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임용 준비할 때 교과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생명이 어느 분류군에 속하는지 배웠다. 스펀지가 존재하는 생물이라는 사실,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설명을 듣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리너구리는 포유류이나 알을 낳는다고 하는데 자연은 항시 내 주변에 있었음에도 금시초문이었다.
길을 걷다 종종 예쁜 꽃을 발견하곤 했다. 사진으로 검색할 수 없던 시절엔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풀 이름이 뭐예요? 이 나무는요?’하고 물었을 때 단번에 대답하는 사람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구글이나 다음 꽃 검색이 유독 마음이 가는 AI인 이유기도 하다.
저자는 움벨트에(인간이 생물을 분류하는 선천적 능력) 대해 얘기하며 생명을 분류하는 방식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차근차근 서술한다. 현재는 유전적 계보를 척도로 삼는 분기학이 주류인 듯 보였다. 저자는 실험실에 박힌 채 DNA를 활용해 생명 분류에 힘쓰는 것도 좋으나, 본연의 능력인 움벨트도 존중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6살 때부터 2년 정도 리에 살았다. 읍, 면, 리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있는 리는 예상하는 것만큼 자연과 가까웠다. 리에 거주하는 14세 미만은 함께 어울려 놀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서로 챙기고 도와주며 사이좋게 지냈다.
나는 그때만큼은 물아일체였다. 다양한 놀이를 통해 배웠고 여러 식물과 동물을 관찰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식물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노루똥풀이다. 줄기를 꺾으면 노란 액체가 나왔는데 그 샛노란 물감 같은 게 어찌나 예쁘던지. 하나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낙엽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잘 마른 이 낙엽은 손으로 뜯으면 풀처럼 찐득한 액체가 묻어 나왔다. 찾아보려는 노력을 한 적도 없거니와 끈적한 낙엽만으로 어떤 식물인지도 찾기 어려울 테지만 누군가 알고 있다면 꼭 알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