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로망과 쓰임을 담은, 베란다
왜 베란다는 짐을 넣어두는 공간이어야 하나요?
인테리어를 계획할 때, 우리는 모든 베란다 공간을 확장할 생각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인생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베란다가 있어야 해. 그래야 짐을 넣어두지."
앞의 말은 '그런가?' 싶었는데, 뒤에 따라오는 이유가 이상했다.
집에서 가장 채광이 좋고 뷰가 좋은 곳이 베란다인데, 고작 짐을 넣어야 하는게 이유라니...
그러고보면 어린시절, 한 구석에 늘 물건이 가득 차 있고 못생긴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어야 나갈 수 있는 베란다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욕심껏 모든 베란다를 확장하려 했지만, 결국 침실 앞 베란다와 주방 뒤 세탁실만큼은
현실적인 한계와 주변의 조언에 따라 남겨두게 되었다.
대신 그 두 공간은 더 많이 고민하고, 공을 들였다.
그렇게 우리의 베란다는 '조망에 대한 로망'과 '일상의 쓰임'이 나란히 담긴 공간이 되었다.
인테리어 계획을 할 때는 침실에서 반창으로 연결된 베란다도 어떻게든 확장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침실과 베란다 사이의 창문 아래 벽이 내력벽이라서 침실에서 바로 베란다로 연결되는 구조 변경은 무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확장 공사의 범위가 커서 민원에 대한 부담이 있던 상황이라, 아쉽지만 접근성 개선이 어렵게 된 침실 앞 베란다는 확장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우리 집의 장점인 탁 트인 뷰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침실에서 창밖 풍경이 더 잘 보이도록, 베란다로 통하는 창을 조금 달리 적용해보기로 하였다.
비록 바닥 난방 공사는 포기했지만, 단열벽과 외부 이중창 섀시 설치는 확장한 공간과 동일하게 시공하였다. 덕분에 내창은 단열 걱정 없이, 일반적으로 중문에 많이 쓰이는 3연동 도어를 설치할 수 있었다.
여기에 격자 무늬를 더하여 은근한 북유럽 감성도 살렸다.
3연동 도어의 가장 큰 장점은 개방감이다.
한겨울 동안엔 주로 창을 닫아두어서 침실에 집중된 아늑함을 즐길 수 있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내내 창을 활짝 열어두고 침실에서도 예쁜 하늘을 한 눈에 담는다.
창의 테두리는 고무나무 집성목으로 마감하여 따뜻한 인테리어 감성도 더했는데,
지금은 이 침실 창가가 우리 고양이 키키의 최애 산책로이자 전망대가 되었다.
오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생 선배들의 조언은 주로 도움이 되지만, 적어도 침실 베란다만큼은 내 선택에 만족한다.
그 공간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보다 중요한 건 '우리 마음에 드는가'였다.
침실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예쁘고, 그 덕에 우리가 매일 기분이 좋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
사실 마음 같아선 세탁실도 방안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물을 쓰는 공간이라, 배관 공사의 비용이나 하자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있어 기존 세탁실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집 안에서 다시 신발을 신고 나가야만 하는 공간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세탁실도 건식으로 구성했다.
세탁기 배관만 남기고 바닥은 단차 없이 마감했고, 겨울철 발시림을 막기 위해 마음에 드는 러그도 깔았다.
덕분에 지금은 맨발로도 부담 없이 드나드는 세탁실이 되었다.
세탁실을 설계할 때도 인생 선배들은 한 마디씩 하였다.
"손빨래할 공간은 있어야지."
그 말에 나 역시 엄마와 함께 살며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생활 방식을 떠올렸다.
세탁기를 돌리기 전후로 자잘한 손빨래를 하던 경험을 생각하면, 간단히 물을 쓸 공간은 필수였다.
문제는 좁은 공간이었다.
요즘 세탁기가 워낙 크기가 커져서, 우리 집 세탁실도 아주 좁은 편은 아니었지만 워시타워를 두고 나니 옆 공간이 700mm도 채 남지 않았다. 일반적인 개수대는 최소 600mm가 필요하고, 사람까지 서 있어야 하니 설치는 어려워 보였다.
개수대 설치를 포기해야하나 고민하던 중, '꼭 개수대여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야를 넓혀 다시 찾아보니, 이케아에 세로 폭이 400mm 정도되는 슬림한 철제 프레임의 세면대가 있었다.
깊이는 얕았지만, 손빨래나 세탁물을 잠시 담가두기엔 충분했다. 세면대 옆으로는 이케아의 모듈 시스템을 활용해 필요한 수납장도 이어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살며 함께 살며 익숙해진 생활 방식과 조언들이, 세탁실을 지금의 실용성을 갖춘 형태로 이끄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세탁실에 개수대가 있으면 편하다는 말, 막상 만들어놓고 보니 백 번 공감하게 된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내 나름의 적용 방법을 찾아낸 것도 뿌듯했고,
그 시작이 앞서 체득한 일상의 지혜였다는 점도 흐뭇하다.
침실 베란다는 로망 실현을 위해 고집스럽게 비워낸 공간이지만,
세탁실은 함께 살아온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차게 채운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