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약초 바구니를 안고
앞마당으로 나왔는데
말과 사람들 소리가
대문 앞에서 들렸다
궁금할 새도 없이
바로 중문 안까지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키가 크고 위압적인 남자가
그녀를 똑바로 봤지만
다른 남자가 장독대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는 걸
보느라 멍하게 서 있었다
장독대를 내려다보며
남자가 소리쳤다
진이 쳐 있어요
하하하 재밌어요
밑에 서있던 남자도
장독대로 가서 보고 웃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누가 한 것이냐?
그녀는 바구니를 껴안고
절을 한 후
누구를 찾아오셨어요?
아버지는
아직 퇴청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딸이냐? 너를 보러 왔다
눈이 둥그레진 그녀를 두고
두 남자는
언덕 위 정자로 올라갔다
밖에서 들리는
말 울음소리와 병사들 무기소리
무슨 일인지 감도 못 잡은 채
종을 쳐 하인들을 불렀다
두 부부와 각자의 아들 딸
6명이 달려왔다
우선 차를 준비시키고 생각했다
말 무기 귀족인가
그런데 왜 나를?
차를 들고 언덕을 올라가며
머리를 짜도 모르겠다
위압적인 남자는
정자에 앉아있고
잘 생긴 다른 남자는
옆에 서있었다
절을 하고
정자에 차를 두고 물러나
처음으로
그 남자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이목구비 뚜렷하고
눈빛이 강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이 나라의 왕비로는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
뜬금없는 물음에
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아~ 그건 궁전에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저희는 생각도 못할 일이라서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봐라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왕비님이 어린 왕자님을 두고 돌아가셨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래서
재촉하는 말에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여러 후궁들 중 한 분이
왕비가 되면 좋겠지요
그러면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겠지
그럴 수 있겠지요
아~그럼 왕비님의 가문에서
새 왕비를 선택하실 수 있겠네요
그래도 또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나겠지
아~~ 그럼 새 왕비님이
아들을 낳지 않아야겠네요
그 남자가 웃었다
너를 왕비로 선택하였다
순간 아 이 남자가 왕이구나
다리가 푹 꺾여
바닥에 엎드리며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 차리자
이 무슨 소린가
왜 내가 왕비로 선택되었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이를 못 낳고
명민하여 왕자를 지킬 수 있고
친정이 세력을 만들 만큼
힘이 없는 여자
아~~ 내 발등을
내가 찍었구나
고백할 게 있습니다
혼인하지 않으려
수태하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그 조건에는 맞지 않습니다
뭐라고?
왜 혼인하기 싫은데
남편 자식 시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지금 지어낸 말이 아니냐?
아닙니다
너로 결정한 건 변함이 없다
거짓말한 저를 처벌하시더라도
그 명은 거두어 주십시오
왕명을 거역하면
너희 가문이 다 죽을 수 있다
저만 이 자리에서 죽여주십시오
밑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가 뛰어올라오시더니
왕을 보고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안됩니다
제가 키웠지만
이 아이는 왕비가 될 만큼
그릇이 크지 않습니다
속이 좁고
원한을 깊이 가져가는
모진 아입니다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가문의 영광을
어찌 다 반대하느냐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품에서 꺼낸
은장도를 목에 대니
왕이 격노하여
너희 가문을
다 멸문시키겠다고 소리쳤다
아버지가 손목을 꺾어
은장도를 떨어뜨렸다
이런 고약한 것 같으니
왕을 노려보며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합니다 소리쳤다
기가 막혀
일어서는 왕을 말리며
옆에 서있던 남자가 물었다
왕비를 수락할 조건을 말해봐라
첫째 저는 왕자님의 유모
선생의 자격으로 왕비가 됩니다
둘째 왕자님이 성인이 되시면
저는 죽은 걸로 하고
궁밖으로 보내주십시오
셋째 왕자님을 지키는 일차 책임은
그 아버지에게 있으며
저에게도 일정한 권한을 주셔야 합니다
넷째 제가 만약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왕이 될 겁니다
기막힌 협박을 듣고도
왕이 알았다
너를 믿고
왕자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맡기겠다고 하고는
언덕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