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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행

얼마나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었나

by 키리카


큰 아이의 입시 방향이 꼬이게 되면서 갈등을 하던 중, 같은 학교를 보냈던 엄마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분은 내가 현재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학교 보다 중고등 프로그램이 탄탄한 곳이라며 새로운 곳을 소개해 주셨다.


아이의 국내트랙 변경을 염두하며 열심히 뛰어다녔던 입시설명회와, 학원설명회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는 어떠한 희망적인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소개해 준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멋진 건물과 시설,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분위기, 이것이 누구나 상상하고 있을 국제학교의 모습이 아닌가. 교육 커리큘럼에 대해 쭉 설명을 듣고 나니, 내가 왜 그렇게 입시준비에 대해서는 안일했나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이 학교를 소개해 준 분을 통해 학교의 장점을 상세히 듣고 나니, 기존 학교에 대해 나도 모르게 쌓아왔던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기독교 교육이라는 허울 아래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했던 것, 아이들에게 다양한 과목을 균형 있게 가르쳐 주지 않고, 성경교육만을 중점으로 하고 있었던 것, 학교 임원진에 대한 사소하고 서운한 감정들이 마구 쏟아졌다.

무엇보다도 교육의 질이 중고등 과정에서 타 비인가 국제학교들에 비해 너무 부족하고, 20년 전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부분이 애초에 나를 흔들기 시작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큰 아이를 빨리 더 아카데믹한 분위기의 학교로 옮겨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 모든 것은 단 한주만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아이의 새 학교 레벨테스트를 잡고 아이에게 통보하듯 이야기하였다.

“내일 00 학교에서 입학시험 볼 거야. 당장 학교를 옮길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시험은 한번 보자. 네가 지금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도 잘 모르잖아.”

두 눈을 꿈뻑이며 나를 쳐다보던 아이는 갑자기 끙끙거리며 나에게 고개를 흔들고 있다.

“아니, 내가 왜, 왜 또 시험을 봐야 해. 그리고 무슨 학교?”

“엄마가 너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 부실한 것 같아서 새로운 학교를 알아봤어. 솔직히 지금 다니는 학교는 수학, 과학 너무 부실하게 가르치는 것 맞잖아. “

“아니 왜……”


최근 몇 번의 학원 입학테스트를 봤던 것이 스트레스였던 걸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순종적이었던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싫어!”

의외의 반응이었다. 웬만해서는 싫다는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는 아이인데. 도대체 이유가 뭐지?

“아니, 그러니까 일단 레벨테스트 보러 가서 학교도 구경 한번 해보고 하면……”

“아~ 싫다니까~”

아이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당장 내일 오전에 학교 시험을 예약해 놓았는데, 아이가 이렇게 거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일부러 아이의 마음이 붕 뜨게 될까, 지금 다니는 학교에 행여나 이야기를 흘릴까 기습적으로 아이에게 통보를 한 것이 아이에게는 강압적이라고 느껴진 것일까?

‘그래도 내일 아침에 어떻게든 끌고 가면 되겠지…… ’


하지만, 나의 그 생각은 엄청난 착오였다.

“벌써 10시야! 빨리 일어나! 지금 일어나서 준비하고 가야 한다고!”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나 급해졌다.

“야~ 빨리! 너 진짜 이러기야?”

자는 것인지, 자고 있는 척을 하는 것인지 아이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와 끙끙대며 씨름을 하던 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아이가 도저히 레벨테스트에 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학교에 알렸다.

나와 학교 관계자가 통화하는 것을 듣던 아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내 휴대전화를 낚아채려 했고 당황한 나는 급히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상황에 나는 인간적인 서러움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야, 너 진짜 너무하는 거 아냐? 엄마가 지금 너 때문에 여기저기 설명회며 쫓아다니고 있는데, 너는 어쩜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도대체?”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고 있는 나를 물 끄러니 쳐다보던 아이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보고 화를 내려던 나를 앞에 두고, 갑자기 아이는 눈을 질끈 감으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어릴 적부터 항상 화만 내서, 엄마가 화를 안 냈으면 좋겠다고…… 만약 천국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정말 아무 고통도 없는 상태일까? 그건 그냥 마약을 하는 것 같은 환각의 상태일까…….”

“……뭐….. 뭐?”

원래도 아이가 말을 자신감 있게 하지 못하는 데다, 눈물을 짜 내며 말을 하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귀를 기울여 아이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들리는 단어는 ‘엄마가, 화내서, 내가, 고통스러워서’ 이런 단어들이었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누구에게 아이들을 방치한 적도 없고, 내 손으로 사랑으로 끼고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공부 스트레스도 주지 않겠다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놀기도 많이 놀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이를 위해 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내가 아이와 함께 웃었던 시간들보다, 내가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화냈던 기억을 더 크게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에게 소리 지르며 화냈던 적이 정말 많았던 것이 사실은 사실인 것 같다.


기억 회로를 돌려, 아이의 어릴 적으로 돌아가 보았다. 아이가 두려워했을 순간들을 다시 하나씩 재생해 보니 나는 참 나쁜 엄마가 맞았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이었다.


모유수유가 좋다고 해서 어떻게든 젖을 물려보려고 했는데, 서투른 나의 자세에 아이는 별로 먹지도 못하고 울어댔던 기억, 수면교육이 필요하다고 해서 백일 남짓 된 아이를 혼자 재워보려고 울렸던 기억, 동생이 태어난 직후 안아달라고 울어대던 것을 떼쓰는 고집을 꺾어 보겠다고 끝까지 안아주지 않았던 기억.


그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닌데, 잘못하면 무언가 큰일이 날 것처럼 집착했던 나의 모습은 지금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남들 다 보내는 학원에 안 보내면,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아이가 영원히 도태될 것처럼 그렇게 두려움에 휩싸여 아이의 울음을 독하게 외면하고 있는 나.


아이는 한 번도 나에게 학원을 알아봐 달라고 하지도, 자신을 영재처럼 키워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 혼자 뛰어다니면서 왜 아이 탓을 했는지……


아이를 향한 미안한 기억들이 빠르게 재생되면서 나 역시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미안했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짜내고 있었다. 그 단어 하나하나 들을 조합하며 나는 어떠한 변명도, 설명도 하지 못했다.

다른 어떤 이야기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미안했다.


“미안하다. 나는 그저 너를 잘 키우고 싶었을 뿐인데. 엄마가 미안해. 엄마도 모르는 것 투성이야. 화내서 정말 미안해.”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아이의 진로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놓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후행을 결심했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학업 성취도가 더 높은 곳으로 옮기지 않겠노라, 학원도 억지로 보내지 않으리라.


생각해 보니 나의 엄마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어떠한 길을 강요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삶을 사는지는 모르겠다.

누구에게 드러낼만한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늘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몫을 다 해나가는 딸이라며 나를 보고 기뻐한다.

나는 엄마의 그 기쁨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어떠한 삶을 기대했던가.

학벌, 직업 그런 것들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학벌과,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성실히 학생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하지만, 입시라는 결과만으로 이 아이의 모든 과정을 속성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조금 더 느릴지라도 스스로 알아가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국제 트랙이냐, 국내 트랙이냐, 어떤 학교를 보낼 것이냐, 어떤 학원을 보낼 것이냐가 전부가 아니다.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이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은 아이들과 어떻게 행복한 기억을 채울 것인가,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어떻게 균형을 갖고 채워줄 것인가, 아이와 정서적으로 얼마나 많이 교감하고 소통할 것인가 이 부분이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내용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느리게 가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더라 ‘라는 성공신화가 아니어서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교육에 대한 과정을 가감 없이 전달했기에 몇몇 분들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았을까 기대해 본다.


우리의 인생에서 한 번도 결과로 끝난 적은 없었으니까.

인생의 모든 부분은 과정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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