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결국 대학이었으면서……
'천천히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남이 떠 먹여주는 배움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하는 배움이 중요하다.'
아이의 교육에 대한 나의 신념이었다.
그런데 그 신념이 아이의 입시가 다가오면서 처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길은 하나님께서 아시니, 분명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거야.'
나의 종교적인 신념으로 또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주변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들의 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급히 한국학교로 옮겨간 둘째의 학업 수준은 바닥이었다.
워낙 학구열이 높은 동네라는 사실은 둘째 치더라도, 학교에서 치르는 단원평가에서 수학점수가 한 자릿수가 나왔으니 말이다.
부랴부랴 동네 수학 보습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이미 아이는 수포자의 길에 들어선 듯했다.
영어를 제외한 전 과목에서 평균보다 한참 못한 점수를 받았고, 영어도 이미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못할 정도였다.
큰아이의 검정고시 준비와 한국학교 준비를 위해 급히 학원의 레벨테스트를 치렀는데, 큰 아이 역시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이가 다니는 국제학교에서 수학, 과학을 월등히 잘한다고 늘 칭찬을 들어왔는데, 한국 학원 레벨테스트에서는 중하 정도의 레벨이 나왔고, 설명회에서 동네 학교의 내신 시험 수준을 볼 때마다 과연 우리 아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의 불안감은 학교에 대한 불만과, 아이들에 대한 잔소리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그동안 학교 숙제나 성적만으로도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학교 숙제 하나당 3~4시간을 끙끙대고 있는 우리 아이에게 하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하나를 그렇게 오래 끌고 있으면 네가 영어가 어려워서 그런 것 아니니? 다른 국제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국제학교 다니면서도 영어학원도 다니고, 수학학원, 과학학원 다 다니더라. 너는 학교에서 하는 것 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돼!"
아이들이 주말에 늘어져 누워있는 것도 꼴 보기 싫어졌다.
“너네 오늘 학교숙제 다 했어? 학원 숙제는?”
“……”
“야, 내가 너네 학원을 몇 개를 보낸다고 그 숙제를 못하고 미루고 있어?”
“……”
“어휴~ 내가 답답해 죽겠어! 그동안 친구들보다 학원 스트레스 안 받으면서 지내왔으면 이제는 좀 해야 하지 않냐? 맨날 놀 생각만 가득한 거야?”
아이들은 잔뜩 풀이 죽어 마지못해 책상에 앉는다.
초등 고학년, 중등의 아이들의 학력이 주변 또래의 아이들보다 현저히 낮은 현실을 마주하니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이때부터 나의 조바심과 불안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아이들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비수 같은 말들을 내뱉었고, 아이들 역시 마음이 붕 뜨기 시작했다.
“너는 매사에 이렇게 늦게 준비하면 도대체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 거냐?”
행동이 느린 첫째에게 짜증을 내며 아침을 재촉했다.
“니 자리는 왜 항상 쓰레기장이니? 공부를 못하면 이런 거라도 잘해야지. 넌 도대체 잘하는 게 뭐냐?”
주변 정리가 어려운 둘째에게 매일 쏘아붙였다.
이러면 안 되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나의 입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고결하게 아이들 교육에 대해 신념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나도 결국 아이들의 입시와 진학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자유롭게 키우면 아이들이 알아서 좋은 입시 결과를 내줄 것으로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근거 없는 자만감이었다.
목표는 아이들 입시라는 것을 부정하던 나의 위선에 대해 아이들은 불순종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