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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08. 2022

드론은 주말 일기를 4장이나 쓰게 한다.

주말 일기 공개발행의 이유


22. 11. 7. 아들의 주말 일기 (연속극)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이리 와 봐요. 보여 줄 게 있어요."

"우리 아들이 또 어떤 멋진 걸 보여주시려고 그럴까?"

"짜~잔. 내가 일기를 많이 써서 선생님이 잘 썼다고 하셨어."

"우와~ 우리 아들이 주말에 일기 열심히 쓰더니 선생님께 칭찬받았네. 정말 기분 좋았겠다."

"응. 우리 반에서 내가 주말 일기 제일 길게 썼어."


드론을 하늘 높이 띄울 때만큼이나 아들의 기분도 덩달아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1학기 때에는 주말 지낸 이야기를 친구들 앞에서 번갈아 가며 들려주었다는데 2학기 때부터는 일기를 쓰고 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쓸 거리가 있으면 얼마나 있으랴 싶었다.

하루 종일 쫑알쫑알 말은 잘 하지만 주말마다 일기를 한 편씩 써내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아들이 솔직히 처음엔 미심쩍었다.


"엄마, 나 맞춤법 틀렸는데 왜 안 고쳐주고 그냥 보냈어?"

처음으로 일기를 써 간 다음날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대뜸 한다는 말이 엄마를 향한 원성의 소리였다.

일기장에 적힌 낱말의 맞춤법이 틀린 개수에 비례하여 엄마를 향한 아들의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그건 선생님이 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다 가르쳐줘서 고쳐서 가버리면 선생님이 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힘드실 거 아냐? "

"그래도 틀린 게 있으면 고쳐줬어야지. 엄마가 돼가지고 그것도 안 해?"

"그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건 선생님 고유의 영역이라고 판단을 했다."

라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속으로만 생각했다.

어쩔 땐 내 아들이지만 앞뒤 꽉 막힌 사람처럼 울화통이 터지게 만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9살짜리와는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어야만 한다.

'선생님께 일기를 미리 검사해서 틀린 글자가 있으면 정정해서 보내야 하는 건지 여쭤 봐야 하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마음뿐이었다.


그 후로 아들은 일기를 쓸 때 항상 내게 자랑스럽게 공개발행을 한다.

전혀 거짓이 없고 꾸밈도 없으며 비밀이란 것도 없다.

온 국민에게 공개해도 한 점 부끄러움 없을 내용이다.


주말 지낸 일기는 금요일부터 시작해 토, 일요일까지 있었던 일 중 인상 깊었던 일을 쓰면 된단다.

금요일 저녁에라도 일기 감으로 제격인  사건이 벌어져도 '행여라도' 주말에 더 요란한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며 일요일 저녁달이 뜰 때까지도 일기 쓰기를 미루곤 한다.

"엄마 어제가 며칠이었지?  날씨가 어땠지? 몇 시에 일어났더라?"

엄마에게 초벌구이를 한 번 맡긴다.

"어이구, 그날 있었던 일을 그날 쓰는 게 일기지 다 지난 다음에 쓰는 게 어딨냐?"

일기 인생 2년 선배인 누나가 핀잔을 주어도 아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도 깜빡하지 않고 챙겨서 쓰는 것만도 어디냐 하며 엄마는 그저 흐뭇해서 시험 전날 쪽지시험으로 예상문제 뽑아주듯 알려달란 대로 다 퍼준다.


지난주엔 6쪽을 쓰더니 이번엔 자그마치 8쪽을 썼다.

"와~엄마. 나만큼 일기 길게 쓴 친구는 우리 반에 없을 거야. 내가 쓴 일기 중에 가장 길어."

"진짜네? 4장이나 썼잖아?"

"아니지. 3장 반이지. 한쪽은 끝까지 다 안 썼잖아."

감성보다 이성이 앞선 아들의 대답이다.

비록 완전히 채우진 못했으나 엄마는 반올림해서 한 장으로 치자고 했고, 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한 장이야? 반 정도밖에 안 썼는데, 그게 말이 돼?"


앞으로 그런 식으로 곧이곧대로 인생 살다가는 사회생활이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이른 걱정을 잠깐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융통성도 필요한 법이라고, 눈을 감아 줘야 할 때도 있는 법이라고, 계속 그렇게 인생 살다가는 재미없을 줄 알라고 언젠가는 꼭 한 번은 말해줘야겠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3장 반이나 되는 일기를 쓰면서 날짜와 시간, 날씨, 일어난 시각과 잠드는 시각도 모자라 게다가 '오늘 한 일'과 '내일 할 일'까지 전부 다 쓰고 또 쓰는 동생을 보고 누나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어이구, 그걸 다 일일이 쓰고 있냐. 그냥 한 번만 써도 될 것을."

"에이. 괜찮아, 다 써도."

"그리고 일기는 사실과 의견을 섞어서 쓰는 거야."

4학년짜리의 여유로움이랄까? 어쩌면 11년 인생의 송곳 같은 예리한 충고랄까?


일기를 자세히 썼다고 선생님이 칭찬해 주셨다며 아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 원래 보통은 일기 쓰면 '참 잘했어요' 도장만 찍어 주는데 잘 쓰면 선생님이 빨간색으로 글씨도 써 주셔."

"정말이네?"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 앞으로 나처럼 자세히 쓰라고 보여주셨어."

"우리 아들이 얼마나 일기를 잘 썼으면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엄마는 정말 우리 아들이 자랑스럽다."

엄마는 아들이 전국 일기 쓰기 대회에서 1등이라도 한 것처럼 한껏 아들을 추켜올렸다.

과연 선생님도 장문의 일기에 칭찬의 한 말씀을 남겨주셨다.

일요일 저녁 틀린 글자가 없는지 한 번 확인해 달라는 아들의 말에 지우개가 닳고 닳았다.

내용이 길어지는 걸  감안해 주말 일기가 아니라 주말 연속극이 돼야 할 것도 같았다. 1,2부로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연속극 말이다.


사실과 의견이 섞여 있긴 했으나 자꾸 반복되는 구절이 많은 게 나는 신경 쓰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실이라기보다 아들은 '드론 사용 설명서'를 일기에 적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일기라 쓰고 설명서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앞의 두 장은 철저히 그러했다.


게다가 '너무'를 '너무' 남용한 것에 대해,

"단어 중에 '너무'란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그 말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과 긍정적인 의미이지만 굉장히 강조하고 싶을 때조차도 그 표현을 쓴다는 점이 문제다. 그럴 땐 '아주'라든지 '매우'라는 부사를 선택하는 게 더욱 적절하다."

라고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으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론을 구입해서 신나게 띄우고 그 행동이 아주 재미있었다.'는 느낌까지 빠뜨리지 않았으니 주말 일기로서는 손색이 없다.

다만 앞에서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했다는 점이 아쉽긴 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반복 재생의 달인이 있었다.  

유전자의 놀라운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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