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지에서 어프로치 이글의 행운을 안다
“더 큰 행운의 어프로치 샷은 어떤 것이었을까?”
2024년 5월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열린 법인 춘계골프대회에서였다.
6팀 24명이 참가했으며, 그중 70대 핸디캡 골퍼도 포함되었다.
필자가 다행히 직전 골프대회의 메달리스트였다.
내심 그 타이틀을 지속하고 싶은 의욕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첫 홀부터 집중골퍼의 모드로 스윙을 전개했다.
5번째 홀까지 아슬아슬하게 파를 이어가면서 메달리스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갔다.
아니나 다를까 긴장도가 상승하면서 6번홀에서 위기가 다가왔다.
1.5m의 중요한 펏이 빗나갔고, 다음 홀에서도 2m 정도의 펏을 극북하지 못했다.
전반 9홀을 마친 후, 필자의 스코어는 3오버로서 그런대로 선방했다.
70대 핸디캡의 후배도 같은 스코어여서 박빙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후반 들어 4홀까지 4오버를 치다보니 후배와 3타차가 났다.
후배는 메달리스트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자신의 행복 샷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음가짐을 달리하니 어프로치도, 펏도 나아졌다.
메달리스트 타이틀은 저만치 멀어졌고, 그 바람은 전혀 다른 결과로 발현되었다.
후반 5번째 홀에 이르렀다. 460m의 파5로 짧지 않았다. 더욱이 우측은 OB구역이었다.
하지만, 타샷을 마친 후 정타와 장타, '물리'와 '화학'의 조화를 이룬 것으로 느껴졌다.
('물리'와 '화학'에 대해서는 짤순이 드라이버 탈출기 5~8화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공은 페어웨이 가운데 안착하여 의젓한 자태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린까지 남은 거리였다. 캐디가 알려준 거리는 180m라는 것이었다.
[2016. 2. 필자 촬영]
“이게 무슨 조화인가?”
“총 거리가 460m인데 그린까지 180m밖에 남지 않았다고?”
필자의 드라이버 비거리는 많아 나가봐야 210~220m인데, 무려 280m가 나왔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몸부림과 인공물의 시너지가 작용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공의 방향을 돌이켜보니 카트길을 맞고 페어웨이 방향으로 튀었다.
카트길이 페어웨이로 기울어서 거리와 방향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원칙은 목생도사(木生道死)였지만 여기에 목단도장(木短道長)이라는 예외가 행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공이 카트길을 맞고 50~60m나 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페어웨이 중간에 있는 맨홀의 지원을 덤으로 받은 듯했다.
드라이버 거리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샷'이었다.
그린은 약 50m 길이의 연못 너머 언덕 위에 있었고, 그곳까지 남은 거리는 180m 정도였다.
“짧지 않은 파5홀에서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지!”
“메달리스트 타이틀도 이미 사라졌는데, 뭐가 두려우랴!”
호기로운 독백과 함께 4번 우드로 그린을 향해 풀슁을 했다.
공이 연못에 빠지더라도 1벌타이니 오로지 브레이크 없는 전진 모드였다.
4번 우드를 칠 때엔 탑볼이나 뒷땅 사고가 나곤 했는데, 뜻밖에 제대로 스윙을 한 것 같았다.
연못의 유혹과 언덕의 고행을 넘고 넘어 그린에서 50cm 지점의 프린지에 간신히 안착해 있었다.
공도 대장정의 소임을 마치고 숨을 고르며 다음 하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종 고장나던 우드샷으로 산전수전 끝에 프린지에 당도하다니 넘치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또다시 '다음 샷'이었다. 캐디는 홀까지 10m 정도 남았다고 했다.
어프로치가 퍼트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팅과 어프로치를 융합한 '퍼프로치'로 부드러운 샷을 시도했다.
공은 이정표를 향해 적당한 스피드로 오르막을 숨차게 달렸다.
108번뇌의 블랙홀까지 가기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필자와 동반자들은 숨죽여 공의 그린 위 순례길을 응시했다.
공은 오르막 비탈을 진군하며 홀인을 향한 의지를 이어갔다.
블랙홀에 근접할수록 그의 자신감은 넘쳐났다. 그곳에 다가가더니 찰나에 무의 심연으로 사라졌다.
“선배님! 원더풀 이글입니다. 그것도 장거리 파5 이글요!”
후배들의 열화와 같은 축하세례가 계속됐다. 다들 뜻밖의 이글 사고에 어안이 벙벙했다.
흔치 않은 행운의 순간을 추억의 사진에 담았다.
어프로치 미스샷 때문에 탑볼과 뒷땅, 생크로 점철됐던 수난의 라운드들이 불현듯 스쳤다.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골프의 꿀맛'이자 '골퍼의 향연'이었다.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행운의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감회가 새롭게 다가왔다.
'대충골프'에서 '집중골프'를 향한 몸부림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어프로치 샷의 행운은 한 월례회의 조폭게임에서도 색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조폭게임에서의 색다른 행운은 어떤 것이었을까?”
(차회에 계속됩니다)
좌충우돌 아이언 탈출기_8화 홀인원에 10cm까지 다가가다
_9화 중국 쑤조우 라운드에서 벌어진 아이언 스토리
_10화 OB 라인 옆의 공이 버디로 부활할 줄이야
_11화 파3홀에서 티샷 공이 앞팀 캐디를 향해 날아가다
_12화 아이언 생크로 생각지 않은 나락에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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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거리 어프로치 탈출기_1화 어프로치 입스로 된통 골치를 앓다
_2화 세 가지 방책으로 어프로치 입스를 벗어나다
_3화 어프로치 샷의 거리감과 정확도를 높이기 위하여
_4화 뜻밖의 장타에 흥분하여 뒷땅을 치고말다
_5화 팀 플레이에서 어프로치 생크샷으로 패하다
_6화 어프로치로 내리막 급경사의 버디를 맞이하다
_8화 조폭게임에서 어프로치 버디로 승자가 되다
골프는 저의 생각과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대충 골프’에서 ‘여유 골프’에 이르기까지 가시밭 여정과 나름의 단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1주일에 1회씩 약 1천 자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분들이 ‘골프의 꿀맛’과 ‘골퍼의 참멋’을 즐기는데 도움될 수 있기 바랍니다.