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n 27. 2024

우리 반에 '나만' 없어

설마 그럴 리가?

2024. 6. 19.

< 사진 임자= 글임자 >


"엄마, 오늘 스마트폰으로 급식 설문조사 했는데 나만 못했어, 스마트폰이 없어서."

어느 날 딸이 뜻밖의 비보를 전해왔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저런 종류의 말을 듣게 되리라는 것을.

그러나 침착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돼,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어쩐지 집에 온 딸의 표정이 평소보다 어두워 보인다 했다. 여간해서는 감정 기복이 그리 심하지도 않고 그때그때의 기분을 대놓고 온 얼굴로 티 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날은 다르게 보였다.

슬슬 엄습해 오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라니.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뭐 했어?"

우선 사건의 경위를 살펴보아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선생님이 급식 설문조사 하라고 했는데 나는 스마트폰이 없잖아. 그래서 '나만' 못했지."

'나만 못했다'라고 했다. 나만 못했다고.

"합격아, 학교에서 태블릿 쓰지 않아? 전에는 태블릿으로 했다며?"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수업 중에 뭔가 자료 조사를 해야 할 때면 전체적으로 태블릿을 사용했었다고, 그리고 전체는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이 있는 친구들은 그것을 사용하고 없는 친구는 따로 태블릿을 이용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딸의 말을 다시 자세히 들어보니 대부분 스마트폰이 있어서(딸을 비롯해 올해는 다른 한 명만 그 요망한 것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있는 사람은 일단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했다.

"태블릿이 항상 있는 건 아니야."

"교실에 몇 대씩 있는 거 아니었어? 엄만 그렇게 알았는데?"

정말 그랬다.

아니 나는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걸핏하면 학교에서도 스마트폰 중독 예방이 어쩌고, 어린이들의 인터넷 사용의 폐해가 어쩌고 하면서 꾸준히 알림을 보내주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그와 관련된 교육을 종종 하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수업 시간에는 아예 스마트폰을 역병 보듯 멀리 하는 줄 알았다.

처음 아이들이 학교에서 태블릿을 사용해서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순진하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스마트폰이 없는 학생도 있으니까 그렇게 해야 맞지. 안 그러면 우리 애들 같은 경우는 수업에 아예 참여할 기회조차 없는 셈이잖아? 모두 공평하게 태블릿을 사용해야지.

"엄마, 태블릿이 교실마다 다 있는 줄 알아? 아니야."

아, 그렇기도 하겠구나.

나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 왔던 것이다.

"태블릿을 학년마다 돌아가면서 쓰는 거지. 어떻게 그 많은 학생들한테 다 빌려 주겠어?"

딸이 발끈했다.

듣고 보니 딴에는 또 그렇겠다 싶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아들이 끼어들었다.

"에휴, 엄마. 태블릿이 하나에 얼만데 그걸 반마다 다 주겠어? 그렇게 하려면 '예산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 안 그래?"

종종 제 아빠가 '학교 예산이 어쩌고 저쩌고 했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은 눈치다.

"우리 아들이 예산이라는 말도 다 알고 대단하네. 지금 그 표현 참으로 적절했어. 학교 물품의 기본은 다 예산에서 나오는 거니까 예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을꼬?"

라며 난 호들갑 떨지 않았다 물론.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자못 나는 진지해졌다.

"그래. 정말 그렇겠다."

다만 그렇게 대꾸할 수밖에.

이제 딸은 내친김에 뭔가 추진해 보겠다는 듯(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느낌상 그랬다.) 이내 박차를 가했다.

"다른 친구들은 스마트폰이 다 있으니까 그걸로 설문조사했는데 아무튼 나만 못했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서럽고 억울하기까지 한 두 글자는 아마도 '나만'일 것이다, 적어도 그날의 딸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선생님한테 넌 스마트폰이 없다고 말해 보지 그랬어?"

"말했지."

"그러니까 선생님이 뭐라셔?"

"이따가 하라고 하셨어."

"그래서 나중에 했어?"

"아니."

"그럼?"

"스마트폰이 없으니까 못했지."

"선생님이 깜빡하셨나 보다. 엄마는 반마다 태블릿이 한 두 대는 비상용으로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스마트폰이 없는 학생들도 있을 테니까 그런 학생들한테 빌려 주는 용도로 대비해 놓은 줄 알았지."

"아니라니까."

"그럼 스마트폰이 없는 친구들은 어떻게 해?"

"어차피 나만 없고 다 있어."

"그래서 넌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가만히 있었지. 없는데 어떡해, 그럼?"

여기까지 말을 듣고 나는 잠깐 딸이 애처로워졌다.

"갑자기 급식 설문 조사를 왜 했을까? 보통 그런 건 부모님들한테 보내주던데, 그리고 학생용, 보호자용 따로 작성하라고 그런 식으로 하던데 이번엔 좀 다르네? 선생님이 먼저 하신 건가?"

"나도 몰라."

보통 설문조사 같은 것은 내게 와서 아이들과 내가 각각 한 적이 더러 있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엄마한테 올 수도 있겠다. 기다려 보자."

"에휴, 우리 반에서 나만 스마트폰도 없고..."

딸은 이제 아예 돌림노래를 시작했다.


"너도 스마트폰이 갖고 싶어?"

물으나마나 한 걸 묻다니, 나도 참.

"당연히 갖고 싶지."

그 어느 때보다도 딸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고 진심으로 나는 느꼈다.)

그런데 또 그 와중에 난데없이 아들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 엄마. 누나도 벌써 6학년인데 갖고 싶겠지. 솔직히 6학년이면 스마트폰 살 때도 됐지 않아?"

잠깐, 지금 여기서 그걸 아드님이,4학년에 재학 중인 어린이가 정하실 게 아닌데요? 아드님이 단정 지을 사안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번엔 딸도 은근슬쩍  쉽게 넘어가지 않을 태세였다.

나는 바야흐로 어떤 시기가 도래하고야 말았음을 직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