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첫째 아이 학교에서 학급발표회가 열렸다.
발표회가 열리기 3주 전 알림장을 통해 교육과정 발표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하는 학급발표회였기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개인 발표 참가 종목으로 노래, 춤, 악기연주, 줄넘기, 태권도 등 다양한 예시를 들어주셨다.
아이에게 발표회 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오카리나를 연주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이미 같은 반 친구들과 단체로 연주할 곡을 매일 연습 중이었다. 1학기때는 오카리나 소리가 마음처럼 예쁘게 나지 않아서 속상해했었는데 아이가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연습한 것이 기특했다.
하지만 감기로 아이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학교도 결석하게 되고, 기침 때문에 새로운 곡 연습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자 <오카리나 연주>를 하겠다며 자신 있게 써둔 신청서를 들여다보던 아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급기야 아이는 나에게 "엄마! 발표회 날에도 아프면 학교 못 가는 거죠?"라고 물었다.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이었지만 이미 친구들이 발표회에서 무엇을 할지 아이는 대충 알고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의 엄마, 아빠도 참관하는 자리라는 것이 아이를 움츠러들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는 두려움 반, '다른 친구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은 아닐까?' 피하고 싶은 마음 반, 그런 마음들이 더해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아프면 약 먹고 학교 가면 되지. 많이 아프면 발표만 하고 집에 오면 돼."라고 말해주었다.
첫 발표회를 앞두고 떨리는 마음이 들고,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되어서 속상한 마음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피해서는 안되니까.
아이는 오카리나 연주 대신 우리 집에서 키우는 물고기 베타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겠다고 했다.
베타에 대한 거라면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아이는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을 공책에 빼곡히 적었다.
베타가 사는 곳, 생김새, 왜 투어라고 불리는지, 어항의 물 온도는 몇 도가 적당한지, 어항 물 교체 방법, 평균 수명 등등 이미 알고 있던 내용도 검색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해 가며 아이는 자신만의 발표 대본을 완성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기에 아이 혼자 대본을 외우고, 또 외우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발표회날 학교에 베타를 데리고 가 직접 소개해주려 했지만 추워진 날씨와 이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혹시나 베타가 힘들어할까 봐 걱정이 된다며 아이는 베타 사진을 갖고 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찍어두었던 베타의 사진들 중 고르고 골라 아이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는 사진을 크게 출력해 주었다.
발표회 전 날, 아이는 아빠, 엄마, 동생 앞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 혹시나 실수를 할까 걱정이 된다는 아이에게 "실수해도 괜찮아. 친구들은 베타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설명해 주는 거잖아. 친구들에게 알려준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얘기해 주면 돼. 많이 떨리면 엄마만 봐. 알겠지?" 하고 응원해 주었다.
드디어 발표회 날 아침, 아이는 "엄마, 예쁘게 하고 와요!" 이 말을 남기고 씩씩하게 등교했다.
나는 평소에 잘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아이가 예쁘다고 말해주었던 원피스를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엄마를 발견한 아이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헤어진 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학교에서 보는 아이는 집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의젓해 보였다.
발표회 시작 전 아이들이 만든 작품으로 꾸며진 교실 곳곳을 구경하며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큼 성장했는지, 선생님께서 얼마나 많은 애를 쓰셨는지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의 순서마다 큰 박수로 응원해 주던 아이는 자신의 차례가 가까워지자 입모양으로 엄마만 알아볼 수 있게 떨린다고 했다. 나도 아이만 알아볼 수 있게 '잘할 수 있어. 파이팅!' 하고 말해주었다.
발표할 차례가 된 아이가 교실 앞으로 나가자 엄마인 내가 괜히 더 긴장되어 사진을 찍는 것도 깜빡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의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발표 중간쯤 되어서야 퍼뜩 정신이 들어 부랴부랴 휴대폰에 아이 모습을 담았다.
아이는 준비한 대로 발표를 잘 마쳤다. 자신의 발표가 마음에 든 것인지, 끝났다는 후련함 덕분인지 발표를 시작하고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아이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노력한 과정이 중요한 거라고 수없이 말해주었었지만... 이번 학급발표회를 통해 아이는 깨달았을 것이다. 두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해냈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그 무엇보다 달콤하다는 것을 말이다.
내년 발표회 때는 엄마가 사진도, 동영상도 잘 찍어줄게. 약속!
제목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