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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Oct 24. 2022

"넘어져 봐야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

#.5 2017. 11.  재활 치료 기간(1)

간호사: 병실은 502호이고요, 4인실 이예요.

           이쪽 자리 쓰시면 됩니다. 


아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아파지는 거야.

맨날 누워 있다고 게을러지지 말고 항상 아들이 생각하는 목표 생각하고. 알겠지?

아빠는 다음 주 주말에 올 테니까 그때까지 치료 잘하고. 


어딘가 모르게 어두침침한 병실의 공기는 누가 봐도 '아픔'이었다. 

이제 막 수술을 끝내 신음으로 앓고 있는 한 사람, 자기 집 안방 마냥 편히 누워 야구를 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커튼으로 가려져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과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의사 선생님: 앉아서 다리 들기 한쪽에 20개씩 5세트 하고, 옆으로 누워서 20개씩 5세트, 엎드려서 5세트 시작하자. 

·

·

·

나: 선생님, 다했어요. 

의사 선생님: 그럼 이제는 저기 모래주머니 1kg짜리 보이지? 저거 허벅지에 차고 2번 더 할 거야.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아주 기초적인 동작의 훈련을 통해 본격적인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약 3주 동안 진행되었던 기초 재활 훈련은 내 허벅지 위에 채워지는 모래주머니의 무게만 달라졌을 뿐 매일 똑같은 과정의 반복이었다. 한창 활기차게 운동장 이곳저곳을 누벼야 하는 젊고 어린 선수에게 이 상황은 단순 다리 들기 이상의 고통이었다. 


재활 훈련이 모두 끝이 나면 오후 4시가 되었다. 이제부터 게임을 하던, 밥을 언제 무엇을 먹던, 몰래 술을 먹고 들어 오던, 언제 잠을 자던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선수에게 장기적인 부상이 치명적인 이유이다. 물론 몸도 예전만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평소에 (강제성이 섞여 있는?) 단체에 귀속되어 통제받고 관리받던 울타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드넓은 초원의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는 것이다.


나: 네~ 선생님. 뭐 그냥 그럭저럭 할만해요.

학교 선생님: 일단 수행평가 대체로 할 것들이랑 이번 주 수업 유인물 메일로 보내 놨으니까 혼자서라도 해보고.  자주 연락해!


나는 보통 재활 훈련이 끝나면 학교 수업을 보충했다. 학교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 메일과 전화를 통해 수행평가와 그날 과제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편의를 봐주시긴 했지만 아무 내용도 모른 채 혼자 진도를 따라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냥 누워서 핸드폰을 보거나 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상황이 어렵다고 그동안 해왔던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했다.

이것이 수험생의 생존 본능이었던 가.


무작정 EBS 무료 특강 페이지에 들어갔다. 얼추 내용이 비슷해 보이는 강의를 찾아 들어가 겹치는 부분만 골라 강의를 들었다. 녹색창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블로그와 카페의 내용들을 총집합시켜 필요한 것들을 받아 적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기더라. 

재활센터 구석에 앉아 다리를 들 때도 그랬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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