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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Oct 24. 2022

"잠시 넘어져 있어도 괜찮아"

#. 4 2017. 9.30. 부상이라는 장애물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빠와 나는 아침밥을 챙겨 먹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경기 도중 들것에 실려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무릎이 부어 있었고,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MRI 검사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빠의 표정이 조금은 나아졌다. 의사는 아직 무릎이 많이 부어있어 정확한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손상은 없다고 했다. 아빠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내가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듯 그제야 표정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빠의 59번째 생일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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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후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 버렸다.


나: 아빠, 무릎 느낌이 좀 이상해. 병원 한번 더 가봐야 될 거 같은데...?

별거 아닐 거라는 의사의 말에 하루빨리 복귀해서 훈련에 참여하려고 했던 나는 강한 싸함을 느꼈다. 


결과는 후방 십자인대 파열. 

의사는 잔인하리 만큼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의사: 지금 후방 십자인대를 보면 중간에 하얗다가 검은색으로 바뀌는 게 보이죠...? 이게 파열이 된 것인데... 이 부위는 다치기도 쉽지 않은 부위인 데다가 회복도 더딘 부위라 수술하고 다시 뛰는데 짧으면 8개월, 길게는 1년 정도 걸릴 겁니다. 물론 재활을 열심히 했다는 가정 하에서요. 수술을 안 하고 보존적 치료도 가능하긴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 그럼 전에는 왜 괜찮다고 한 거예요??

의사: 그때는 무릎이 너무 많이 부어있어서 잘 안보였던 거죠.


냉정함을 유지해 오던 아빠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식의 좌절과 눈물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에서 아빠는 어떤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빠와 나는 3개의 병원에 더 가서 진단을 받고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 먼저 찾은 2개의 병원에서는 파열이 맞고 수술을 최대한 빨리 해야 그나마 빠르게 재활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껏 축구를 하면서 어떠한 이유로든 내가 수술대에 오를 것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의사의 소견을 듣는 그 순간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의사: 수술을 하게 되면 일단 타가 건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 인대를 가져와서 끊어진 곳에 있을 거예요... 후방 십자인대 같은 경우에는 수술을 하더라도 완전히 완치가 안될 수 있어요.


아빠와 나는 수술을 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코치님이 추천해준 마지막 병원을 찾았다.


아빠: 아들, 여기 진료 보고 바로 날짜 잡자. 더 미뤄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MRI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와 나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보았다.


의사:  원래 외국에서는 후방 십자인대 수술 잘 안 해요. 의사마다 다르긴 한데, 수술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호전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데... 운동선수는 최대한 칼을 피해야지. 이거 재활만 잘해도 충분히 가능해요. 대표팀에 있을 때도 이런 친구가 있었거든요.


나: 그럼 저 수술 안 해도 되는 거죠?

의사: 내일부터 병원 알아봐서 바로 재활 들어가죠.


집에 가는 길 아빠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아빠: 아들이 운이 좋고 지금까지 열심히 해와서 이런 희망적인 일이 생기는 거야. 이참에 재활하면서 몸도 더 키우고 근력도 더 강화시키면 복귀해서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불행 중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하지만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아빠는 분명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겉으로는 평범한 위로 같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을 겪은 것 같은 아빠의 눈동자를 나는 보았다. 어쩌면 아빠에게도 위로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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