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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09. 2023

급구, 원 플러스 원

그럼에도 살림은 꾸려야 하는...


22. 12. 19.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사진 임자 = 글임자 >


일주일째다.

독감에 맥을 못 추고 징역살이만 하고 있다 보니 아이들 방학도 벌써 열흘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눈물겹게 반가운 일이다.


겨우 아이들 끼니만 챙겨 주고 다른 건 거의 아무것도 안 하다시피 하고 있다.

작년에 온 식구가 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처럼 집안 살림이 모두 멈춘 듯하다.

그땐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어서,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크게 아프지 않아서 그런대로 집이 돌아갔는데 이번엔 정말 아무것도 손대기 싫을 만큼 몸이 힘들다.

약이 얼마나 독한지 속이 울렁거려 앉아있기 힘들다.

감기 떨어지게 하려다 그 약 먹고 내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나는 그 의사에게 원한 산 적도 없는데 오죽했으면 잘못 처방된 약이 아닌가 한참이나 의심했었다.

남편은 새로 간 곳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내일부터는 또 출장이라고 했다.


진심으로 일어나기 싫었지만 겨우 아이들이 둘 뿐인 집인데도 돌아서면 또 청소를 해야 하고 빨랫감은 자꾸만 쌓여갔다.

언제부터였던가 우리 집에서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한 때가?

거실에서 흙장난을 하는 것도 아닌데 분명히 방금 청소를 했는데 왜 이렇게 금방 어질러지고 쓰레기가 생겨나는 거지?

아이들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된다.

"엄마가 몸이 안 좋으니까 너희가 협조를 잘해줘야 돼. 알겠지?"

말로 하는 협조는 아주 잘한다.

그렇다고 천덕꾸러기들처럼 매일 사고만 치는 것도 아닌데 은근히 아이들이 완벽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시름시름 앓으면서 입술까지 바짝 말라버렸던 아이들이 다행히 이젠 제법 까불고 둘이서 잘 논다.

이럴 때 둘 낳길 정말 잘했다고 혼자 뿌듯해하곤 한다.

그 혈기가 부럽기까지 하다.

"우리 애들은 왜 이렇게 까부는지 모르겠어. 잠시도 가만히 안 있어."

"그런 소리 말아라. 애들이니까 까불지. 까불어야 안 아프다. 아파 봐라. 까불 힘도 없다."

엄마는 늘 저렇게 말씀하셨다.

나야말로 정말 까불 힘 하나도 없다.

그러고 보면 엄만 참 맞는 말씀만 잘하신다.


아파서 어쩔 수 없다 하면서도 아이들은 잘 못 챙겨주니 신경이 쓰인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동안 습관 들인 게 있어서 할 일은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지만 겨울 방학 시작하자마자 내가 앓아눕는 바람에 계획이 많이 틀어져 버렸다.

어차피 사람 사는 게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고 치더라도 너무 그 궤도에서 벗어나 버린 것은 아닌가 조금은 염려스럽다.

내가 입맛을 잃으니 도무지 음식을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무슨 음식을 먹더라도 맛을 못 느낀다.

"합격아, 이거 맛이 어때? 엄만 아무 맛도 안 나."

"맛있는데? 엄마는 맛없어?"

"응. 이상하다. 아무 맛이 안 느껴져. 뭘 먹어도 다 써."

"아마 엄마가 아파서 그런가 봐. 나중에 괜찮아질 거야."

맛도 모르겠는 음식을 그냥저냥 해서 아이들 밥을 차려준다.


환자 엄마에겐 호한, 마마, 불법 비디오테이프보다 더 무서운 게 밥 먹을 시간이다.

하루 세끼 챙겨 먹을 시간은 무섭게도 자주, 그리고 빨리도 닥친다.

시장을 보러 나간 게 언제였더라?

냉장고도 비어 간다.

그 와중에도 아드님은 매 끼니마다 메뉴가 궁금하신가 보다.

"엄마. 오늘 점심은 뭐야?"

"야, 너는 엄마가 아픈데 먹을 것만 생각하냐?"

철든 딸이 철없는 것을 제지하고 나선다.

"나는 핫케이크가 먹고 싶은데."

"우리 아들 핫케이크 먹고 싶어?"

"응. 엄마. 해 주라."

"너는 엄마 힘든데 그걸 해달라고 하면 어떡해?"

"엄마 힘들어?"

"봐서 해 줄게."

"아니야, 엄마. 엄마 힘들면 안 해도 돼."

아들도 눈치는 있었다.


눈치는 있지만 끈기는 없는 아드님이시다.

왕성한 식욕 앞에 끈기는 이내 굴복당하고야 말았다.

"근데 엄마. 나 정말 핫케이크가 먹고 싶은데, 엄마 힘들어서 안 되겠지?"

"엄마가 이따가 봐서 괜찮으면 해 줄게."

세상 모든 곳에 신이 계실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드셨다는데, 그때 부부 동반으로 아버지는 왜 같이 안 보내주셨나 모르겠다. 정말 '원 플러스 원'이 절실한 때인데 말이다.

가끔은 부부동반도 필요한 법인데...

신이 보내주신 그 어머니는 결국 핫케이크를 만들어 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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