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8화_조폭게임에서 어프로치 버디로 승자가 되다

조폭게임에서 어프로치 버디로 승자가 되다

by 나승복

조폭게임에서 색다른 행운은 어떤 것이었을까?


2019년 10월 이천의 한 골프장에서 열린 한 포럼의 월례회였다.
동반자는 코스닥기업의 두 CEO와 증권사의 임원이었다.


코스닥기업 CEO 중 K씨는 언더파 기록을 가진 수준급 골퍼였다.
두 동반자는 필자와 비슷한 수준으로서 80대 초중반이었다.


위 월례회는 여러 방식의 게임으로 명랑 라운드를 즐겼다.
스트로크방식의 개별 게임보다는 같은 무늬막대를 뽑는 팀별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동반자들 중 수준급 골퍼인 K씨가 이른바 '조폭게임'으로 즐겨보자고 제안했다.
각자 6만원씩 내놓은 다음 1인의 승자가 그 홀에 배정되었거나 이월된 돈을 따가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묘미는 버디를 한 경우 다른 동반자들에게 딴 돈도 전액 요구하는 권리가 있는 반면에,
더블보기 경우엔 딴 돈의 절반을, 트리플보기 경우엔 딴 돈의 전액을 내놓아야 하는 의무도 있었다.

이 게임은 골프 수준이 비슷할 때 캐디비용과 식비를 조달하는 방식으로 많이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이 게임의 룰을 모르는 주말골퍼가 없을 정도였다.


만장일치 하에 첫 홀부터 '조폭게임'에 들어갔다.
마지막 홀에 근접할수록 많은 돈이 걸려 있어 부담감과 즐거움이 배가됐다.


K씨가 한 홀 한 홀 승자로서 독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종전 라운드와 달리 매 샷이 다른 동반자들보다 월등히 좋았다.


“오늘 왜 이렇게 잘 맞지요? 참 묘하네요~”
클럽으로 가만히 공을 닿기만 해도 홀에 착착 붙습니다!


K씨의 샷이 다른 동반자들의 샷보다 출중한 것은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한 마디씩 던지는 언사가 동반자들에게 오묘한 여운을 남겼다.


다른 동반자들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애써 감췄다.

명랑 골프의 당초 분위기가 다소 어색하게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오만의 대가와 겸손의 교훈을 일깨워줄 때를 기다렸다.


KakaoTalk_20250305_223320331_16 (1).jpg

[2016. 2. 필자 촬영]


K씨는 갈수록 샷이 안정되면서 거침없는 파온 행진이 연속되었다.
퍼팅마저 흠잡을 데가 없어 2개의 버디를 낚았다.


필자는 이전 월례회에서 몇 차례 그를 앞 선 적이 있어서 조용히 반전의 기회를 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기회가 오지 않자, 이를 의식할수록 뜻대로 되지 않았다.


130여m의 파3홀이었다.
K씨는 이 홀에서도 아너 지위에서 티샷을 하여 5m 정도의 파온에 성공했다.


이번 홀에서 더 가까이 붙여 버디를 잡아야 되는데…
필자는 그를 이기기 어렵겠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떨칠 수 없었다.


아이언 샷의 기본을 점검하면서 홀에 더 가까이 붙이겠다는 욕구가 불탔다.
다른 동반자들도 내심 필자가 파온에 성공하여 그를 제압해 주길 바랬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욕구는 어느새 과욕으로 변질되어 그만 파온에 실패하고 말았다.

필자의 공은 그린에서 10m나 될 만큼 한참 짧았다. 그린 입구에서 홀까지도 거의 같은 거리가 남았다.


이번 홀도 그의 자화자찬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K씨가 버디를 잡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야 했다.


필자로서는 어프로치 샷으로 공을 최대한 홀에 근접시켜 그와 동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목마른 응원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필자는 초집중의 마인드로 유연하게 어프로치 샷에 들어갔다.
공을 끝까지 보되 그린 초입에 떨어뜨려 굴러가게 하려는 작전이었다.


공은 예상대로 그린 초입에 떨어졌다.
정확한 방향과 적당한 속력으로 홀을 향하여 진군했다.


필자는 공이 컨시드 정도의 거리에 근접하기만 애타게 바랬다.
나머지 두 동반자들의 간절함도 마찬가지였다.


K씨는 파온한 후 여유있게 기다리던 중 급반전되고 있는 상황에 긴장도가 올라갔다.

공의 결연한 의지와 견고한 동작이 범상치 않게 홀인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조하고 육중한 적막이 흘렀다. 전원이 숨죽여 소임을 다하는 공만 응시했다.
그 공은 미묘한 대기를 뚫고 승리를 갈구하는 전사처럼 홀에 근접했다.

그러더니 현묘한 동굴에 온몸을 던진 채 결연히 산화했다.


“오! 버디다! 어프로치 버디다, 버디!”

"버디 쾌거를 축하드려요! 이 어려운 상황에서 버디를 해내다니요!"


두 동반자들은 자신이 버디를 한 것 이상으로 함성을 지르며 희열에 찬 파이팅을 이어갔다.
반면에, K씨는 그린에 주저앉으며 충격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는 비장한 각오로 5m 정도의 내리막 버디를 노렸으나 적잖은 압박감을 이기지 못했다.
필자는 두 동반자들의 열띤 박수 속에 그가 매홀 모아온 돈을 일거에 가져왔다.


그후 2,3홀이 남아 있었으나 경기 흐름은 필자에게 넘어왔다.
그는 아너 지위를 넘겨준 후 끝내 한 홀도 따내지 못하고 말았다.


어프로치는 그렇게 필자에겐 쏠쏠하면서도 색다른 행복감을 주었다.
나머지 두 동반자에겐 은은하면서도 시원한 고소함을 선사했다.


어프로치 샷의 행복감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간간이 뜻밖의 놀라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느 어프로치 샷은 새해 첫 라운드에서 은빛 행운을 안겨주었다.


새해 첫 라운드에서 행운을 안겨준 은빛 어프로치 샷은 어떤 것이었을까?


(차회에 계속됩니다)


좌충우돌 아이언 탈출기_9화 중국 쑤조우 라운드에서 벌어진 아이언 스토리
_10화 OB 라인 옆의 공이 버디로 부활할 줄이야
_11화 파3홀에서 티샷 공이 앞팀 캐디를 향해 날아가다
_12화 아이언 생크로 생각지 않은 나락에 떨어지다
--------------------------------------------------------------------------------------
골칫거리 어프로치 탈출기_1화 어프로치 입스로 된통 골치를 앓다
_2화 세 가지 방책으로 어프로치 입스를 벗어나다
_3화 어프로치 샷의 거리감과 정확도를 높이기 위하여
_4화 뜻밖의 장타에 흥분하여 뒷땅을 치고말다
_5화 팀 플레이에서 어프로치 생크샷으로 패하다
_6화 어프로치로 내리막 급경사의 버디를 맞이하다
_7화 프린지에서 어프로치 이글을 잡고 환호하다

_9화 새해 첫 라운드, 첫 홀에서 동토의 버디를 낚다


골프는 저의 생각과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대충 골프’에서 ‘여유 골프’에 이르기까지 가시밭 여정과 나름의 단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1주일에 1회씩 약 1천 자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분들이 ‘골프의 꿀맛’과 ‘골퍼의 참멋’을 즐기는데 도움될 수 있기 바랍니다.
keyword
이전 01화3-7화_프린지에서 어프로치 이글의 행운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