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역할
‘독립심‘
누구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 역시 매번 스스로 하도록 하는 엄마와 챙겨주는 엄마 사이의 그 어느 지점에서 늘 고민하게 된다. 스스로 하도록 하자니 날것 그대로의 아이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답답하고, 일일이 챙겨주자니 언제까지 쫓아다니면서 챙겨줘야 하는지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아이의 학습에 있어서 자기 주도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학원도 안 가고, 부모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쉬는 날은 유튜브를 보며 멍 때리고 싶은 날이 많은데, 하물며 아이들이랴.
우리 아이들 학교는 숙제가 많다. 물론 내가 아이들 학원을 따로 보내고 않아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 양이 많고, 그러다 보니 숙제 하나하나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의 느린 기질을 갖고 있는 우리 큰아이가 숙제하는 것을 볼 때마다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아이의 독립심을 추구하며 숙제를 도와주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스스로 숙제를 마치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것 같다. 하지만, 그 숙제를 집중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 붙들고 있는 것이 고질적인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습의 분량과 난이도가 높아졌는데, 스스로 깨우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자신이 잘 못하는 과목의 숙제가 있는 날은 하염없이 숙제만 바라보며 책상 앞에 앉아있기만 한다. 아이는 나에게 도와달라고 SOS를 보내지만, ‘스스로’를 강조하던 나는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자리를 떠 버린다.
사실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아이의 징징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었고, 나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답을 내달라고 재촉하는 그 태도에도 화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 일절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아이의 ‘독립심’을 위한 것이라 굳게 믿었다.
아이의 학업은 점점 어려워졌고, 시작할 엄두 자체가 안 난 것인지,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학업이었는지, 아이는 밤새 숙제를 붙들어도 숙제를 해내지 못했다.
아이는 어느덧 깔끔하게 숙제를 빈종이로 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학교에서 혼나는 것도 아이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방치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학교 측의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왜 숙제를 최근에 해오지 않는 것인지,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물었고, 아이가 숙제를 잘 챙겨서 해 올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결국 부모는 아이의 학습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였다.
엄마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하는 아이라는 게 가능한 걸까?
아이의 타고난 성향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아이를 챙겨줘야 하는 것일까?
시켜서 해야 하는 아이는 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자기주도학습’은 그렇게 나온 아이만 가능한 것 아닐까?
혼란과 고민 속에서 당장 아이의 숙제를 체크해야만 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아이의 책을 보니 나도 모르는 단어와 내용 투성이었다. 문제를 보니 나 역시 풀기 힘든 문제들이 태반이었다. 이런 걸 아이 스스로 모르는 것은 사전을 찾아가며 하라고 던져놓았구나. 마냥 아이가 느리다고 답답해하면서 스스로 빨리 해내도록 재촉했구나. 이것도 스스로 할 만할 때 하는 것이지. 학원 도움도 엄마 도움도 못 받았던 아이를 왜 그렇게 빨리 못하는지 다그치기만 했는지 미안해졌다.
아이가 가장 어려워하는 역사와 문학 과목의 지문을 내가 먼저 읽어 보았다. 내가 읽고 설명해 주기도 버거웠다.
“00아, 엄마가 읽어도 어렵긴 하다. 이 문제는 혹시 이 문장이 답이 아닐까? 여기에 같은 이름이 나오고, 왜 그런지 설명이 나오잖아.”
내가 완벽하게 알려준 것도 아닌데, 아이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아, 엄마! 무슨 얘기인 줄 알았다. 그게 그 얘기였구나!”
아이는 갑자기 다섯 문제의 답을 줄줄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엄마, 그럼 이건 무슨 뜻이야?”
“음, 글쎄…… 사전을 한번 찾아볼까? 봉건주의? 음? 엄마도 자세히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는데. 중세시대에 영주가 농노를 지배하는 뭐 그런 건가? “
“아… 그럼 이런 뜻인가?”
한참을 끙끙대던 아이가 단어 하나를 설명해 주니 책을 다시 읽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 개의 개념, 한 단어의 의미, 한 문제의 풀이가 막혀있을 때, 아이들, 특히 우리 아이처럼 완벽주의 성향의 아이들은 전체를 돌파하지 못하게 된다.
성향이 전혀 다른 둘째 아이의 경우 훨씬 더 빠르게 과제를 해낸다. 그런데 그 과제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의 경우는 잘하지 못하더라도 독립적으로 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과제를 미리 성취하기도 한다. 이 아이의 경우 독립심은 뛰어나게 되었지만 스스로 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하면 아예 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의 아이들은 80%를 채웠어도 나머지 20%도 채우기 위해 기존의 에너지의 몇 배나 되는 에너지를 할애하며 씨름하게 된다. 이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아예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결국 이 막힌 부분을 부모나 외부 학습 지원 예컨대 학원이나 과외로 해결되지 않으면 돌파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 아이의 독립심을 키우는 것과 방치는 다른 것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되, 막힌 부분을 뚫어주어 아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임을.
적당히 학원을 활용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하는 아이가 되도록 돕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균형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막힌 곳은 어디인지, 무엇을 뚫어줘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하루의 숙제도 그렇고, 장기적인 입시도 그렇다. 오늘의 숙제에서 막히는 부분도 있고, 장기적인 진로 찾기에서 막히는 부분도 있다.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굵직한 결정을 엄마가 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런 아이에게 다그치지 않고 막힌 곳을 시원하게 뚫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물론 앞으로 얼마나 기상천외한 것들이 아이를 가로막고 서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