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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Oct 01. 2024

아이의 관심사로 대화하고 공감하기

차라리 외주를 주면 쉬운 일


이 책의 주인공, 우리 완벽주의 성향의 첫째는 흔한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이과성향의 아이이다. 하여간 유치원생이었을 때부터 온갖 수학기호와, 우주 천체가 신기했는지 나도 알지 못하는 질문들을 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의 영재성을 키워준 많은 어머님들이 이런 아이의 호기심을 잘 들어주고, 칭찬해 주고, 함께 연구도 했다는데, 아마도 그 어머님들은 그 아이의 유전자를 물려준 영재성을 본인들도 가지고 있었거나, 아이의 교육에 열성적인 어머님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 같은 경우 그런 유전자 보유자도 아니고, 교육에 큰 열성도 없었다. 아이의 질문이 귀찮았던 그저 평범한 엄마였기에, 아이가 질문하면 열심히 들어보려고 노력하다가 이내 짜증을 내고 말았다.

일단,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외골수적인 호기심은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갖고 있는 특성이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영재라고 설레발을 떨고 싶지 않았고, 육아로 지친 나는 종종 아이들의 끝나지 않는 질문에 성실히 응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 내가 우선 생각하는 것이 귀찮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이의 호기심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 아이의 대화는 종종 우주 심연으로 빠지고 만다.

블랙홀이 어떻고, 양자역학이 어떻고, 시간여행이 어떻고 한참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건성으로 ‘어, 어’ 하고 대답하고 있다.

그럼 아이는

“엄마, 듣고 있는 거야? 왜 내 얘기를 맨날 안 들어!”

“아니야, 엄마 열심히 들었어.”

아이도 엄마가 대답만 할 뿐 전혀 자신의 생각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고 실망하기 일쑤다.


아이의 호기심은 키워주고 싶은데, 나는 너무 괴롭고 힘들다. 게다가 나는 수학과, 과학 쪽으로는 전혀 머리가 안 돌아간다.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 고민을 맘까페에 올려 보니 수많은 댓글들이 아이를 칭찬해 주며 좋은 과외 선생님, 학원 선생님을 만나서 아이의 재능이 키워졌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그렇다. 결국 아이의 재능을 발견했을 때, 아이의 학습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학원 선생님을 찾는 것뿐 아니겠는가.

그렇게 나는 열심히 학원과 과외를 찾아보았다. 내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누군가. 아이의 호기심을 채워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런 멘토 같은 선생님을 찾고 있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실험과 재미있는 이론 설명을 해줄 수 있는 분을 섭외할 수 있었다.

나는 내심 기대했다. 아이가 궁금해하던 과학적인 지식들, 수학적인 지식들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아! 이제 나는 질문에서 해방되겠구나!


“어머님, 00 이가 수업시간에 질문도 안 하고 대답도 안 하고 통 말을 안 하네요.”

아이가 선생님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했으면 했는데, 전혀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나 말고 물리학을 전공했던 할아버지와 그런 대화를 나누어보라고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할아버지 앞에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던 아이였다.

왜일까? 어쩌면 아이는 진짜 답을 알고 싶어서 나에게 질문한 것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 0 나누기 0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 또 시작이구나……’  

“글쎄, 엄마가 0 나누기 0은 생각해 볼 적이 없는데… 그냥 0 아닐까? 아니면 뭘까? 0은 나눌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오늘은 제발 빨리 끝나기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대충 얼버무렸다.

“음, 엄마 내가 찾아보니까 0 나누기 0은 정의할 수 없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제발, 나도 모르겠다고!’

“그…글쎄……”

갑자기 인터넷을 열던 아이는 검색창에 0 나누기 0을 검색했고, 하나씩 하나씩 찾아 들어가면서 혼자 ‘이런 건가? 저런 건가? 왜 이런 거지?’ 물어보며 찾고 또 찾는다.

“어, 엄마, 여기 이 선생님이 설명했는데, 엄마 봐봐.”

마지못해 아이와 해당 영상을 보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0 나누기 0이 조금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봤다.

내가 어떤 대답을 명쾌하게 해 준 것도 아니고, 대답도 대충 하기 바빴는데, 어느덧 아이는 질문의 답을 찾아 나에게 설명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본 나는 아이와의 대화 시간을 외주로 때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은 어떤 학원이나, 과외가 아닌 아이 스스로가 아닐까?

아이는 엄마에게서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궁금해하는 것을 엄마와 대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물리학을 전공한 할아버지도, 과학적인 설명을 유창하게 해주는 선생님도 아닌 엄마에게 질문하였던 것은 아닐까?

이 아이의 대화의 방법은 호기심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마음으로 아이의 질문을 대하다 보니 귀찮다고만 생각했던 아이의 질문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엄마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 엄마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자신이 궁금해하는 지적 호기심을 공유하는 것이라니.


물론 이런 깨달음이 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사람이니까 가끔 숙제를 하는 아이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렁에 빠져있으면 딴생각하지 말고 얼른 숙제나 하라고 다그치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외주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외주가 나와 아이의 관계까지 해결해 주지는 않으니까. 가끔은 속 터지는 질문이라도 해 주는 것에 감사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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