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Oct 28. 2022

"선생님이 파자마 입고 학교와도 된대."

파자마도 고쟁이도 선택받지 못했다.

22. 10. 28. 어쨌든 해피 핼러윈

< 사진 임자 = 글임자 >


- 글임자네 가족의 어젯밤 이야기 -


"엄마, 내일 선생님이 파자마 입고 학교 와도 된대."

갑작스레 딸이 말했다.

"어? 학교에 파자마를 입고 가도 된다고?"

"응,  핼러윈이라고 금요일에 핼러윈 파티 한대."

"우와, 누나 좋겠다."

철없는 9살 인생이 끼어들었다.

"선생님이 먼저 그렇게 하자고 하셨어?"

"아니, 친구들이 막 파티하자고 졸랐어."

"그랬구나."

"그래서 그날은 아무 옷이나 입고 와도 된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오래."

"진짜? 누나 정말 좋겠다. 무슨 옷 입고 갈 거야?"

누나 일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동생은 누나의 드레스 코드를 추측해 본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파자마는 좀 그렇지 않나?'


내가 그동안 무신경하게 살아서 혼자만 못 느꼈던 걸까, 요즘 추세가 최근 몇 년 동안 10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핼러윈'을 이야기하곤 한다.

현관에 척화비는 세우지 않았으나, 적어도 분별 있게 살자는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남 따라 무조건 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나의 번뇌, 아직 철없는 두 어린것들이 나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듣고 있던 남편이 마침내 출동하셨다.

"아니 남의 나라 축제일에 왜 너희가 파티를 해?"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엄마 어렸을 때는 영어 교과서에서나 '핼러윈 데이' 구경했었는데."

새삼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를 실감했다.

나와 남편은 교과서로만 배우고 지금 내 아이들은 온몸으로 배우고 체험까지 한다.

아닌 게 아니라 10월 초부터 대형 마트에는 '핼러윈 데이'를 겨냥해 각종 소품과 의상이 제법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너희 단오가 언제인 줄 알아? 우리나라 단오라고 해서 외국에서 축제하고 그러던? 그나저나 단오가 언제더라?"

그 순간에 '단오'는 적절한 어휘 선택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과유불급'이란 말은 아마도 저런 상황에서 필요한 사자성어라고도 생각했다.

'이 양반아 너무 멀리 가셨소.'


"단오? 몰라? 아빠도 모르면서 그래?"

딸이 말했다.

"진짜 아빤 왜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원 플러스 원, 아들이 거들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고유의 풍습도 잘 모르면서 외국 축제에 왜 그렇게 난리야?"

나는 생각했다.

'아직은 사리 분별 능력이 모자라서 주위 기분에 휩쓸려 저러는 거겠지.'

고작 9살, 11살이다.

"그럼 왜 크리스마스 때 아빠는  트리도 만들고 그러는 거야?"

나름 반박하는 11살이다.

"맞아. 그럼 아빠도 크리스마스 때 아무것도 안 해야지."

무조건 끼고 보는 9살이다.

"그거야 그건... 그건 종교적인 의미가 있으니까 그런 거지. 기독교인들한테는  그때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니까. 부처님 오신 날도 불교에서는 행사를 하잖아."

"핼러윈도 원래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시작했다고 하던데?"

딸이 대꾸했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내가 출동했다.

"그래? 엄마는 옛날에 잠깐 배워서 다 잊어버렸는데 그럼 우리 같이 핼러윈에 대해서 찾아볼까? 핼러윈 노래도 있잖아 너희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그 영어 동요 말이야. 생각나지?"

"무슨 동요? 생각 안 나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는 딸.

"그럼 엄마랑 같이 그 동요 한 번 찾아보자."

급히 영어 동요를 찾았다. 그 동요를 듣던 때가 벌써 3년도 훨씬 전이다.

아이들에겐 이미 흐린 기억 속의 동요일 뿐이지만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기억을 소환하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들은 별 관심도 없어하는데 나 혼자만 '의성어'가 어떻고 깜짝 놀랄  때는 영어로 이렇게 표현을 한다는 둥, 같은 동물이 내는 소리인데도 우리랑은 전혀 다르게 표현을 한다는 게 신기하지 않냐는 둥 갑자기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영어 학원 문턱 한 번 못 밟아 본 아이들에게 '소수 정예반'  방구석 과외를 시작한다. 정작 가장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른 사람은 단연 엄마 혼자였다.

나름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아닌 척, 무관심한 척하면서 은근히 영어 '공부'를 접목시켰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이때다 싶으면 무작정 들이민다.


조선왕조 500년의 국수주의자가 환생을 하신 건지 철 없이 들뜬 아이들 앞에서 '단오' 타령을 하는 아빠라니!

게다가 '핼러윈 너 잘 걸렸다, 이참에 영어 단어 몇 개라도 건져보자' 하며 수선을 피우는 엄마라니!


"그래도 학교에 가는데 아무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셔도 파자마는 좀 그렇지 않아? 너 입고 싶은 대로 입고 가 평소 입는 걸로."

없는 파자마를 당장 구해 올 수도 없고 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들 낳기를 소원하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내 고쟁이를 입혀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파자마든 고쟁이든 딸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엄마, 내일 우리  파티하니까 먹을 거 가져가야 돼. 과자나 사탕, 음료수 뭐 이런 거 가져가면 돼."

핼러윈을 빙자하여 한몫 챙기자는 속셈이다.

그녀의 화법은 '미괄식'이다.


작년부터 산타 할아버지의 실체를 강하게 의심하기 시작한 딸이다.

열한 살 나이,

남의 나라 축제라도, 그 기원과 의미는 마음에 깊이 새기지 않더라도, 과자만 실컷 입안 깊숙이 넣을 수만 있다면 아랑곳하지 않을 나이다.

단순하고 순진한 초등학생으로 살 날이 앞으로 며칠이나 더 될까.

영어 의성어, 그까짓 거 모르면 좀 어때?

핼러윈의 기원 그런 거 몰라도 세계 평화는 안 깨져.

그저 네 나이 때는 먹고 놀고, 먹고 놀고, 그게 다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건 그렇고 애들아,

"Boo~" 이 표현이 야유 소리로도 쓰이고, 사람을 겁줄 때도 쓰인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니?

꼭 알아야 된다는 건 아니야.

그냥 참고만 하면 어떨까 해서 말이야.

새겨들을 필요는 없어.

신경 쓰지 마.

그냥 그렇다는 얘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