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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커피 Feb 01. 2024

소통

민원전화에 대한 고찰

소통.


요즘 어디에서나 거론되는 화두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소통의 창구가 무한대로 늘어난 지금.


어떻게, 누구와 소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조직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교사가 학부모와 소통하는 방법.


어떻게 하는 것이 학교의 문화를 바람직하게 하는 것일까.


늘어난 소통의 창구를 무한정 받아들이기 이전에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개인휴대전화

-카카오톡

-클래스팅

-학교종이

-밴드

-하이클래스

-학교전화


정말 많다.


 학부모들은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 공개를 가장 원하는 듯하다.


일례로 몇년 전, 한 동료선생님이 휴대전화를 공개하지 않고 클래스팅과 학교전화로 학급을 운영하고자 안내한적이 있었다.


한 학부모가 휴대전화번호를 꾸준히 요구했다.



선생님, 왜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지 않나요?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핸드폰 번호를 공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가 지각하거나 결석할 때는 어디로 연락하죠?


클래스팅으로 알려주시면 됩니다.


아니, 일일이 앱으로 들어가야 한다고요? 그걸 어떻게 하죠?


학교전화로 알려주셔도 됩니다.


우리 아이가 정말 급한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아침에 갑자기 아프면 어쩌실 거죠?


아프면 병원에 가셔야지요.


아니, 선생님께서 아셔야 할 거 아니에요?


학교 전화로 알려주시면 됩니다. 학급 직통 번호이니 제가 바로 받습니다.


수업중이시면 못받으시잖아요? 혹시 자리라도 비우셔서 못받으시면 어쩌시려구요?


핸드폰은 수업중에 보지 않지만, 학급전화는 울립니다. 

그리고 제가 못받는 경우, 교무실로 하시면 됩니다.

못받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핸드폰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럼 우리 아이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어디로 연락해야 하죠?


어머니, 교통사고가 났을 때는 119에 연락하셔야 합니다.

저보다 119가 빠릅니다.


..........


이건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화다.


뭐, 이런 일례가 아니더라도


학부모들은 선생님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으면 뭔가 든든해지나보다.


개인 전화번호 공개를 하지 않기 위해서 선생님들도 많이 노력한다.


듀얼넘버를 사용하기도 하고

각종 학급운영서비스 앱을 사용해보기도 한다.


각종 학급운영서비스 앱을 사용하고자 할 때에는 

초기 설정을 셋팅하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일단 모든 학부모들을 우리 학급으로 가입시키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다.


협조가 잘 되는 해도 있지만

끝까지 앱을 깔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모든 소통방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시도때도없이 교사가 학부모의 연락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물론 사용시간을 설정하고 

그 시간 이외에는 안보면 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무책임한 담임 교사로 비춰지기 일쑤다.


근무시간 이외의 연락을 받지 않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용기와 배짱이 필요하다.


이 얼마나 소모적인 용기와 배짱인가.


학부모와 연락하는 것도 업무라는 것을

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학부모와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업무는 일단 피하고 본다.


비단 나뿐만 아닐 것이다.


학부모와 가장 민감함 문제로 맞딱뜨리는 학교폭력담당자들이

매년 저렇게 몸이 아파 나가는 것을 보면

교사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교사들의 본연의 업무는 수업이다.


교사들이 이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 외의 것들을 좀 걷어내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질좋은 수업이 이루어진다.


소통이라는 훌륭한 단어로 

교사들을 24시간 비상 대기조 만드는 이 구조는 꼭 바뀌어야 한다.


이건 소통이 아니다.


그저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욕받이로 소모되는 것 뿐이다.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존중이 있어야 한다. 


존중이 있기 위해서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너지는 공교육.


내가 교직을 시작하면서부터 들어온 말이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공교육은 아직 바로서지 못했고, 지금은 무너짐을 넘어서 다른 모습이 되어가는 공교육인 듯하다.


오늘자로 본 늘봄 소식과  특수교사 아동학대 판결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무너지는 공교육이 바로 설 때까지 이런 말도 안되는 소통을 계속 이어나갈 수는 없다.


해결해야할 급선무인 일들을 먼저 해결하면서 큰 문제도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나도 어떤 소통이 바람직한 소통인지 구체적인 방안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정책을 계획할 때에 반드시 현직 교사들의 의견이 잘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직 시험을 쳐서 장학사로 전직한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장의 기억이 없어지는 데에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들 하더라.


이런 현장감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정책들이 무슨 소용인가.


제발.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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