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은 줄 알았지?
다 잊은 줄 알았다.
그 아이가 내뱉던 무신경한 독설도
그 아이 엄마가 내뱉던 무시무시한 말들도.
급식 시간에 우연히 마주친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한숟가락도 뜨지 않는 내 식판을 비웠다.
일요일 오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간 브런치 카페에서
우연히 그 가족과 마주쳤고
우리 가족은 바로 식당을 나가야 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남편은 조용히 작년에 먹던 약을 꺼내 내 손에 쥐어줬다.
괜찮아.
라는 말과 함께.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직 내 몸은 그 시간, 그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그 아이와 엄마는 올해도 여전하다는 소식들이 들린다.
진지하게 휴직을 고려해본다.
학군에 거주하기에 이사도 생각해본다.
의원면직을 한 선생님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뒤적거려본다.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는 하는 걸까.
잘 이겨내 보리라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또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다.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선생님도 똑같은 말을 했다.
학교를 옮기고 다 잊은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별일 아닌 학부모의 민원 전화를 받고 퇴근길에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라버린 것이다.
하물며 그 선생님은 2년이 지났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상처가 아무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도 꼭 필요하다.
교사가 교육활동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도록,
절대적인 을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사를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좀 튼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