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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커피 May 19. 2023

얄미운 학부모

나의 흐린 눈을 부추기는 당신

교사생활을 하다보면 아이들과의 관계도 힘들지만 학부모들과의 관계가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힘들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그리고 그 강도는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심해진다. 길지 않은 교직경력이지만 초임시절 때의 학부모들, 한 10여년 전의 학부모님들이 훨씬 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많이 싸운다. 그리고 화해한다. 그 화해가 평화롭게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힘의 균형이 깨진 관계로 인하여 화해의 과정이 어렵다면 교사나 부모가 개입하게 된다. 학교에서 맺어진 관계이므로 부모는 교사에게 관계 중재를 요청한다. 


자. 생각해보자.


두 아이가 싸웠다. 한 아이가 지속적으로 놀렸다고 한다. 그래서 놀림을 받던 아이가 등을 한대 때렸다.


누가 잘못한 것일까?


놀린 아이가 잘못한 거다. 


그렇지만 놀림을 받은 아이도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고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나의 교실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일단 놀린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임을 이야기해주고 사과하도록 지도한다. 그리고 놀림을 받은 아이도 다음에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친구를 때리는 해결방법이 아닌 다른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이야기해준다. 


특별한 경우 놀림의 수위가 너무 높아 교사의 개입이 더 많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초등에서 대부분 일어나는 놀림의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다. 


내가 이번달에 들은 '놀림'의 일들은,


선생님, 쟤가 저보고 받아쓰기 100점 못받았다고 놀려요.

선생님, 짝지가 지우개 없다고 놀려요.

선생님, 쟤가 저보고 바보래요.

선생님, 친구가 저보고 지각했다고 놀려요.

선생님, 저보고 못생겼대요.


상대가 기분 나쁜 말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소한 감정표현이나 사실표현도 상대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도해야 한다. 


상대방이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참으로 중요하다.


"내가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 나쁘다"라는 것을 확실히 전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과가 필요하다면 사과를 요구하고, 앞으로의 약속이 필요하다면 약속을 한다. 


교사가 아닌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그런 것도 말해줘?"

"그런 것도 알려줘야 해?"


라고 깜짝 놀란다.


맞다. 저런 사소한 부분도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얄미운 학부모들 중에서는 수화기 너머로 다다다다다다다 자기 말을 쏟아낸다. 어떤 말인가 하면~


우리 아이가 놀림을 당했는데, 왜 선생님은 상대방 아이를 크게 야단치지 않느냐는 것이다. 놀림을 당한 것은 우리 아이인데 우리 아이보고 되려 뭐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아이를 놀린 그 친구를 아주 야멸차고 표독스럽게 몰아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본인의 자녀가 놀린 아이가 되었을 때에도 동일한 선상에서 생각할까.


절대 아니다.


그래서 이런 학부모들은 정말 얄밉다.


자기 아이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실이라는 곳이 30여명의 학생들이 어우러져서 생활하는 작은 사회임을 망각한 채, 집에서 부모가 보듬어주듯이 생활하기를 바란다. 그 바람은 모든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의 아이에게만 해당된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엄격하다. 


다른 아이들의 잘못에는 한치의 용서도 없다.


어머니, 00이가 오늘 친구 책을 찢어버렸습니다.


우리 00이가 그럴리가 없어요. 분명 그 친구가 먼저 우리 00이에게 해코지를 했을 거예요. 제대로 알아보시고 다시 연락주세요.


이렇다. 이런 얄미운 학부모들의 반응이란.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데, 마을은 커녕 담임교사가 끼어들 자리도 없다. 교사와 학부모가 합심하여 학교와 가정에서 일관되게 노력해도 아이들을 바뀔까말까 한다. 그런데 이런 얄미운 학부모들의 반응을 보면 정말이지 노력하기 싫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아도 바르게 고쳐주고자하는 열정은 파스스 사라진다. 


흐린 눈을 하고 못본척 하고 싶어진다. 


이런 일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점점 흐린 눈을 하고 싶어하는, 또는 흐린 눈을 할 수 밖에 없는 선생님들이 늘어간다. 교사로서 가진 나의 총명한 눈은 애써 감추고 싶다. 


이 업보는 훗날 미래의 그 얄미운 학부모를 향해 엄청난 화살이 되어 날아갈 것이다. 


잘 기억하세요, 얄미운 학부모님.
그 화살은 당신이 열심히 갈고 닦은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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