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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프피아재 Jan 17. 2024

3. 입사 2년 차, 노력이 부족해 실수한 사건 판결문

사건번호 2016 노력 116 사건 속기록

"사건번호 2016 노력 116호 사건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피고 잠시 일어나 주세요."

"..."


완벽주의. 그렇다. 나는 완벽주의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천성이 꼼꼼치 못하다. 근데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니? 그러니 항상 고달프다. 회사생활이... 


그럼에도 항상 완벽히 잘하려고 노력한다. 하... 근데 빌어먹을 이 중요한 것을 왜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을까? 

협력업체에 메일을 보내기 전까지도 몇 번이나 체크했는데... 왜 놓쳤을까? 스스로가 한심하고 용서가 안된다. 그래. 모두 다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이런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도우지 아무런 의욕이 없다. 나는 멍청했지만 노력마저 부족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피고? 그만 멍 때리고요. 대답 안 해요?"

"... 아. 네..."


전심전력으로 자기 비하를 하고 있던 그때, 이곳. 결정의 심판원으로 소환됐다. 정해진 절차가 있으나 모든 잘못을 인증하고 그에 맞는 판결이 빨리 나오길 바랐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판사님에게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머리와 어깨는 무거웠다. 그때, 옆에 있던 '마음 변호사'가 손으로 내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 진짜, 찌질하게 왜 그래요?"

"..."

"아니~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지. 뭐 사람이라도 죽였어요?"

"... 아니에요. 저는 쓰레기예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변호사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자책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던 '마음 변호사'는 못마땅했는지 뻘게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어휴... 진짜 매력 없어. 그러니 여자친구도 없죠!"

"... 맞아요..."

"아~ 진짜. 뒤통수 한 대 때려도 돼요?"

"..."

"휴. 거기다가... 저 꼰대랑 붙어야 한다니..."

"...?"


나는 고개를 들어 검사석을 바라봤다. 헝클어진 머리, 짙은 다크서클, 충혈된 눈을 갖은 50대 남자는 책상 앞 정리되지 않은 서류를 쉴 새 없이 들추며 옮겨댔다. 그는 바로 '노력의 검사'였다.  


"노력의 검사? 지금 공소유지 진술 가능해요?"


판사님은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노력의 검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를 듣지 못한 '노력의 검사'는 바쁘게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저기? 노력의 검사?"

"아...~ 네... 에~"

"공소유지 진술 가능해요?"


노력의 검사는 고개를 저었고 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결정의 판사님'에게 말했다.


"아... 판사님, 죄송한데... 아시겠지만, 워낙 갑자기 소환돼서요."

"네. 그래서요?"

"그... 1분만 더 주시면,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뭐. 그렇게 하세요."


잠시 후, 그는 어질러진 책상에서 서류 몇 개를 손으로 정리해 들더니 판사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소유지 진술해 주세요."

"크흠, 공소유지 진술하겠습니다. 피고는 2016년 4월 9일 16시경, 올해 하반기 진행될 사업계획운영계획서의 예산 부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협력업체에 발송했습니다. 특히, 평소 숫자에 약한 피고가 일일이 수기로 계산하는 등 노력해 점검해야 했으나, 그러지 아니하고 임의로 속단했습니다. 때문에, 회사의 명예는 물론이고 피고인의 신뢰도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심장 부근이 두근거렸다. 그렇다. 게으름 피우고 노력하지 않아 실수했고, 때문에 회사가 피해를 봤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났다. 노력의 검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피고의 이런 실수는 사회생활 초반부터 지금까지 종종 발생했습니다. 노력하여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나 매번 꼼꼼하지 못한 피고 개인의 특성, 그리고 특유의 나태함으로 이런 실수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매번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피고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노력의 검사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나를 봤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일주일 동안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책하며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길 바랍니다."


맞는 말이다. 노력이 부족해 실수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정신 차릴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 인생에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노력의 검사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끄덕였고, '결정의 판사님'이 나에게 물었다, 


"피고, 공소유지에 대해 모두 인정하시죠?"

"... 네"


나는 고개를 들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마음 변호사'가 내 입을 손으로 막으며 판사님에게 말했다. 


"판사님! 피고가 변호사와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대답했습니다!"

"변호사님, 그냥 오늘은 인정하고 그렇게 할래요..."


"... 둘이 뭐 하는 거예요?"


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판사님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댔다. 그리고 작지만 날 선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했다. 


"아니, 아재님. 당신이 아무런 노력을 안 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

"아니, 그리고 일주일 내내 우울하게 있으면 뭐가 달라져요?"

"..."

"어휴... 답답해. 오늘은 꼭 이 길 테니깐, 거기 그렇게 자책이나 하고 있어요."


변호사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 꾸러미를 들고일어나 판사님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노력의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유지 및 요청에 관하여 모두 부동의 하는 바입니다."


결정의 판사님은 나와 변호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말했다.  


"어... 모두요?"

"네, 맞습니다."

"이유는?"


변호사는 판사석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곤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를 판사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노력사건 1번부터 115번까지 기록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몇 건을 제외하고 모두 노력의 검사 의견대로 자책하는 판결이 났습니다. 근데, 지금까지 달라지거나 바뀐 게 있나요?


그때, 반대편에 있던 '노력의 검사'가 비꼬듯이 말했다. 


"아~ 반성의 시간이 짧았나 보죠?"

"아니요."


'마음 변호사'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노력의 검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죠. 스스로 자책하는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누구나 언제든 실수할 수 있습니다."

"허허, 어린 변호사님이 뭘 잘 모르네. 당장 힘들어도 결국 이런 시간은 피고의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은 결국 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노력의 검사'는 오른손으로 변호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요. 그런 말 만든 사람은 진짜 무책임한 사람이에요.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젊은 사람들이 도망치는지 알아요? 그러니 삶에 발전이 없는 거예요. 넘어지고 쓰리 지면서 다시 노력하고 일어나야지 안 그래요?"


"어휴... 꼰대..."

"뭐라고?"


답답한 마음에 변호사의 속 마음이 입 밖으로 나왔다. 당황한 변호사는 눈을 감고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며 아니라는 뜻을 검사에게 전했다. 


[땅. 땅. 땅.]


판사님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소리가 결정의 심판원에 울려 퍼졌다. 


"자. 이야기가 끝이 없겠네요. 그래서 피고 측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노력을 폄훼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실수가 노력이 부족해 생긴다는, 검사 측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스스로를 자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게 반복되면 피고의 인생은 분명히 불행해질 것입니다."


강단 있는 그녀의 말에 결정의 심판원은 순간 조용해졌다. '마음 변호사'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수했다고 지나치게 심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치고 수정하면 되죠. 그런 일 하나하나에 매번 마음이 다치고 쓰러지는 건,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모두, 피고가 행복하길 바라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피고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노력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은 '노력의 검사'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판사님은 나에게 물었다. 


"피고는 추가로 할 말 없나요?"

"... 네."

"알겠습니다. 잠시 휴정하고 판결 하겠습니다."





판결하겠습니다. 

주문. 피고 인프피아재는 금일 실수에 대해 자책하더라도 그 시간이 하루를 넘어가지 않도록 합니다. 노력이 부족해 실수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책하고 비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회사생활이나 피고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스스로를 탓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피고의 자존감이 낮아져 잘할 수 있는 일들도 긴장하여 실수를 반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때문에, 자책하기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향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몇 가지 실수가 그 사람의 본모습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회사 일에 삶이 잡아 먹히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들도 아끼고 사랑해 주시도록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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