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프피아재 Aug 12. 2024

3. 재회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진회색 후드티 모자를 푹 눌러쓴 그의 기행.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는 경찰관 두 명은 각기 다른 표정이었다. 젊고 멀끔한 경찰관은 미소를 짓다 못해 웃음을 터뜨렸고, 지그시 나이가 든 경찰관은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더니 언성을 높였다.


“아니. 이 사람이 경찰관을 우습게 보네? 이봐요. 내가 말했지 일 커질 수 있다고.”


그 모습은 흡사,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에게 회초리를 든 모습 같았다. 후드티는 지금껏 이렇다 할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양쪽 팔을 붙잡혀 경찰차 쪽으로 끌려가자, 잔뜩 겁먹은 고양이 같은 눈망울로 발과 손을 주춤거렸다. 


야밤에 폭이 좁은 골목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녹록지 않았다. 그건 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녀는 그 짧은 무대의 주인공.


율은 그의 손길이 닿은 코트 끝자락을 매만졌다. 가슴이 철렁거리며 동시에 불쾌한 느낌에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웃음기 없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야옹거리던 후드티의 모습. 거기다가 주먹 쥔 손을 양쪽 볼에 올리고는 꾸물거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서 율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앞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자면,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할 그런 반응이었다. 


후드티 머리가 경찰차에 들어가기 직전,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더니 율을 쳐다봤다. 그녀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둘은 눈이 마주쳤다. 율은 입가에 번진 미소를 가리고자 한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초승달처럼 굽어진 눈매는 어쩔 수 없었다.


율이 가진 절반의 미소를 본 후드티. 그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더니 경찰차에 스스로 몸을 구겨 넣었다.


.

.

.


“진짜 미쳤다…. 아니 그래서? 이후에는 본 적 없어?”


그 서스펜스 영화 같은 일로부터 6일이 지났다. 율은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 액정을 손가락 몇 마디로 가볍게 만지더니,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나타내는 작은 숫자 옆에 쓰인 요일을 확인했다. 


“응. 근데 오늘이 수요일이네. 분리수거하는 날.”

“어머. 그럼……?”


민지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율을 바라봤다. 이에, 율도 머리를 긁적이더니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율은 경찰에 잡혀간 그 녀석이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일로부터 3일이 지난 날. 핸드폰에 112를 누르고는 통화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갔지만, 이내 관뒀다.


율에게는 무섭고 불쾌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양쪽 볼에 주먹을 가져가며 야옹거리던 그 잔상은 율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했다. 그동안 후드티는 그녀에게 불안한 존재였지만, 일어난 사실과 느껴지는 감정은 미묘하게 어긋났다. 어쩌면 몇 시간 뒤에 다시 마주해야 할 후드티. 그러나 마냥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언제나 율은 타인과의 거리를 두었다. 그 경계는 뚜렷하면서도 견고했고, 누군가 정성스레 공을 들여도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고양이 흉내 따위에 그 경계가 살짝 금이 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 우리 들어가야 해. 아무튼 조심. 오케이?”


율의 맞은편에 앉은 민지는 엉덩이에 뭐가 닿은 듯 급히 일어나더니 손바닥에 쥔 핸드폰을 내밀어 보여줬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기 10분 전. 횡단보도 2개를 건너야 하기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아무튼 혜성처럼, 아니. 운석처럼 등장한 후드티는 율의 우울하던 일상에 작은 변곡점 같았다. 그 존재의 등장이 없었다면, 점심시간 내내 민지의 연애사나 꼼짝없이 들어야 할 그녀였다. 율은 그 무용담이 싫진 않았지만, 지나치게 자세한 그 논픽션은 가끔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유쾌한 경험은 결코 아니지만, 율에게도 그런 무용담이 하나 만들어지고 있었다.


.

.

.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옆.


그곳에는 낡은 전봇대가 하나 있었다. 율은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거기에 몸을 숨기고는 중앙 현관문을 바라볼 생각이었다. 벌써 며칠이나 후드티를 마주치지 않았지만, 오늘은 수요일로 매번 엘리베이터에서 분리수거장까지 그와 함께한 날이었다.


율의 새하얀 입김이 전봇대 주황색 전구 빛에 반사되고 흩어지길 반복했다. 그녀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소리는 좁은 골목길에 퍼져나갔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궁금했다. 아니. 궁금하기보다는 채점을 마저 끝내지 않은 답안지처럼, 긴장과 불안이 미묘하게 섞인 것에 가까웠다. 율은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래서 이렇게 사라진 것이라면, 그 의문은 영영 풀 수 없겠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율은 발뒤꿈치를 들더니 재빨리 중앙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두리번거렸지만,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쓴 늑대 상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그녀는 고개를 올려 층수를 확인했다. 역시나 3층은 아니었다.


그러나 후드티는 언제나 급작스럽고 엉뚱했다. 율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점퍼 주머니 안에 있는 핸드폰을 꽉 쥐고, 왼손으로 엘리베이터 옆에 보이는 세모 버튼을 몇 차례나 눌렀다.


아무 일 없이 3층을 지나, 9층에 도착한 율은 현관문을 열 때도 가방으로 도어락을 가린 채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고 나서도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쨍한 노란 불빛이 발아래를 비췄다. 그제야 율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자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휴…. 죽는 줄 알았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참나.”


그녀의 볼멘소리는 스스로에게 하는 것인지 이렇게 호들갑 떨게 된 원흉. 그를 향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율은 어깨에 걸린 가방을 힘없이 내려두더니 신발을 벗어 나가는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정면을 바라보니 짙게 어두운 원룸 한편이 보였다. 매일 퇴근하고 마주하던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목으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 옆에 있는 스위치를 조심스레 켰다. 


「 트특. 」


모니터가 밝게 발광하며 켜진 것처럼, 이내 푹신해 보이는 침대와 겨울용 분홍색 이불, 붉은 융으로 짜인 카펫과 흰색 작은 협탁이 눈에 들어왔다. 율은 터벅터벅 침대로 걸어가 던지듯 몸을 눕혔다. 그리고 깊게 내쉬는 그녀의 한숨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채워졌다.


곧장 일어나 커튼을 치며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돌려야 했다. 특히, 식탁 뒤 작은 공간에 쌓인 먼지는 오늘은 꼭 없애야 했다. 그러나 손과 발은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의지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아니. 아니지. 아니야. 기분에 잡아먹히면 안 되지.”


율은 작고 사소한 행동이 마음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울적하거나 걱정거리가 가득 채워져 있을 때, 부단히도 몸을 움직였다. 그런 의미로 잔뜩 긴장한 지금의 처지는 벌떡 일어나 청소기를 돌려야만 나아질 것 같았다.


그녀는 곧장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벽에 난 커다란 창문을 손으로 열어젖혔다. 추운 한기가 방으로 들이닥치자, 율은 그제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율은 좁은 원룸 구석구석을 청소하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저녁 9시 10분 전. 그녀가 분리수거 거리를 정리해서 밖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싱크대 아래 쌓인 캔과 종이상자 그리고 현관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율은 양손으로 쓰레기를 쥐고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5층을 나타내는 붉은 글씨가 그려져 있었다. 수요일이라면 언제나 3층에 멈춰있을 엘리베이터. 이유야 모르겠지만, 놓쳤던 정신을 붙잡은 후드티는 정말 사라진 것 같았다. 


율은 옅은 미소와 함께 눈썹을 치켜뜨며,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3층을 지나칠 때는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중앙 현관문을 나서자, 가로등 불빛 위로 하얗게 발광하는 반달이 보였다.

한겨울 밤공기는 폐부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맑고 신선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로등 옆으로 걸어간 율은 미리 분리해 둔 찌그러진 플라스틱병 그리고 고이 접어둔 상자를 분리된 곳에 넣었다.


「 야옹. 야옹. 」


율은 너무 놀란 나머지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도 얼어붙었는지, 외마디 작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야옹거리는 소리는 율이 이따금 물과 사료를 챙겨주던 길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인위적이고 어색했는데, 분리수거장 옆에 있는 주차장 구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율은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뛰어야 했다. 그러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이내 한 걸음을 그쪽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자연스레 반대편 다리도 그쪽을 향해 움직였다.


건물 아래 주차장은 칠흑같이 어두워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달빛 한 줌이 내려와 맞닿은 곳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뭔가를 먹고 있었다. 이어서 그녀의 눈동자라 그 옆을 향했는데, 그제야 율은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엄마야!”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회색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깊게 눌러쓴 그의 모습이 보였다.


입 밖으로 뛰쳐나온 엄마란 말. 그 말은 진짜 그녀의 어머니를 부르는 게 아니었다. 그저 너무 놀랐을 때는 그렇게 외치라며, 그녀가 어린 시절 누군가한테 배운 낱말이었다.


율은 심장이 떨어질 듯한 공포감에 몸이 얼어붙었다. 손과 발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는데, 어떻게 해서든 몸을 돌리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무릎을 굽혀 앉아있던 후드티는 고개를 슬쩍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오지. 오지 마요. 소리 지를 거야. 오지 마?”


율은 양손을 펴서 허공에 휘저으며,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녀의 태도에 후드티는 움찔거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오른손에 쥔 메모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뭐 하시는 거예요?”


그 물음은 상황에 적절하지 않았다. 애초에 후드티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서지 않았고, 그저 주차장 구석에서 길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후드티는 고개를 슬쩍 들어 밤하늘을 올려보더니, 멀찍이 떨어져 입을 열었다.


“밥 주고 있어요. 고양이 밥.”


그는 말을 끝내더니 다른 손에 쥔 작은 봉투 하나를 흔들었다. 그러자 작은 알맹이들이 서로 부딪혀 내는 후드득 하는 소리가 주차장에 퍼졌다.


율이 생각해 보니, 그에게 다가간 건 자신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묻거나 말해야 할 것을 생각했지만, 좀처럼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 스슥. 」


그때였다. 종잇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후드티가 율을 향해 입을 열었다.


.

.

.


“저기. 같이…. 줄래요?”

이전 02화 2. 야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