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예상문제를 적중시키기는 했는데...

뜻밖의 재능 발견

by 글임자


22. 11. 30. 참가에 의미를 두자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라에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어떤' 전략으로 막아 냈을까요?"

"그게 문제야? 무슨 문제가 그래?"

"잘 들어 봐, 누나. 다시 한번 문제 낼게. 옛날에 적이 쳐들어왔을 때 '땡땡땡' 전략으로 막아냈어요. 과연 어떤 전략일까요? 근데 전략이 뭐야, 엄마?"

"엄마, 저 문제 좀 이상해."

누나가 강력히 항의했지만 동생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손자병법 뭐 이런 내용의 것은 책 어느 곳에도 없었는데?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답을 맞히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때는 사흘 전, 가족 독서 골든벨을 대비하여 나름 예상문제를 뽑아서 나와 아들(아들이 굳이 참여하겠다고 우겼으므로)과 딸이 번갈아 가며 문제를 출제하던 중이었다.

문제 출제자가 아들 차례였을 때다.

다짜고짜 아들은 전략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그 어린이는 당최 문맥상 연관성이라든지 선후 관계의 논리고 뭐고 없다.

과연 요상하고 얼토당토않다.

나와 딸은 확신했다.

저런 식의 어이없는 문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하다.

저런 건 문제 거리도 안된다고 섣불리 판단한 우리의 허점을 교묘히 노린 아들의 기가 막히고도 '뛰어난' 전략의 결과였다


그러나 엄마와 누나가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는 사실에,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고난도의 문제의 함정에 빠진 두 사람을 보며 아들은 의기양양했다.

"두 사람 다 모르겠습니까? 아, 아깝습니다. 정답은 바로! '뛰어난'입니다. 둘 다 땡이야 땡!"


문제의 정답들은 서술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하나같이 명사이거나 명사형의 모습을 띤 어떤 것들이었지 형용사라든가 부사라든가 감탄사가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각종 시험을 치러봤지만 저런 문제는 처음 본다.

아니, 전쟁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적과 맞서 싸우지 '저질의' 전략이라든지' 형편없는' 전략이라든지, '하찮은' 전략으로 맞설 민족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아들은 골든벨 문제 출제 역사의 한 페이지에 크게 한 획을 긋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여 저렇게 문제를 내기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해 두자.


제 아빠에게 문제를 낼 때부터 진작에 알아보긴 했지만 역시 9살이 문제 출제 위원이 되기엔 무리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제 학교에 갔을 때 아들의 예상 문제가 (사적인 감정이 지극히 작용하여 최대한 넓은 의미로는) 적중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적중이라기보다 비껴가듯이 문제를 꾸며주는 말로 잠깐 스치듯 등장한 것이다.


Q : 수나라가 고구려에 쳐들어 왔을 때 '뛰어난' 전략으로 이를 막아낸 사람은?


문제란 자고로 저래야 한다.

그렇다.

아들도 하노라고 했는데 문제의 초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문장(이 들어가긴 들어갔지만 느닷없는 부분을 문제로 둔갑시켜 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가 창조한 )을 예상 문제로 출제할 정도의 의식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초점이 너무 엉뚱한 데에 맞춰져서 문제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다손 치더라도 (최신 출제 경향을 반영한 것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보이긴 하나) 그 노력이 가상하였다.


"우리 아들, 오늘 학교에서 네가 저번에 낸 문제가 나왔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예상 문제를 적중(?) 시킨 아들에게 이 비보(?)를 알렸다.

물론 따지고 보면 적중한 것도 아니오 완전 별개의 문제다.

어떻게든 엮으려면 억지로 엮을 수야 있겠지만 파고들면 전혀 별개의 성질의 것이다.


또 그 어린이는 어떤 문제를 냈던가?

책 맨 뒤표지에 있는 추천사에서 고르고 골라 문제를 내질 않나(추천사에서 문제가 나왔다는 말은 여태 들어 본 역사가 없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먹을 수 있는 생선 토막도 아닌데 난데없이 주어부터 빈칸으로 만들고 달랑 목적어만 남겨놓고 서술어까지 빈칸으로 만들어 나에게 맞혀 보라고 강요를 다 하셨다.

흥수 아이부터 6.15 남북 공동선언의 내용까지 두루 섭렵(했다고 생각했다.)한 엄마가 다 무색하게 예상을 벗어난 질문들을 서슴지 않았고, 도대체 출제 의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는 그 아리송한 문제들 앞에 우리는 무기력해졌다.


"우리 아들이 나올 만한 문제를 족집게같이 뽑아내(서 버려야 마땅한)는 재주가 다 있었네? 이런 문제가 어떻게 나올 줄 알고 그때 문제를 낸 거야?"

"난 다 알지. 거봐 엄마. 나만 믿으라고요."

아무리 모성애가 강한 어미라 할지라도 신뢰도가 0%인데, 경험상 그 사실이 드러났는데 단지 모자 관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론 하얀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니까 아들보다도 더 호들갑을 떨며 말해 줄 수는 있다.

"그러게. 우리 아들한테 그런 능력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네. 앞으로 아들만 믿을게. 많이 도와줘."

"걱정 마 엄마. 내가 나중에도 또 문제 내 줄게. 나한테 부탁만 해."


고백하건대 이틀 전에도 누구 하나 아들에게 문제 내 달라고 부탁한 이 한 명도 없었다.

"그때 너한테 문제 내 달라고 아무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네가 나서서 한 거잖아. 그렇게 문제 내는 거 아니야. 그것도 문제라고 낸 거야? 넌 아직 문제를 낼 만한 수준은 못돼. 그걸 알아야지. 제발 엄마가 부탁하면 그때만 도와줘. 아무 때나 나서지 말고 제발. 알겠지?"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물론.


적중한 듯 적중하지 않은 (억지로 꿰어 맞추면) 적중한 것처럼도 보이는 예상문제 사건으로 아들은 한껏 자신감이 솟아났고 뿌듯해하는 얼굴을 보며 차마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제 아빠가 퇴근하고 오자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시시콜콜 얘기하는 아들은 두 발이 공중에 떠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보며 한 시간도 넘게 다른 가족들에게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핑계로 등을 돌린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아들은 집요한 데가 있다.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가족 스피드 퀴즈 대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뜻도 모르면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내다가 띄어서 읽어야 할 부분을 과감히 무시하고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와 같은 하찮고도 결정적이며 치명적인 결점 투성이인 문제들을 내느라 열을 올리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순진무구함이 위대하게까지 보이는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그 어린 아들을, 그리하여 어미는 그렇게 자라나는 꿈나무의 밝은 면을 더 실컷 바라봐 주기로 했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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