는 시간에 오늘의 기록을 바꾸고 싶어 졌습니다.

손에 힘을 빼고 우산을 내립니다. 천천히, 빗속으로 발을 내디딥니다.


내일 열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더라도,

감기로 며칠을 앓더라도,

오늘은 같이 걷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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