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이라는 현실 앞에서
올해 초만 해도 나의 교육관은 확고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느리고, 천천히 가는 것이 나중에는 아이를 위한 힘이 될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 그렇게 나는 아이 둘을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심하지 않은 곳의 비인가국제학교에 보내며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 오자마자 학교 숙제부터 끝내는 모습을 보니, 자기 주도학습이 잡힌 것 같았다. 특히 느려서 늘 걱정이었던 큰 아이의 성적은 늘 A였다. 학년을 낮추어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는 아이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맞는 것 같았다. 큰 아이가 점점 학교 성적을 잘 받고, 학교에서도 우수한 아이로 인정받기 시작하자 내 안에서 슬슬 아이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기 학년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춘기 아이의 성장 속도가 한 달 한 달이 다른데, 학년을 낮춘 우리 아이만 키가 쑥 큰 채로 일 이년 어린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모습이 영 안타까웠다. 우리 애가 부진아도 아닌데, 부진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동네에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들은 정상적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네 중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데, 그 모습 사이에 우리 아이가 끼지 못한다는 것이 엄마인 나도 주눅이 들기도 하는데, 아이는 어떨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무리해서 아이를 한 학년 다시 올려달라고 학교에 요청을 했고, 아이는 한 학년을 올려 제 학년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아이가 스스로 자기 학년을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생각했던 느리게 교육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일반유치원에서 모국어를 다지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늦게 영어를 시작했지만, 비인가 국제학교를 잘 적응해 가며 영어를 습득했고, 다른 학원을 다니지 않은 채 각 과목을 꾸준히 공부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였고, 학교 성적은 좋았다. 한 학년 늦은 채로 시작했지만, 다시 자기 학년을 찾아갔다. 학원의 도움이 없이 아이들이 스스로 해 낸 일이라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재 학년을 찾은 후 조금씩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의 입시가 다가오고 는 것이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동네 일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착실히 학원 커리큘럼을 따라가며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우리 아이들만 별나라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시기에 내가 논술교사로 일을 시작한 것도 한몫했다. 입시 정보를 많이 접하다 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했고, 순진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학교 안에 있는 우리 아이는 모범생이고, 우수생이었지만, 학교 밖에서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모두가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국 입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입시 역시 치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한국에서 미국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상위권 아이들이 많았고, 이 아이들 사이에서도 한국 입시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원가에서는 이미 미국**,국제**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존 한국 과목 수업의 2배 이상 수업료를 받고 있었다. 국제 트랙으로 옮겨 놓으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원대한 믿음이 급격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한국 입시에서 아이를 꺼내면 비교적 경쟁이 덜 심한 환경에서 스스로 앎의 기쁨을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이상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점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을 안고 한국이든, 미국이든 닥치는 대로 입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미국은 돈 때문에 보낼 수가 없고, 한국 입시의 치열한 경쟁을 뚫을 자신이 없었다.
부랴부랴 미국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보니, 아이를 한국 중학교에 입학을 시킬 수 조차 없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초등학교 졸업, 학력 인정이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고, 중학교를 가려면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졸업을 하던지, 초등 검정고시를 봐야만 했다.
나의 무지함, 무관심함으로 아이는 제 나이에 중학교를 갈 수 있는 시기도 놓쳐버렸다. 올해 초에 검정고시만이라도 봤다면……
나의 막연했던 교육에 대한 신념이 그저 고집에 불과했었던 것이라는 자책감, 나 때문에 아이가 길을 잃어버렸다는 초조함으로 올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내년에 초졸 검정고시를 봐야만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바로 중학교 2학년으로 갈 수 없었다. 수업일수와 수료가 걸렸다. 내가 고작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편입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동네 아이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선행학습을 달리고 있다. 입시를 위한 치열한 달리기를 이미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뛰어왔으니, 우리 아이들이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도 저도 못하는 무기력한 나는, 아이들의 유년시절이 행복했지 않았냐고 되묻기나 하고 있다.
“너희는 공부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았지? 그렇다고 해줘 제발!”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저 아이들이 좋았다면 그걸로 되었지라며 위안이나 얻고 있다.
미안하다 얘들아.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보다. 모두가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 가운데, 엄마는 그저 너희가 빨리 잘하기보다는, 너희의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고 너희의 길을 찾아갔으면 했단다. 너희를 입시에 맞춘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랬는데, 지금 보니 문제를 푸는 과정도 너희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던 거구나.
이렇게 나는 이상을 거두어내고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선행, 현행도 아닌 후행이라고 자신감 있게 외치던 나의 자신감은 어느덧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